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영화는 꿈과 환상의 세계로 우릴 안내하지만, 때론 의문과 고민의 바다에도 빠뜨린다. ‘영화에 숨겨진 메시지는 뭘까?’ ‘주인공의 행동은 선일까 악일까?’…. 이런 질문들은 영화가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3편에서 때론 인간적인, 때론 철학적인, 때론 실용적인 질문이 쑥 떠오르는 순간을 콕 짚어냈다. 나 혼자 묻고 나 혼자 답해 본 ‘자급자족’형 Q&A.》
○ 가루지기 (4월 30일 개봉)
Q: 변강쇠 행위는 사회공헌?
A: 아낙들 눈높이 올려 불륜 초래
Q=전쟁이 일어나자 마을 남자들이 모두 징발되어 전장으로 갑니다. 변강쇠(봉태규)는 마을의 유일한 남자가 됩니다. 그러잖아도 음기(陰氣) 넘쳤던 이 마을의 아낙들은 욕구불만에 잠을 못 이룹니다. 무질서와 혼돈 속에 빠지는 마을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변강쇠. 그는 마지못해 아낙들에게 ‘봉사’합니다. 변강쇠의 이런 행위는 나쁜 건가요? 남편들에겐 부도덕한 짓이지만, 마을 전체의 평안을 위해선 ‘사회공헌’이 아닐까요?
A=이 영화 보시면 후회하실 거란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웃기지도, 야하지도 않고요. 심지어 길기까지(상영시간 122분) 합니다.
일단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의 시각에서 보면 변강쇠의 행위는 ‘선(善)’입니다. 성(性)이라는 노동력을 제공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뤄 냈으니까요.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경제원리에 충실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마을의 미래를 위해선 변강쇠는 ‘공공의 적’입니다. 생물학에는 ‘역치(R値·threshold value)’란 개념이 있습니다. 역치란 ‘외부자극이 주어졌을 때 신체가 반응하는 최소한의 자극강도’를 뜻하는 말로, ‘문턱값’이라고도 부르지요.
당초 마을 아낙들이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만족을 얻기까지의 역치가 ‘1’이었다고 한다면, 변강쇠를 경험하고 난 뒤 아낙들의 역치는 ‘100’으로 뛰어오를 것입니다. 과거보다 100배는 더 강력한 자극을 받아야만 비로소 만족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전쟁터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마을 남편들은 아낙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절망하면서 ‘고객 감동’을 실현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마을은 가정 파탄과 불륜으로 얼룩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