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헌식(중원대학교 특임 교수,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평론가)
최근 JYP엔터테인먼트 미국 법인에 그룹 비춰(VCHA)의 멤버 케이지(KG)가 소송장을 냈다. 계약해지 소송이었다. 이런 소송전이 벌어진 것 자체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다.
일본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했던 니쥬(NiziU)처럼 이제 한국의 K팝 시스템의 미국진출 사례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춰의 기획과 컨셉 그리고 과정은 순조로워 보였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결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우리 K팝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할 계기가 되어야 한다.
비춰는 2024년 1월 26일 데뷔한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5인조 걸그룹으로 데뷔 전부터 전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미국 현지화된 다국적 걸그룹이어서다.
비춰는 동양인·백인·흑인·히스패닉·동양인과 백인 믹스 등 다양한 인종의 멤버로 이뤄져 있다. 국적을 보면 미국인 3명, 캐나다인 1명, 한국-미국의 이중국적자 1명이다.
언어를 봐도 멤버 전원이 북미 출신의 영어 원어민인데 케일리는 한국어, 사바나는 스페인어, 카밀라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다. 전원이 한국어 기초는 소화하고 있었다. 다문화적 가치에서 K팝의 다변화라는 점에서 부합해 보였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멤버 카밀라가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이 '한국 트레이닝 & 한국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미국 걸그룹'이라 주목을 받았다.
일단 데뷔 서바이벌 오디션 A2K로 미국 오디션을 치렀고 그 뒤에 한국에서 박진영을 포함한 K팝 기획자, 안무가, 프로듀서들이 참여하는 트레이닝 시스템을 거쳐 데뷔 조가 확정된 바가 있다.
으레 K팝 그룹이 그렇듯이 한국의 음악방송에서 먼저 활동했다. 이후 미국에서 한국 K팝 스타일로 선을 보이고 글로벌 활약을 이어간다는 포부를 밝힌 바가 있다.
하지만 3월 앨범이 발매되고 나서 별다른 활동을 지속하지 않았다. 6월 이후에는 SNS에 올라오던 숏츠나 개인 게시물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멤버 케이지가 5월부터 소송을 생각하고 있었다. 소송 제기가 이뤄진 점은 다른 아이돌 그룹과 비교했을 때 매우 이례적이었다.
비춰는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고 어떤 독보적인 성과를 보인 것도 아니다. 성공하고 나서 계약해지를 선언하는 통상적인 예와 아주 달랐다.
케이지가 소송전에 나선 이유는 아동 노동 착취, 방임과 학대 그리고 불공정 계약으로 알려졌는데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스태프에게서 학대를 당했고,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데 멤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근무와 생활 환경에 대한 언급이다. 섭식장애는 물론 자해를 하게 하는 환경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물론 JYP엔터테인먼트는 실제와 다른 주장이라고 반박했지만, 문제 제기가 맞는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케이지의 소송제기는 단순히 비춰라는 그룹이나 소속사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미에 현지화 진출하는 다른 K팝 소속사에 미칠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서구 언론은 K팝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온 상황이다.
예컨대, K팝 트레이닝 및 스케줄, 숙소 합숙과 같은 관리 조치의 규칙만이 아니다. 개인의 사생활에 개입하는 공개 연애 금지, 과도한 다이어트, 이미지 관리 등에서 부정적인 견해가 비등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애초 비춰의 런칭과 이후 활동은 K팝에 대한 본격적인 글로벌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많았다.
케이지의 소송 사례는 문화적 차이와 갈등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생각과 판단, 행동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문화와 전체 시스템과 질서를 우선하는 집단주의 문화의 충돌이다.
니쥬가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와 비슷한 집단주의 문화 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많은 연습생이 한국식 시스템과 매니지먼트에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사례는 많고 인권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K팝 시스템과 매니지먼트를 문화적 가치와 행태가 다른 젊은 세대에게 강제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이었다. 특정 멤버 한두 명의 이탈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셈이다.
해외 음악 관련 기업들이 왜 한국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며, 이제 인권적인 관점에서 근원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실 박진영조차 연습생부터 차례로 단계를 밟아 아이돌 그룹 멤버로 활동하지 않았다. 한국식 경영 시스템보다는 K팝 콘텐츠를 유지하되 미국식 에이전트 시스템 개념으로 진행했어야 할 것이다.
비춰의 사례는 단지 개인적인 소송전에만 머물 수 없고, 관련 공적인 제도의 확립을 생각하게 한다. 뉴진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뉴진스 멤버조차 하이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활동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마침내 이의 제기를 했음에도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어 전속계약 해지 통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국회 국감장에서까지 나섰음에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서 진실규명은 물론 구제를 받지도 못했다. 공적 해석과 판단은 그들이 청소년인데도 불구하고, 개인 사업자에 불과했다.
현실에서 그들은 소속사의 이익을 위한 상품 취급을 받는 게 진실인데 말이다. 그러니 뉴진스 멤버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계약 파기였던 셈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가수들에게도 그들을 대변해 주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게 된다. 미국에는 작가 노조처럼 가수노조가 있기에 그들은 낯설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어린 아이돌 멤버들을 보호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물론 관련 단체 같은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런 단체들을 통해 점차 노동자성을 확보해 가야 한다. 최소한 청소년 아티스트를 보호할 수 있는 조직 정도는 이제는 필요하다.
모든 문제를 청소년 개인들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버거우며 그들에게도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더구나 글로벌 활동을 하는데 방치되면 국익에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비춰는 세상을 밝게 비춘다는 뜻이다. 세상을 밝히기 전에 스스로를 비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