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집중분석]“긴 것은 무조건 싫증 … 3분 넘으면 참을 수 없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9:27

[집중분석]“긴 것은 무조건 싫증 … 3분 넘으면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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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으로 소통하는‘플러그 세대’ 대해부>

“인터넷 없으면 금단현상” 단편적인 정보에 사고 결핍 심각

전문가들 “기승전결 사라져 문화깊이 없고 가벼움만 남아”


“아직도 상대방이 언제 읽고 답장할지 모르는 e-메일을 쓴다고요? 구식이죠. 이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메신저가 대세에요.”

인터넷과 휴대폰 없이는 단 1분도 못 견디는 ‘플러그 세대’ 윤한결(가명ㆍ19) 군. 과거 5개에 이르던 윤군의 e-메일 계정은 하나같이 용도폐기 상태다. 메신저나 문자의 답장을 기다리는 2~3초조차도 지루한 윤군이 ‘동시성’이 떨어지는 e-메일로 친구의 안부를 묻거나 자료를 주고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나마 메신저에서도 곧바로 답장이 오지 않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거나 미련 없이 대화상대를 바꾼다.

윤군의 ‘즉각성’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긴 것’은 무조건 지루하고 참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짧아야 한다. 아무리 재미난 UCC라도 ‘3분’ 이 넘어가면 금세 지겨움을 느낀다. 50글자가 넘는 휴대폰 문자나 댓글은 ‘너무 길어서’ 읽지 않는다.

사회학 전문가들은 “기승전결의 논리성이 사라지고 강렬한 자극만 원한다”면서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는 깊이가 없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만 남았다”고 우려했다.

▶강렬한 자극,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같은 ‘플러그 세대’의 등장과 ‘3분’의 사회학은 드라마와 소설 등 문화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웃찾사’ ‘개그야’를 비롯해 최근 인기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3~5분짜리 콩트로 웃음을 터뜨리는 ‘디지털 개그’를 구사한다. 그 짧은 시간에 기승전결의 논리구조를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진중권 중앙대 독문과 교수는 “현 세대는 몇 초 만에 돌아가는 리모컨 혹은 클릭하면 바로 화면 창이 뜨는 컴퓨터 아이콘에 익숙해져 있다”며 “인상을 따져가는 지각 방식이 파편화된 정보들을 짜깁기하는 몽타주 형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10~20대에서는 호흡이 짧고 가벼운 감상 위주로 이뤄진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류(類)의 일본 소설이 대유행을 하고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은 거의 읽히지도 않게 됐다”고 말했다.

복잡한 구조의 정통 사극이 사라지고 무협ㆍ액션ㆍ멜로라는 3가지 코드와 ‘고구려 건국’이라는 제한된 배경으로 단순화한 ‘주몽’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씨는 “이런 흐름 속에서는 문화가 다양성을 띠지 못하고 단순화ㆍ획일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깊이 있는 사회적 담론의 형성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김형찬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긴 호흡으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별로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단편적인 정보에 사고력 결핍=대다수 전문가들은 단선적인 현대인의 의사소통 구조와 지나치게 짧아진 사고 단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심보선 박사(전 나비아트센터 학술연구실장)는 “짧은 시간에 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이나 체화를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사장(死藏)되고 디지털 미디어에 담기 적합한 정보만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큰 문제”라며 “최근 가장 과대평가되고 있는 UCC가 담고 있는 정보의 상당수는 기존 TV 프로그램을 모방해 만드는 수준에 지나지 않아 정보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문화의 장점이었던 다양성도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김헌식 씨는 “디지털 문화의 초창기는 아날로그적 소스로부터 축적된 것들이 쏟아져 나와 콘텐츠가 다양했지만 문화의 소스가 인터넷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문화가 다시 단순화ㆍ획일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런 경향이 한국에서 강하게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일선 교수들은 특히 요즘 대학생들의 사고의 폭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는 “요즘 학생들은 ‘어텐션(집중)’의 시간이 크게 낮고 수업의 밀도와 상상력이 크게 떨어진 느낌”이라고 걱정했다.

김형찬 고려대 교수도 “문자 메시지와 메신저에 익숙하고 긴 글이라고는 기껏해야 e-메일이 전부인 요즘 학생들은 사고의 단위가 짧아 철학과 같은 깊이 있는 학문을 강의하기가 쉽지 않다”며 “최근 논술 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 일상에서의 훈련 환경이 돼 있지 않아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디지털+아날로그의 창조적 시도 시급=결국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따르면서 아날로그적 텍스트 문화가 가지는 장점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텍스트의 기반이 없는 영상 문화는 창조성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텍스트를 강조하는 기존 문화는 고루하다”며 “이들을 결합할 수 있는 창조적인 시도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심보선 박사는 “디지털 시대의 특징 중 핵심은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연결되는 ‘하이퍼링크’”라며 “잘 이용하면 넓고 깊은 정보와 사고의 연결고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어떤 키워드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몇 가지로 한정됐지만, 요즘에는 하이퍼링크를 타고 수많은 데이터가 연결되고 무궁무진한 사고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과거 소통의 주요 수단이었던 책이 저자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결정된 스토리’였다면, 디지털 시대의 정보는 쌍방향적이고 피드백이 있어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화평론가 김원 씨는 “네티즌이 보여주는 다양한 패러디나 은유, 비유를 보면 허를 찌르는 사고의 예리함에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며 “디지털 문화에 지나치게 즉물적이고 단발적이 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정체돼 있지 않고 항상 생기가 넘친다”고 두둔했다.

한없이 가볍고 감각만을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의 병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교육이 새롭게 시도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정춘 중앙대 교수는 “감각적 찰나주의인 쿼터리즘의 폐해가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각한데도 유럽과 북미에 비해 오히려 미디어 교육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인터넷을 시작하는 연령이 초등학교 이전으로 낮아진 만큼 유치원에서부터 미디어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디어 교육의 선례가 부족하기 때문에 연구가 만만치 않은 상황.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우리나라의 선구자적 노력이 절실하다”며 “아날로그가 무조건 배척되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소민ㆍ하남현 기자(som@heraldm.com)

도움 주신 분

이정춘 중앙대(신문방송학과)ㆍ김형찬 고려대(철학과)ㆍ박길성 고려대(사회학과)ㆍ주은우 중앙대(사회학과)ㆍ진중권 중앙대(독문과)ㆍ민경배 경희사이버대(NGO학) 교수

심보선 박사/전 나비아트센터 학술연구실장

김원 문화평론가

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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