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트렌드]한국사회에 불어닥친 거짓말 신드롬?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5:54

[트렌드]한국사회에 불어닥친 거짓말 신드롬



새삼 ‘거짓말’이 화제다. 황우석 교수의 대국민 사기의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지면서 국민들이 받은 충격도 엄청났지만 그만큼 거짓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거짓말 탐지기가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TV드라마에서도 온통 사기꾼의 거짓말이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갑자기 ‘거짓말 사회’가 된 듯하다. 



#거짓말의 특징 

심리학자인 폴 에크만 교수에 따르면 사람은 평균 8분에 1번, 하루에 200번가량의 거짓말을 한다. 이것은 모든 의례적 인사와 표정·태도를 포함한 것이다. 거짓말은 냄새와 비슷하다. 냄새엔 향수처럼 좋은 것도 있지만 악취처럼 나쁜 것도 있다. 마찬가지로 거짓말도 원천적으로 나쁜 거짓말이 있고 좋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은 크게 네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하거나 가까운 사람을 돕기 위한 거짓말, 둘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거짓말, 셋째 남의 이목을 끌기 위한 거짓말, 넷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거짓말. 거짓말도 잘 쓰면 약이 되고 못쓰면 독이 된다고 할까. 

#황우석 거짓말의 패턴 

황교수 거짓말의 경우 두번째와 세번째가 섞여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심하게 받은 데다 남 앞에 서기 좋아하는 자기과시적 성격을 가진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황교수의 경우 나르시시즘(자기애)이 섞인 거짓말이 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본인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했고 성취감이 강했기 때문에 미래에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발표하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한국의 경우 아파트를 짓기 전에 분양을 할 정도로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지배적인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현상”이라며 “황교수도 그런 사회 분위기에 감염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시부야 쇼조가 지은 ‘거짓말 신드롬’에는 정치인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행동패턴인 ‘의혹처리 스크립트’가 소개되어 있다. 의혹처리 스크립트에 따르면 1단계에서는 의심을 받으면 무조건 “1원도 받은 적 없다”고 화를 내며 부정한다. 2단계에선 들통이 나면 “비서에게 물어보겠다”고 한 후 “물어봤더니 받은 적 없다 하더라. 그러니 받은 적 없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게 되면 3단계로 “비서가 받은 것을 감추고 있었다. 나도 몰랐다”고 피해자인 척한다. 4단계는 “나는 잘못이 없으나 결과적으로 당에 폐를 끼쳤으니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아직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부분이 남아 있지만 황교수 사건의 경우도 ‘의혹처리 스크립트’와 단계별로 유사한 점이 많다. 

#거짓말이 용납되는 사회 

황우석 교수의 논문과 증언 대부분이 거짓으로 밝혀졌음에도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같은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 

이민수 교수는 “황우석을 통해 국민이 부자가 되는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황우석 교수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는 시선이 강했다”며 “거짓말 자체보다 거짓말의 ‘색깔’을 집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과가 좋다면 과정은 약간 틀릴 수도 있다는 정서가 지배적이란 의미다.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과 박용천 교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포함, 거짓말쟁이 상당수는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부분이 더 크다”며 “한국이 서양보다 더 거짓말을 잘하거나 관대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기꾼’이 점령한 TV 

현재 지상파 TV 3사의 드라마 상당수는 주인공이 사기꾼이거나 거짓말의 중심에 서 있다. SBS ‘마이걸’의 유린과 KBS ‘안녕하세요 하느님’의 은혜는 귀여운 여성 사기꾼으로 등장하고 MBC ‘늑대’의 대철은 사모님의 등 치는 제비다. SBS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주인공 남녀 넷이 전국민을 상대로 한 거짓말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 속성상 극적 반전을 위해 거짓말이 종종 등장하지만 사기 행각 자체가 방송 3사 동시에 화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거짓말과 사기로 충격을 받은 사회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신분상승 등 비현실적 욕망을 대중문화가 충족시켜줘야 하는데 계층간 이동이 힘들어지면서 사기나 거짓말을 통해서만 그런 것이 가능해진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교수는 “드라마의 거짓말 신드롬은 ‘하얀(선의의) 거짓말’에 대한 향수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며 “다만 과거 건달·깡패들이 풍운아처럼 묘사되듯이 사기꾼이 좋게만 묘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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