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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갈등? 최근 화제의 영화들에서 남녀 가족을 다루는 방식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9. 10. 24. 08:24

젠더갈등? 최근 화제의 영화들에서 남녀 가족을 다루는 방식

-영화 '벌새'와 영화 '82년생김지영'을 중심으로     

 

 글/김헌식(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카이스트 미래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영화 벌새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가부장적이다. 항상 지시 명령적이다. 그런데 딸이 귀 뒤에 혹이 나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중에 울음을 터트린다. 아빠는 겉으로는 강한 척해보였지만 속으로는 여린 존재였다. 딸이 혹을 수술할 지경에 이른 상황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동생에게 윽박지르는 오빠도 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하면 그 오빠는 동생의 뺨을 때린다. 그에 관해서 여동생은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한다. 어느 날 성수 대교가 무너지고, 여동생 가운데 한명이 죽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다행이 그 시간대를 벗어나서 이동한 여동생은 죽지 않고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온 가족이 밥을 먹는 자리, 여기에서 폭력을 행사하던 오빠는 울음을 터트린다. 여동생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남편(공유)은 가부장적인 기미가 많이 남아 있는 지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서 탈피하려고 노력을 한다. 가사 노동이나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내(정유미)를 위하고 육아에도 적극 나선다. 육아 휴직 제도를 활용하는 모습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모나 시어머리를 통해서 오히려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물론 아버지나 남동생을 통해서 여성과 남성의 차별적인 현실을 말하기도 한다. 친정어머니가 친정아버지에게 남아선호사상을 비판하는 대목은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무심코 이뤄지는 남녀에 대한 기울어진 생각을 무조건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남동생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빙의의 정신장애 때문에 다시 일하는 것을 그만두지만 결국 가족을 긍정한다.

 

결국 벌새‘82년생 김지영은 가족 갈등 상황을 다루지만, 그 갈등 상황을 거부하거나 그 갈등 상황 때문에 가족 관계를 깨지는 않는다. 그것은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인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현실의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여성 캐릭터의 차이는 있다. 영화 벌새는 고등학생의 시선이며, 공부 잘하고 일 잘해야 한다는 관점과는 달리 개인의 자유를 꿈꾸는 주인공 캐릭터이며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이에 비해 좀 능력 있는 엘리트적이다. 어떻게 보면 여성도 할 수 있다는 양성 평등성이 좀 더 진일보한 환경에서 여성들이 성장한 것은 역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은 세상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전통적 젠더 관점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일지에 대해서 압축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은 영화 벌새에 나온다. 영화 벌새에서 자녀 교육에 대해 옥신각신하던 아빠는 엄마 탓을 하고 여기에 대드는 엄마의 뺨을 때린다. 그러자 엄마는 스탠드로 아빠를 가격하고 아빠는 피를 흘린다. 그러자 엄마는 빨리 구급약을 가져다가 상처를 치료한다. 아빠는 할 말을 잃고 엄마는 상처치료에만 집중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지금을 다루고 있는 듯 싶은데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벌새의 결론에서 더 많이 앞으로 나갔다고 하기 힘들어 보인다. 영화 벌새에서는 90년대의 세세한 사회적 풍경과 팩트들이 사실감을 더하는데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원작의 그 같은 요소를 탈락시킨 것이 아쉽다. 외연을 확장시킨다는 것이 시대적 상황의 리얼함이 덜해진 것이다. 82년생같지 않은 김지영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일 것이다. 세대는 달라져도 고민의 지점은 언제나 있고 그것을 투영하고 싶은 작품들을 언제나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주의 작품이 앞으로 항상 견지해야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82년생 김지영'은 좀 더 여성주의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  관점은 창작자의 고유한 것이며 관객은 이를 향유할권리가 있다.  하지만 하나의 관점만으로 사회나 공동체에서 영위할 수는 없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싶어 하지만 때론 아이와 집안 일을 통해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직장 동료는 자신은 평생 일만 하다가 죽는 신세라고 말한다. 그것도 사실은 남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을 외면하거나 아니면 가족을 붕괴시키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남의 일을 하고 성공이니 승승장구니 하는 말을 사용하는지 모른다. 자본주의와 기업주의에 이용당하거나 포획당한 여성해방주의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일 것이다. 상업적으로 이용당하지 않는 것은 결국 누구도 강요되지 않는 자기 스스로 판단, 행위 하는 것이 서로 더불어 사는 원칙에 부합해야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