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인(컬쳐 트렌드 인사이트)
TV 뽀루노 시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8. 6. 13:15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먹방 쿡방에 육아와 군대까지 예능화… 관음증적 대리만족이 불러온 현실 왜곡
[미디어오늘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뽀루노는 Porno의 한국식 발음이다. 여기에서는 Porno를 '포르노'가 아니라 '뽀루노'로 발음하려 한다. 왜냐하면 발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Porno가 한국적인 문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짚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현상에는 푸드 뽀루노, 육아뽀루노, 군대뽀루노, 오디션 뽀루노, 성공 뽀루노 등이 있다. 이런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포르노가 갖고 있는 특징을 몇 가지 언급해야 한다.
우선 포르노는 가짜다. 진짜 상황을 찍었다고 해도 그것은 편집과 가공이 들어간다. 누군가 지켜보는 시선이 적나라하게 사적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뭇사람들에게 공개를 전제로 한다. 나아가 가짜 본능에 충실하다. 여기에서 본능은 정신보다는 물질적인 본능에 거의 전적으로 기울어 있다. 본능은 쾌락 추구다. 이런 쾌락의 추구에는 기계적인 반응이 강조된다. 자극과 반응이 자동적이다. 포르노를 수용하는 이들은 또한 실제 대상과 관계를 맺거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 충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지나침'이 우선이다. 때문에 에너지는 과잉이고 설정과 행동에 과장이 많다. 빈번하게 괴성이나 감정적인 소리를 낸다. 또한 언제든지 성적 대상은 바뀐다. 즉 자유로운 소유욕의 대리충족이다.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 JTBC 홈페이지 | ||
'육아 뽀루노'의 경우, 육아과정이 전부 그대로 공개된다. 공개되는 것이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일수록 좋다. 원초적이고 본능에 관련한 언행일수록 반응은 폭발적이다. 육아법을 학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귀여움을 부각하는 것이 포인트다. 만약 이러한 귀여움이 없다면,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없다. 아이들의 행동을 매개로 보는 이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는 유아는 배제된다. 즉 자신의 자아가 없기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아이일수록 선호된다. 그 공간은 대부분 행복과 웃음이 넘쳐나는 공간이다. 저런 아이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사람들이 직접 육아를 그와 같이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보고 즐기는 대상일 뿐이다. 더구나 그 아이들은 아이의 모습만 지녀야 한다. 그것도 넘쳐나는 듯이 아이다운 아이들이 출연한다. 즉 유아성이 과잉될수록 좋다. 때문에 적절한 시점이 되면 출연하는 아이들은 바뀐다. 바뀐 뒤에 일어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 신경을 쓸 필요 없다.
▲ SBS '오 마이 베이비'. ⓒ SBS 홈페이지 | ||
'군대 뽀루노'는 군대 병험 체험을 다룬 프로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무반은 내부반이 아니다. 운동장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은밀한 병사들의 공간은 없다. 아니 그들이 보여주는 병영은 진짜가 아니다. 그러나 진짜인 것처럼 연극을 설정 속에서 만들어낸다. 상황은 과장되어 있다. 여기에서 과장은 지나침보다는 대부분 부족하고 결핍의 과장이라는 역설적인 현상을 말한다. 폭력성이나 가혹함은 연성화되고 흥미위주로 재편집된다. 진짜 심각한 모순이나 본질은 외면하고 지엽적인 것을 강조하고, 부각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군대라는 공간도 본능이 주로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본능의 작동이 웃음의 기제나 포인트로 사용된다. 많은 경우 군대에 실제로 가지도 않고, 비슷한 공간에도 갈 생각이 없다. 실제 근무자들은 대개 한곳에 근무하지만, 출연자나 보는 이들은 수십곳의 군대를 경험한다.
▲ SBS 'KPOP STAR 4'. ⓒ SBS 홈페이지 | ||
포르노가 뽀루노가 되는 것은 관음증적 대리만족의 소비행태 때문에 어느새 정상성에 대해서 조차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방송 미디어가 이를 둔감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런 현상이 노골화 되는 것은 카르페 디엠의 소비시장주의에 있다. 현재를 즐기기 위해 상품이나 매개물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도피의 쾌락기제는 날로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현재의 즐거움을 대리 충족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안정적 기득권을 바탕으로 위험은 기피되고, 안정적인 시스템에서 기존의 쾌락에 점증하는 즐거움 쫓고 있기 때문이다. 뽀루노 밖의 세상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을 생각할수록 오히려 자기분열을 하기 때문에 뽀루노로 침잠해 들어간다. 우리는 그러한 침잠을 중독이라고 부른다. 결국 포르노가 그렇듯이 왜곡되는 것은 본질이자 진실이며, 그것에 중독될수록 자기 파괴로 치달아간다. 그것을 지적하는 이들에 대해서 파괴적으로 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점점 현실과 이반되어 갈수록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고 운용하는 이들의 마케팅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도 행복함의 일부가 된다. 관음증의 관객이 아니라 뽀루노의 피해자가 본인일 수 있는 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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