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드라마-영화 속 ‘오빠들’ 이렇게 변했다
“오빠, 터프하고 귀여워요!”
반항적인 태도와 말투에서 느껴지는 남성적인 카리스마. 고독한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서 불량배 여러 명을 너끈히 때려눕히는 ‘싸움 짱’.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 속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터프가이의 이미지다. 그러나 터프가이 ‘오빠’도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진다. 때론 어리광이나 애교를 부리고 유머러스한 행동으로 웃긴다.
○ 마초형 터프가이에서 멀티형 터프가이로…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월∼금요일 오후 8시 20분)에서 이윤호 역을 맡은 정일우는 요즘 10대 소녀들의 우상이다. 회원이 10만5000여 명에 이르는 그의 팬카페 게시판에는 극중 윤호가 오토바이를 몰고 싸움을 잘하는 것에 대해 “멋지다” “남자답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러나 “귀엽다”는 반응도 눈에 띈다. 그가 부모 앞에서 애교를 부리거나 떼를 쓰는 상반된 모습을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요즘 터프가이는 과거에 비해 탈권위적이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루 갖춘 특징이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1990년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런 변화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한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무너져 더는 ‘마초형 터프가이’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터프가이의 얼굴은 갈수록 꽃미남이 되어 곱상해지고 패션도 검은색 가죽잠바와 청바지 일색에서 색과 스타일이 다양해졌다. 예전엔 말이 거의 없는 무뚝뚝함이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요즘은 심각하고 진지한 면과 함께 유머감각과 웃음도 필수가 됐다.
○ 터프함의 변화, 그리고 불변(不變)의 법칙
1980년대 이덕화나 1990년대 초반 최민수는 심각한 표정의 투박한 캐릭터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외모는 남성적이고 우락부락했다. 1990년대 후반 정우성과 2000년대 초반 권상우도 고독한 반항아의 이미지는 이들과 같았다. 예쁘장한 외모와 날카롭고 섬세한 면은 이전 세대의 터프함과 달랐지만.
정일우는 외모로는 남성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젊은 여성들은 필요에 따라 카리스마와 귀여움을 번갈아 보여 주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여고생 손모(17) 양은 “친구들 사이에 터프가이는 나를 지켜 줄 만큼 힘이 세면서 악동 같은 친근함을 갖춘 사람으로 통한다”고 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젊은이들의 일상이 각종 규제에 억눌렸던 예전과 달리 자유분방해진 것도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진지한 고민보다 발랄한 유희에 익숙한 세대이므로 과거 터프가이의 남성성을 과장한 말투나 행동이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기준은 있다. 황상민(심리학) 연세대 교수는 “터프가이 이미지의 기본 틀은 오토바이나 ‘싸움 짱’처럼 지배집단이 정해 놓은 규범에서 벗어난 반항적 도구들”이라며 “생김새와 패션 등 부수적인 부분이 유행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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