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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와 우는 남자 흥행 요인 차이 분석-정우성은 웃고 장동건은 운 이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7. 7. 10:01

영화 '신의 한수' 스틸컷.ⓒ(주)메이스엔터테인먼트
오락영화를 찾는다면 중국 자본에 짓눌리고 눈치밥을 먹으면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4'보다는 충무로 영화 '신의 한 수'를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보편적인 오락 코드가 아니라 한국적인 문화적 코드가 들어 있는 영화를 찾는다고해도 마찬가지다. 격투와 전투 장면은 그 하나 하나가 아니라 내러티브와 그것의 전개에서 어떻게 관객들의 감성을 충족시키는가에 따라 대중적 흥행면에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영화 '우는 남자'와 '신의 한 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남 배우 장동건과 정우성이 액션 주인공으로 거듭다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분기 포인트로 작용했다. 영화 '우는 남자'가 영화 '아저씨'의 복사판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이는 전혀 다른 지적이다. 영화 '우는 남자'는 겉으로 영화 '아저씨'와 비슷해보이지만 영화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장점을 거의 살리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아저씨'보다 더 강렬한 액션은 그 노력에 대한 평가를 높게 하지 못한다.

영화 '우는 남자'는 처음부터 장동건의 액션이 작렬한다. 작렬하는 액션은 화려한지 모르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궁금증이나 기대감을 증폭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영화 '아저씨'는 옆집에 사는 아저씨의 작렬하는 액션이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보여주어 몰입을 증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추레한 모습의 원빈은 미니멀리즘한 액션 미학을 선보이는 상남자가 된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소미라는 여자아이를 지켜려는 이유를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동감한다. 하지만 '우는 남자'에게는 그러한 감정의 동일시와 몰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화 '신의 한 수'에서 정우성은 처음부터 멋진 상남자는 아니었다.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무력한 약자에 불과했다. 결국 그는 형이 죽어가는 광경을 고통스럽게 보아야 했고, 살인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까지 해야 했다. 여기에서 대중적으로 상투적인 복수 코드가 등장한다. 형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는 자책감은 그에게 복수를 꿈꾸게 만들고, 실제로 이를 실현해 나간다. 그는 그 과정에서 좀 더 완벽한 바둑을 구사하고 육체적으로도 강한 존재가 된다. 




누아르 장르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신의 한 수'는 무엇으로 특화 시킬 것인가는 결국 바둑으로 귀결되었다. 그냥 주먹질이나 칼질 총싸움을 구사하기만 하는 단순한 내러티브와 다른 점은 바로 바둑이라는 지능 싸움의 매개물이 있다는 것이다. 바둑도 취미용이 아니라 사활을 건 내기바둑이라는 점이 긴장감과 극적 효과를 최대화 했다.

더구나 그간 복수 코드는 정말 봇물 터지듯 했다. 복수 자체가 흥행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복수를 과연 실현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수를 어떤 과정을 통해서 실현해 나가는 점이다. 즉, 복수의 완결보다 궁금한 것은 어떤 과정을 구성해 복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적인 측면을 잘 보여줄수록 영화에 대한 선호도는 더 높아지는 법이다. 이는 마치 복수를 꿈꾸지만 실제로 어떻게 실행해야할지 몰라서 그만둘 수밖에 없는 대중적 욕망을 대리 표출해주는 것과 같다. 

많은 액션 영화에서는 과정이 생략 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주인공은 지략이 뛰어나고 무술과 격투기 실력이 우월하다. 맥락 없이 화려한 액션 동작을 자랑한다. 이는 칼 쓰기나 주먹쓰기를 막론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관객들이 열광했던 것은 오토봇이 동지들을 모아서 디셉티콘에 대항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절절한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는 대중상업 영화의 흥행 법칙 가운데 하나이다.

영화 '우는 남자'는 처음부터 주인공이 우월하고 악당들은 약체로 그려졌다. 영화 '아저씨'에서는 악당의 폭력성의 끝을 가늠할 수 없어 흥미를 자아냈다. 영화 '신의 한 수'에서도 악당은 악랄함과 비열함, 폭력성을 극대화했다. 이에 맞서는 주인공의 행보는 기대와 우려를 교차하게 하여 몰입도를 증대시켰다.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물론이고 '아이맨'에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 조차 결핍된 존재이다. 그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매우 멋진남성 매우들은 일정 정도 망가지고 상처를 지닌 존재로 나오며, 그들이 히어로로 거듭나는 과정이 개연성있게 그려져야 한다. 숨겨진 면모가 드러나거나 관객이 기대하는 면보가 성장해가는 모습은 관객의 흥미와 몰입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매우 훌륭한 남자 배우일수록, 겸손과 결핍의 미학을 대중적인 정서와 부합시킬 때 선호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장동건이 어떤 영화를 선택해야 할지 충분히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액션배우로 잘 변신한 정우성이 다음 영화를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자명하다. 그것은 바로 대중적인 정서가 무엇인지 짐작한다면 어려운이 일이 아닌 것이다. 

글/김헌식 문화콘텐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