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시사와 문화]“우리 엄마 다리에 지렁이가 살아요”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9:16

[시사와 문화]“우리 엄마 다리에 지렁이가 살아요”

어느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 다리에는 지렁이가 살아요.” 이런, 지렁이가 어떻게 사람의 다리에 사나, 혹시 피부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얼핏 진짜 지렁이 같았지만, 그 아이가 말한 것은 하지정맥류였다. 하지정맥류는 혈관이 우툴두툴 튀어나와서 마치 지렁이같이 보인다. 발병 원인 가운데 하나는 오랫동안 서서 일하는 것이다. 대형 마트, 매장에서 일하는 직종에 종사할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렁이는 땅 속에서 자연을 정화하는 좋은 생물이지만, 어머니 다리 속의 지렁이는 반갑지 않다.

MBC 드라마 ‘누구세요’
고깃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잇는 드라마 ‘누구세요’의 손영인(아라)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시트콤 ‘코끼리’의 국채아(한채아)도 대부분 서서 일한다. ‘오필승 봉순영’과 ‘조강지처클럽’에도 할인매장 등에서 서서 근무하는 여주인공이 있는데, 드라마 주인공들은 잠시 거쳐 가지만 실제 매장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은 하지정맥류가 생길 정도로 일한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미숙(문소리)도 마트에서 일한다. 영화는 서서 일하는 것이 어떤 신체 질병을 낳는지보다 국가 대표 선수인데 소속 팀이 해체되어 비정규직 마트에 근무하는 것에 주목했다. 미숙도 늘 그렇게 오랫동안 서서 근무하다 보면 다리에 지렁이가 생길 것이다. 정란(김지영)은 고깃집 사장님 부인이기 때문에 하지정맥류에 덜 걸릴까?

많은 직장 여성이 싸워야 할 대상은 다리 속 지렁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것일까. 얼마 전부터 민노총에서는 할인마트, 백화점 매장, 식당 등에서 일하는 이들의 근무지에 의자 놓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산업보건기준에관한 규칙 제277조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는 당해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매장에 의자는 없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유통서비스업계 여성 노동자 질병 가운데 하지정맥류가 47%나 됐다. 서서 근무하면 심혈관계 질환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서서 근무하는 직종을 가진 노동자 19만2000명이 다리 이상의 고통을 호소했다고 밝혔고, 영국 직업병에서 근골격계 질환 중 17%가 다리 부근이었다. 영국 노동안전보건단체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서서 하루 대부분을 일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했고, 영국 유통업체 노동자동맹조합(USDAW)은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고 한다.

우리는 청소년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부터 서서 근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흔히 종업원이 앉아 있으면 자의든 타의로든 게으름을 피우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일하는 사람의 앉을 권리는 효율성 논리에 묻혀 다리 속 지렁이의 거름이 되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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