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들이 촛불집회·쇠고기·신자유주의 등 최근 사회 이슈를 함축적으로 반영,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드라마는 멜로드라마에 치우친 기형적인 구조로 사회 이슈를 드러내놓고 다루지 않았다. 고작해야 지나간 역사를 다루는 정통 사극이나 정치 드라마를 현실에 대입해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들은 한발 더 나아가 직접적으로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SBS의 ‘일지매’가 대표적으로 지난 2~3일 촛불집회를 연상케 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고관대작의 아들이 음주 승마로 어린아이를 치어 사망케 한 후 도주하자 격분한 마을 사람들이 시위를 하며 사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관군은 오히려 무력으로 사람들을 과잉제압하려 한다.
이에 시청자 게시판에는 ‘촛불집회’나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풍자한 것 같다며 ‘초등학생도 연행되는 그런 현실을… 드라마에서 속시원하게 잘 봤다’(김소령) 등의 반응이 많았다. 물론 촛불집회를 미화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이현직 책임프로듀서는 “약간의 고민은 있었지만 일지매가 민중의 대변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로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SBS ‘식객’의 경우 지난 7일부터 한우의 우수성을 드러내며 우회적으로 쇠고기 사태를 이슈로 떠올리게 하고 있다. 다음주까지 이어지는 쇠고기 편에 대해 김영섭 책임프로듀서는 “원작과 영화에도 쇠고기 에피소드가 있는 만큼 다른 의도를 가지고 찍은 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주인공 역의 김래원이 지난달 자신의 홈페이지에 “요즘 쇠고기 편을 찍고 있는데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라고 글을 올리는 등 최근의 쇠고기 정국이 연상됨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 보인다. 또한 운암정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우려는 봉주를 향해 그의 아버지(최불암)가 세계화만을 외치며 전통을 왜곡하려 한다고 호통치는 대목은 현재 대두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밖에 KBS의 ‘최강칠우’에 대해서도 극중 서민들을 무력진압하는 장면은 촛불 시위를 연상케 하고, 조선 관리들이 청나라와의 외교에서 나라 체면만 생각해 민초들의 힘들어진 생활을 도외시하는 부분 역시 현재의 외교상황과 맞아떨어진다는 시청자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문화평론가 이문원씨는 “창작 사극은 풍자 요소를 넣기가 가장 수월하고 시청자들 역시 거부감 없이 이를 즐길 수 있다”고 밝혔다. ‘최강칠우’의 박만영 프로듀서도 “(불륜 등을 다루는) 기존 드라마의 제작 관행에 많은 시청자들이 식상해 하고 있어 이제는 서사적인 구도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트렌드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드라마들이 국민정서에 눈치를 보면서 그때그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진보적인 관점에서 드라마의 이 같은 변화는 긍정적이지만 마치 1회성 이벤트를 보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문주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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