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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은 충무공 탄신일? '산재 노동자의 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4. 4. 19. 10:51

- '산재 노동자의 날' 스토리

 

1993510일 오후 4시 즈음 태국 나콘 파톰(Nakhonpathom) 주에 있는 한 공장에서 불이 났다. 담뱃불에서 시작한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공장 안에 천과 솜, 플라스틱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에 타기 쉬운 재료가 많았던 이유는 이 공장이 봉제 인형을 만드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케이더 그룹(開達集團)은 마텔과 같은 외국 회사의 주문을 받아 디즈니 캐릭터나 심슨 봉제 인형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 화재로 188명이 목숨을 잃었고, 469명이 부상을 당했다. 희생자를 수습하는데 2주간이나 걸렸다. 15분 만에 무너진 건물에 희생자들이 깔려 있어서 크레인을 동원해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참사로 60여 명의 아이가 고아가 되었다. 그만큼 이 참사에서 여성들의 희생이 컸다. 188명의 희생자 가운데 186명이 여성이었다. 하루 125(4천 원)의 저임금으로 노동을 시키는 공장에서는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하고 어린 여성들이 주를 이뤘다. 희생자가 많았던 것은 관리 감독 방식에서도 문제가 컸기 때문이다. 일하는 여성들이 인형을 훔쳐 갈 수 있다며 공장의 문을 외부에서 잠가 놓고 작업을 시켰기에 화재가 발생해도 즉각 탈출하기 힘들었다. 화재 경보기가 없어 불이 난 지도 몰랐고 자동으로 물이 분사되는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1400여 명이 일시에 탈출하는 과정도 여러 참사를 일으켰다. 그나마 좁은 통로는 압사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저비용으로 공장을 건축했기 때문에 골조가 매우 약해서 그나마 탈출해 사람이 많이 오르게 된 비상계단은 그대로 무너져 사람들을 추락시켰다. 이런 엄청난 희생을 낸 참사에 책임자 처벌은 솜방망이였다. 담배로 불을 낸 직원은 징역 10년 형을 받았지만, 공장문을 걸어 잠근 공장주와 관계자들은 징역이 아닌 벌금형에 처했을 뿐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6428,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촛불이 켜졌다. 케이더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이었다. 당시 뉴욕 유엔본부에서 매년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에 참석했던 국제자유노련(ICFTU) 대표들이 케이더 공장의 산재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나선 것이었다. 나선 이유는 노동자들이 산재로 희생을 당하는 현실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2003년부터 428일을 산재 희생 노동자를 추모하고 산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기념일로 삼고 있다. 태국은 1993510일을 법정 '산재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로 지정했다. 이외에 대만, 캐나다, 미국, 영국 등 19개 국가도 산재 노동자의 날이라며 법정기념일로 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15살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를 들어 매년 7월을 산재추방의 달로 정해왔다가 2002년부터 4월을 산재추방 운동 기간으로 삼아왔다. 근래에 428산재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법정기념일인 산재 노동자의 날로 제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여전히 산재는 계속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잠정)’를 보면 2023년 사고사망자는 598, 사망사고는 584건이었다. 매년 5~600명이 산재 사고로 희생되고 있다. 이에 보수주의자라 불리는 작가 김훈조차 산재에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 한 바 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산업재해로 일 년에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이 사회는 안정되고 편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은 반드시 보수주의자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죠.”라고 말한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이것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젊은이가 바랐던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특히 소규모 작업장의 경우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11월부터 지난 9월까지 총 2292명에 대한 산재 신청이 승인됐다. 이 기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1843명이었는데 이는 전체의 80.4%를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분석을 보면 2022년 업무상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전체 874명인데, 이 가운데 365(41.7%)549인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0인 이상 사업장(167)보다 2배 이상 많았다. 20233분기까지 재해사망 사고는 총 449건이고 이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이 261건이어서 50인 이상 사업장(188)1.3배가 넘었다. 많은 소규모 업체들은 산재 사고 예방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어려움 정도가 아니라 목숨이 달린 것이다. 산재 사고의 예방도 중요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것도 여전히 필요하다. 특히 50인 이하 소규모 작업장에 대한 담당 조사와 수사 인력이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업무상 사고업무상 질병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데 겉으로 명징한 업무상 사고와 달리 잘 드러나지 않는 업무상 질병은 증명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홀대할 수 없다. /김헌식(중원대 특임교수, 미래학회 연구학술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