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족보를 ‘꼬고 또 꼬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5:54

족보를 ‘꼬고 또 꼬네’

KBS (위)에서는 친형과 형수가 아버지와 어머니로 나온다.
KBS (위)에서는 친형과 형수가 아버지와 어머니로 나온다.
KBS <슬픔이여 안녕>(위)에서는 친형과 형수가 아버지와 어머니로 나온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요즘 드라마속 주인공들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않고 있다.왜 그럴까? 호부호형을 제대로 하기에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족보가 너무 얽혀 있기 때문이다.

KBS <슬픔이여 안녕>에서는 도망간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을 형이 자신의 호적에 올리는 바람에 형과 형수가 아버지·어머니가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또 SBS <하늘이시여>에서는 과거에 버렸던 딸을 재혼해서 얻은 의붓아들과 결혼시켜 어머니가 딸의 시어머니가 되었다.KBS <별난 여자 별난 남자> 역시 사촌간인 줄 알았던 주인공들이 사실은 친형제임이 밝혀져 관계가 얽힌다.

이렇게 드라마 속에서 다양한 ‘족보 꼬기’가 시도되는 것은 극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서다.과거에 자주 사용되었던 ‘옛날에 숨겨둔 자식’이라는 설정 정도는 이제 식상하기 때문이다.가족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설정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드라마속 '족보 꼬기'는 검증된 흥행 코드

SBS <하늘이시여>의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남매간이라고 볼 수 있는 남녀의 결혼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는 네티즌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평소 <하늘이시여>를 즐겨 본다는 이현주씨(50)는 “시어머니가 사실 친엄마라면 얼마나 며느리한테 잘해주겠는가. 부럽다”라고까지 말했다.현실에서 금기시되는 관계가 드라마에서 실현되는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이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드라마 속 ‘족보 비틀기’는 겹사돈이라는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1999)의 성공이 출발점이 되었다.현대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재벌 행태를 드러내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했던 이 드라마 이후, 드라마 제작자들은 복잡한 혼맥으로 이루어진 재벌들의 독특한 족보 형태까지 모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족 관계’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드라마 속 ‘족보 꼬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대중문화 평론가 김헌식씨는 “정형화한 가족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각과 소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하지만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를 자주 유도하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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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