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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을 성공스토리만으로 풀 수 있을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0. 2. 10. 14:41

의학을 성공스토리만으로 풀 수 있을까?



885년 4월. 제중원(광혜원)을 만든 이는 고종의 명령에 따른 알렌이다. 미국 공사관 소속으로 의사로 부임했던 그는 1884년 조선을 이렇게 묘사했다.

"잠 못 이루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재해를 당한 집에서 민간치료를 하기 위해 울부짖는 무당의 푸닥거리와 더불어 당나귀의 울음 소리만이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전부였다."

외국인이 조선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풍경 스케치인데, 이러한 접근은 조선의 본질적인 모습을 통찰해 내지는 못한다. 울부짖는 무당의 행동을 묘사한 부분도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드라마 < 제중원 > 에서는 푸닥거리만 하다가 어머니를 잃게 만드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전반적인 내용은 전통 의학에 대한 부정이다. 그것은 대중적 주목을 낳았던 드라마 < 허준 > 이나 < 태양인 이제마 > 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다.

또한 알렌은 서울(한양)의 물은 더럽고, 침술은 불결하며,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독한 술을 마신다고 했다. 조선의 의학은 중국에서 따왔고, 약재는 많지만 임상적 효과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전통의학을 부정한 알렌은 과연 조선에서 큰 역할을 했을까? 조선에서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콜레라였다. 1886년 발생한 콜레라에 알렌과 제중원은 무력했다. 서울에서만 7천명이 죽었다.

알렌만의 제중원 활동만이 아니라 구한말 당시 선교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의료 사업들은 결국 동양 의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몸과 마음의 불가분의 의학관, 유기적-전체적인 의학론, 인의와 심의의 의료인 등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료기술-즉 테크놀로지 치료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교 의료인들은 조선의학을 전적으로 부정했다. < 제중원 > 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이 주목하는 것은 의료 테크놀로지이다. 드라마 < 제중원 > 은 서양 의료관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 의학에 대한 불신과 한계를 생각하는 대중 심리에는 배치되는 것이다. 복잡하고 구체적인 것보다는 모호하고 환상적인 불확실성의 가능성에 기대를 가져보는 대체 의학의 매력은 이와 같은 대중심리에서 비롯한다.

일본은 명치유신을 거치면서 자신의 전통 의학을 부정한다. 하지만 조선은 서양 선교 의사들과 뒤이은 일제의 의료 시스템에 따라 자신의 전통 의학을 거세당하게 된다. 조선인 스스로의 판단은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최근 국과수에 보관되어 있는 백백교와 명월이의 생식기에 관한 소송이 화제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근대 의료체계의 모순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비록 그 신체의 표본이 일제가 저지른 것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인격성을 파괴하는 한편, 인간의 몸을 파편화 시키는 서양식 의료관의 폐해를 나타내는 것이다. < 제중원 > 과 같은 드라마는 전통 의학은 하대하고, 서양식 의료만을 높이면서 마치 일제의 식민사관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의료 오리엔탈리즘의 내재화가 담겨 있다. 만약 우리가 독립적인 나라를 유지했다면, 명월이의 생식기가 국과수에 보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 제중원 > 에서는 친구의 시신을 해부하는 것과 소 해체 작업과 동일선상에 놓았다. 백정의 칼 솜씨가 쓰이는 곳은 사람의 육신을 해체하는 것과 같았다. 시각적 감성적 충격은 주지만, 여운이나 성찰은 주지 못한다. 더구나 전반적으로 장면을 잡아내기 용이한 외과만 부각되는 것도 한의학과는 상반된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말 좋은 콘텐츠라면 구체적인 증상을 가지고 이에 대한 양의와 한의가 대결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문제는 한의에 대한 새로운 정보 제공을 통해 인기를 얻었던 다른 드라마와 달리 < 제중원 > 은 알려줄 정보가 적다거나 차별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 이미 < 하얀거탑 > 이나 < 종합병원 > , < 외과의사 봉달이 > 등이 현대 의학 드라마의 재미를 시청자에게 충분히 선사했기 때문이다. 자칫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학습하고 숙달하면서 시청자에게 제공해야 할 의료지식들이 어중간할 수 있다. 그것은 의료 테크놀로지에 함몰되면서 갖게 되는 딜레마였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성공하는 스토리 구도는 이러한 근대 의료에 대한 선망과 우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쨌든 의료에서 대중이 원하는 것은 마지막 희망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현대 의학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체의학에 쇄도하는 관심은 이를 방증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수난이야 어쨌든 천한 신분에서 양의로 성공하는 과정은 성공스토리라는 점에서는 대중적 코드일지는 모르지만, 차별화 되는 선호요인은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