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 촛불이 밤하늘을 밝힌 10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한 인터넷 카페의 제안에서 시작된 촛불집회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촛불은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왜 촛불은 더욱 더 활활 타오르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3S(SoftㆍSquareㆍSpeed)’에서 찾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먹을거리라는 누구나 아는 ‘쉬운(Soft)’ 주제를 놓고 ‘광장(Square)’에서 서로 터놓고 토론하는 가운데 인터넷이 촛불의 전파력에 더욱 ‘속도(Speed)’를 내게 했다는 설명이다. 3S는 비폭력의 정신을 견지하는 자정능력도 만들어냈다.
수업을 마치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중학생 이모 군은 “쇠고기 문제는 친구들도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군은 “취임 100일째라 속단하기 어렵지만 성장에 치중한 MB노믹스는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고도 했다.
아들 가족과 함께 광화문에 자리를 잡은 최모 할머니는 “국민이 걱정하는데 대통령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면 안 되지. 혼자 다 안다고 그러는 건지…”라며 혀를 찼다. 최 할머니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먹는 음식인데 어떻게 (촛불집회에) 안 나오겠어”라고 되물었다.
과거 이슈가 민주화와 통일, 노사관계 등 거대 담론이었다면 2008년 6월 길거리 이슈는 먹을거리 안전과 관련된 생활 그 자체다. 결국 10대와 주부, 노인 할 것 없이 국민 모두가 거리로 나오는 계기가 되면서 촛불을 이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 쉬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2002년 효순ㆍ미선 양 사망 때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촛불집회 주제가 정치적이었다면, 쇠고기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며 “이 때문에 표현 욕구가 더욱 강해지고 그 방식도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감성의 장(場)으로 변모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은 2008년 소통의 장으로 또 한 번 변신하면서 활활 타오르는 촛불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고대그리스의 토론 장소였던 ‘아고라’는 2008년 온라인 토론 공간으로 부활했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광장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불순한 의도의 정치적 행위였기에 광장은 억압과 공포의 대상이었다”며 “그러나 최근 들어 광장의 이미지가 변하면서 젊은 세대의 발랄한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고 설명했다. 온ㆍ오프라인 광장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됐다는 설명이다. 10일 최대 인파가 모였는데도 비폭력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온ㆍ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참여와 소통, 즉 광장의 진면목 덕분이었다.
참여 방식도 의도적 동원에서 자발적 모임으로 이동했다. 지도부가 없는 탓에 서울광장은 자연스레 소규모 행사나 즉석 공연의 차지가 됐다.
11일 새벽까지 서울광장에 남아 있던 30대 여성은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면서 비판하고 회원들과 생각을 공유한다”며 “온라인 토론광장이 없었다면 이처럼 많은 사람의 참여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가속페달을 밟게 한 계기가 인터넷이라는 것이다. 한 50대 남성은 “20년 전 돌멩이와 화염병을 들었던 젊은이들 손에 이젠 디카와 폰카가 있다”며 “인터넷으로 상황을 알리니 그야말로 디지털 시위 혁명”이라며 놀라워했다.
온라인은 시위대의 폭력을 자정시키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경찰의 차단벽인 컨테이너 박스를 넘기 위해 스티로폼 계단을 설치하던 흥분한 시민에게 오프라인 시위대는 ‘비폭력’을 외쳤고, 온라인 댓글도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온라인에선 ‘전경 성폭행설’, ‘여대생 사망설’ 등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빠른 속도로 유통되는 단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8년 국민은 첨단 기기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에게 촛불집회는 성난 민심의 표출이자, 축제다. 어느 20대 여성 참가자의 말처럼 촛불집회는 지금 이 시간에도 온ㆍ오프라인 광장을 넘나들며 유기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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