하루하루의 뉴스에서도 우리는 숱한 사건들을 통해 악랄한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을 본다. 몇 푼 안되는 돈 때문에 혈육을 죽이기도 하고,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인간을 짓밟기도 하며,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이들은 과연 대부분의 ‘선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누구나 다 이처럼 끔찍한 ‘악당’이 될 수 있다.
책은, 그 유명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Stanford Prison Experiment)’의 전말을 통해 인간의 악한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밝히고 있다. 1971년 8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행해졌던 이 실험은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관련 보고서는 물론,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SPE의 상세한 전말을 담은 책은 처음이다.
당시 실험을 주도했던 필립 짐바르도 스탠퍼드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나 기고, 관련 보고서와 논문 등을 발표했지만 SPE의 전말을 책으로 펴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자행됐던 포로 학대사건을 보고 짐바르도 교수는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SPE의 모든 것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두 사건은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SPE는 평범한 대학생들을 모집, 무작위로 교도관과 수감자로 나눠 실시됐다. 실험 전에는 이들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없었다. 착하고 쾌활하며, 학업에 충실한 대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교도관과 수감자로 나눠 실험감옥에 집어넣자마자 순식간에 인성(人性)의 변화가 일어났다. 감옥 경험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첫날부터 마치 진짜 수감자와 교도관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수감자들을 가학적으로 대했고, 그 방법도 점점 ‘창의적으로’ 악랄해졌다. 점호 시간마다 새로운 방법을 창안해 수감자들에게 벌을 주고, 수감자가 조금이라도 반항의 기미를 보이면 독방에 감금했으며, 심지어 성(性)적인 수치심을 갖게 하는 등 가학적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수감자 역의 학생들 역시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교도관의 부당한 지시에 순순히 따랐으며, 부당한 대우가 계속되자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가 하면 심지어 탈주 계획을 모의하는 등 진짜 수감자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도관의 가학 행위가 극에 달하고, 수감자들의 정신쇠약 증세가 심해지자 결국 실험은 당초 계획했던 2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6일 만에 중단됐다. 저자가 생생하게 펼쳐 보이는 이 과정은 인간의 심리 변화를 유리알처럼 들여다보게 하는,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이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를 ‘썩은 사과’와 ‘썩은 상자’에 빗대 설명한다. 한 인간이 악한 짓을 했을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은 나쁜 인간’이라고 욕한다. 즉, ‘썩은 사과’로 규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과는 흠집없고, 싱싱한데 간혹 ‘썩은 사과’가 한 두개씩 상자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썩은 상자’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싱싱한 사과를 ‘썩은 상자’ 안에 넣어두면 자연히 썩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상황, 나아가 시스템이다. 평범한 사람을 악랄한 인간으로 순식간에 둔갑시키는 상황과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SPE를 통해 이 사실은 극명하게 증명됐다. 일반인 대부분은 “나는 절대로 그러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악랄한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도관이나 경찰 또는 포로들을 감시하는 군인이 되더라도 고문을 일삼거나, 무고한 사람의 학살 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는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SPE는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저지르도록 전환시키는 특정한 상황과 시스템이 있다며 이것의 영향력을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로 이름 붙였다.
저자는 이어 2004년에 발생했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포로 학대사건을 파고든다. 포로들을 발가벗겨 피라미드를 쌓거나, 발가벗긴 포로의 목에 개줄을 달아 끌고 다니고, 두건을 씌운 포로의 양손에 전선을 연결해 고압전류가 흐를 것이라고 위협하는 등 온갖 악랄한 방법들을 창안해냈던 병사들은 입대 전에는 선량하기 그지없는 일반 시민이었다.
병사들 중 일부는 이같은 학대가 범죄 행위이며,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별 죄의식 없이 가담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상황과 시스템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일까.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죄를 저지른 인간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님을 책 곳곳에서 강조한다. 단, 개인과 상황의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간과해선 안되며, 이같은 상황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들도 타인에게 잔인하고 비열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을 입증해 보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저자는 ‘영웅적 행위의 평범성’을 주장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잘못된 상황과 시스템에 복종하고 순응할 때 그에 저항하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저자는 이들을 ‘평범한 영웅들’으로 명명하며, 우리 모두가 이같은 영웅적 행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악을 물리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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