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혁신의 씨앗과 부의 원천지는?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8:28

<김헌식 칼럼>혁신의 씨앗과 부의 원천지

2010.07.13 13:46

 




[김헌식 문화평론가]드라마 < 제중원 > 은 최초의 근대병원을 다룬 작품이었다. 근대시기의 '최초'에 대해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주목하고 있었지만, 성공한 작품은 거의 찾을 수 없다. 근대는 전통의 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콘텐츠가 되기 힘들 수 있다. 전통에 대한 긍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작품으로 < 허준 > 을 들 수 있다. 드라마 < 허준 > 의 본래 원작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이제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되었다. 

인류의 소중한 유산으로 보호받게 된 동의보감은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경상도 산음(산청군)땅에서 시작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지리산의 풍광이 만들어낸 약초에서 비롯했다. 만약 사람들이 쉽게 범접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면, 허준이라는 인물은 물론 동의보감이라는 보물도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의복문화의 혁명이었던 목화도 마찬가지였다. 

문익점이 붓뚜껑에 몰래 밀수(?)해온 목화씨를 처음 시배(始培)한 곳도 산음땅이었다. 그곳에서 재배의 시도가 이루어져도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지지 않을 곳이었다. 단순히 문익점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시배가 이루어졌다고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마침내 문익점은 그 눈이 가지 않는 공간에서 의복의 혁명을 이루는 목화재배에 성공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깊은 골, 우거진 숲 때문에 마지막 빨치산이 잡힌 곳도 산청이었고, 가야의 마지막 왕이 쫓겨 묻힌 곳도 산청이었다. 그것을 구양왕릉이 보여주고 있다. 여순반란군의 마지막 격전지가 대원사 계곡이 된 것도 마찬가지겠다. 

유배의 공간이었던 남해는 그 유배의 공간을 화려한 콘텐츠의 공간으로 바꾸려고 한다. 유배지에서 남긴 인물들의 다양한 기록과 그들의 행적은 또 다른 부활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보성의 경우에도 태종시기의 코끼리 유배 섬이 새로운 콘텐츠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강진의 정약용 유배지는 남도답사 1번지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수령이 부임을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을 뱃길을 가야했던 제주도는 국제적인 휴양도시가 되어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 되었다. 

소외와 외면의 공간에서 오히려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씨앗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안철수 교수는 남들이 다 하는 것, 인기 있는 직종은 앞으로 인기가 없고 이미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누누이 말한 바 있다. 남들이 몰려가는 곳을 가다가 낭패를 본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배고프면서도 바보같아도 묵묵히 남들이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길을 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아이폰 아이패드의 혁명은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배고프고 바보같은 시공간이 마침내 오랜 인고 끝에 중심이 되는 일이 벌어지는 일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겠다. 

지리산을 둘러싼 산골이라고 여겨졌던 산청의 경우, 최근 2013년 세계전통의학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기획목적은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에 맞추어 세계전통의학 혹은 대체의학들이 집결하는 장의 형성이다. 주류의학의 한계와 단점을 보완하고 나아가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의학들의 세계적인 중심이 되는 것이다. 

한때 외면받았던 전통의학이 과학적 합리적인 새로운 대체의학으로 거듭나면서 집적이 되겠다. 이미 많은 의학 클러스터가 가시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이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고속도로의 개통 등으로 근접성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숨겨진 콘텐츠들을 세상 밖으로 집적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동대문 패션마켓도 줄곧 비주류와 소외속에서 중심을 꿈꿔서 성공을 이루어냈다. 기존의 주류패션에서 시도하지 않는 창조적인 작업들을 통해 주류 패션을 위협하고 대체해 내었다. 그것이 동대문패션 신화의 비결일 것이다. 이것만은 아니라 이러한 작업들을 클러스터화하고 집적해내는 것이 중요했다. 

소외와 외면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혁신의 씨앗을 어떻게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보존한 공간이 한꺼번에 노출될 경우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대문이 그렇고 산청이 앞으로 그럴 수 있다. 보존된 미학이 세속에 망가지는 것은 매우 쉬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