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영화 '해어화'(사진 위)와 '아가씨' ⓒ더램프 / 모호필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연이어 개봉한다. 영화 ‘암살’, 그리고 ‘동주’와 ‘귀향’의 성공으로 탄력을 받고 있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영화 ‘해어화’는 대중가요시대의 주인공 가수가 되려는 기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해어화는 기녀의 별칭이다. 여성에 초점을 맞추어 가수를 통해 자아실현의 꿈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문화적 코드에 얼마나 부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 이전에 기녀에 대한 이미지 복권이 얼마나 이뤄졌는지가 변수일 것이다. 황진이 같이 매우 유명한 기녀 빼고는 대중적 관심이 별로 없는 것은 여전하다.
박찬욱 감독은 보편성을 추구하며, 세계시장을 고려한 영화 ‘아가씨’에 일제 배경을 다뤄낸다고 한다. 문화적 암흑기라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와 견주어 내고 있는 것이다. 엄혹하기로는 1940년대가 극에 달했는데 말이다.
영화 ‘해어화’와 공통점은 각 개인들의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겠다. 다만 그 욕망이 건강한 것인가 아니면 탐욕적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치정과 물욕을 권장할 수는 없겠다.
개인의 관점이라면, ‘덕혜옹주’를 다룬 영화도 제작 중이다. 비련의 마지막 왕실 후손이라는 점은 관련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은 중추적인 문화코드였는데, 영화를 통해 덕혜옹주 신드롬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전적인 일제 강점기 코드의 영화도 있다. 1920년대 의열단의 활동을 다룬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이 제작 중이다. 의열단은 영화 ‘암살’에서 등장한 약산 김원봉이 주축이 되어 만들고 활동했던 그 단체이다.
다른 영화들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 ‘암살’과 같은 액션 영화 장르는 영화 ‘의열단’일 것으로 보인다. 액션 장르 전문인 김지운 감독의 감각이 얼마나 달리 차별화될 수 있을지 궁금증을 일게 한다.
또 한 명의 액션 영화 전문 감독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바로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다. 영화 ‘군함도’는 지옥의 징용 공간, 하시마 섬을 탈출하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인데, 과연 액션 전문 감독의 감각이 어떤 식으로 빛을 발할지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아무래도 ‘탈출’이라는 코드가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부합할지가 관건일 수 있겠다.
이 밖에도 영화 ‘동주’의 제작사는 가수 이난영, 시인 백석, 만담가 신불출 등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을 연이어 영화로 제작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인물들을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영화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동안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는 일제와 이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이라는 단일한 구조나 프레임으로 접근했던 그동안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겠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개인의 꿈과 소망 그리고 정(情)적인 코드들이 가미되고 있다. 영화 ‘동주’도 결국 그 시대 청춘들이 자신의 꿈을 노래하기에는 엄혹한 세월을 그려내고 있었다. ‘귀향’도 가족, 친구들과 행복한 삶을 꿈꾸었던 소녀들의 꿈을 다시금 꺼내 원한을 풀어내고 있었다. 영화 ‘암살’도 주요 주인공들의 가족 이야기가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일제강점기 자체에 대한 과잉 담론일 것이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 대중적인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실 작년에 영화 ‘암살’의 흥행이 탄력을 준 게 사실이다. 귀향이 대표적이며 속속 제작되는 작품도 일을 추진하는데 수월해졌다. 본래 대중문화에서 흥행작이 있으며 투자나 제작, 배급이 쉬워지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 시기에 관심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과의 공통분모를 찾아낸 영화들이 주목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제 강점기의 영화가 흥행을 하거나 대중적인 주목을 크게 이끌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단순히 일제 강점 시대를 다룬다고 해서 당연히 주목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재가 자유로워진 점을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친일파를 두고는 금기가 존재하는 영역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대의 미래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일제 강점기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청춘들에게 이러한 암울한 현실이 일제강점기와 견주어진다는 것은 성찰을 요하는 일이다. 어쨌든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영화가 등장하는 사회적인 요인 때문에 무조건 이런 영화들이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이며 많은 매체에서 다뤄내고 있는 ‘일제 강점기 배경 영화’라는 범주는 벌써부터 피로감을 낳게 한다.
관객의 선호는 명확하다. 자신의 삶과의 연관성이나 영화 선택의 기호에 부합하지 못하면 어떤 대의명분이라도 오래 지속할 수 없는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앞의 일제 강점기 배경 영화 때문에 피로감이 쌓인 관객도 많다. 대중적 작품이 없는 상황 속에서 이는 한층 더 가중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일제 강점 배경 영화들의 결과가 우려스럽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