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외계인 디아스포라와 코리언 디아스포라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0. 20. 14:25

 

우리는 외계인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머나먼 우주를 건너 지구에 찾아온 그들은 지구인보다 더 나은 지능과 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구인은 가까운 달을 가기도 버거운데 말이다. 더구나 거대한 우주선을 몰고 온 외계인이 비록 지구에 불시착했어도 그들은 우월한 존재일 것이다.

먼 외계에서 지구로 날아올 수 우주선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은 그들의 문명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영상콘텐츠 속의 대부분의 외계인은 놀라운 문명 수준을 자랑한다. 우리의 영원한 외계인 ET가 생김새는 그래도 결국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한명의 외계인만 지구에서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집단으로 지구에 불시착한다면 어떨까.

피터 잭슨의 영화 '디스트릭트 9(District 9, 2009)'은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외계인 등장 영상콘텐츠들을 전복시킨다. 지구에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아무리 그들이 훌륭한 문명을 가지고 있어도 한낱 지구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존재일 뿐이다. 그들의 문명도구는 그들의 사회에 연결되어 있지 않는 한 쓰레기에 불과했고, 그들의 문명을 활용할 수 없는 외계인은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외계인들은 본의 아니게 디아스포라의 존재가 된다.

지구 정부는 오갈 데 없어진 외계인을 하나의 관리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문제나 일으키지 않도록 공권력을 동원해 통제한다. 더구나 그들이 가지고 있을지 모를 위생상 위험인자들을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그렇게 통제와 방어의 공간이 '디스트릭트 9'이다. 한편으로 그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군사적, 경제적 가치를 뽑아내는 연구는 지속한다. 28년동안 불법 무법천지가 되었다고 판단한 당국은 철거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지극히 미국적이면서 우회적으로 이민자의 모습을 그리며 한편으로 이민정책들을 비판하고 있다. 영화의 주제는 단순히 외계인들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만 있지는 않다. 외계인 관리국 MNU 직원은 외계인 알기를 우습게 알면서 그들에 대한 폭력도 서슴지 않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직원은 접촉과 감염을 통해 외계인과 같은 존재가 돼어 서서히 변하게 된다. 여기에서 함축하는 바는 외계인이나 지구인이 다를바 없는 존재라는 것. 이주민과 정주민의 차이는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MNU 직원은 외계인이 되어 지구인들에게 포획되어 연구 대상이 되고, 쫓기는 처지가 된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이산(離散) 유대인', '이산의 땅'을 의미했다. 세계화 때문에 전지구적인 디아스포라 현상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주와 이산에 따른 충돌과 갈등 나아가 문화 예술적 가능성 때문이다. 이주와 이산의 교차성은 지구인과 외계인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여성을 다문화의 관점에서 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2004~2005년이 다문화 문학에서는 중요한 시기이겠다.

소설가 김재영의 단편집 < 코끼리 > , 손홍규의 < 이무기 사냥꾼 > (2005), 박범신의 < 나마스테 > (2005), 공선옥의 연작 소설 < 유랑 가족 > (2005)등이 대표적인 소설 작품이다. 전성태는 < 강을 건너는 사람들 > (2005), 정도상의 연작소설 < 찔레꽃 > (2008)은 탈북 이산인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시인 하종오의 < 반대쪽 천국 > (2004), < 국경없는 공장 > (2007), < 아시아계 한국인 > (2007), < 베드타운 > (2008)등도 이주민들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잡아내 형상화했다. 영화로는 < 반두비 > , < 로니를 찾아서 > , < 처음 만난 사람들 > 등을 들 수 있다. 국내에 부쩍 늘어난 이주민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문학적 혹은 예술적으로 형상화 하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들 스스로 문학을 창작하고 향유하는데 아직 이르고 있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혜나 연민적 배려적 시선이 아니라 그들의 주체성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한국 사람들도 역시 정주민이면서 이산인 이주민이다.
1908년 육정수의 < 송뢰금 > , 이해조는 < 월하가인 > (1911)등은 조선 이주민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래로 그러한 작품들의 민족주의적 정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최근 국내 이방인들을 다룬 문화 예술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주로 주목하고 있는데 이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 출신 이방인들의 삶과 고민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른바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숫자가 대략 600만 명이라는 통계가 있다. 재일조선인, 조선족, 고려인, 코리언 아메리칸,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간 이주노동자, 국제 입양자, 그리고 끊임없이 해외로 살길을 찾아 떠나는 이민자들을 생각해본다면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해외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세계에 나가 나름 자리를 잡으려하는 청년들은 정말 많다. 그러나 이들을 포용한 문학을 그렇게 볼 수가 없다. 한국이 과연 이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지, 문학에서도 알 수 있겠다.

영화 '디스트릭트9'에서 보여지듯이 우리가 정주민이자 이방인이다. 최근 가치론적인 차원에서 이주민해온 이들에 대한 문제만을 부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해외에 이주해나간 한국 사람들을 문화예술에서 어떻게 반영해내는가가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에 대한 정책적 방안의 모색과도 연결되어야 한다. 경계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강상중과 같은 또다른 코리아 디아스포라의 인물들은 무수하게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