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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그대' 표절 논란의 진정한 원인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1. 19. 13:24

'별에서 온 그대' 표절 논란의 진정한 원인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포스터 ⓒSBS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왜 비슷한 유형과 얼개의 작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지나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은 '축의 시대'(Axial ages)에서 기원전 900년에서 200년 사이에 인류의 사유가 폭발했다고 말했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SBS

동양에서는 공자, 묵자, 노자,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 자이나교, 고타마 싯다르타(불교),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가, 그리스에서는 소포클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비슷한 시기에 그들이 전혀 내왕이 없이 이러한 사유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이 시간대를 카를 야스퍼스(1883~1969)가 그의 책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인류 공통의 기축(基軸)이 되는 시대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카렌 암스트롱이 말하듯 이렇게 동시적인 사유의 출현은 인류 공통의 고민과 모색이 비슷한 지점에 공통적으로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과학기술에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와이어드(Wired)'의 공동 창간자인 케빈 켈리(Kevin Kelly)는 그의 책 '기술의 충격: 테크놀로지와 함께 진화하는 우리의 미래'를 통해 '테크늄(Technium)'이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한 바 있다. 테크늄은 인간이 만들어낸 테크놀로지가 자율적인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간주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개념에 따르면 생명체의 진화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다음 수준으로 넘어가듯이 기술의 발전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우리는 온도계의 발명자를 여섯 명이나 알며, 피하 주사 바늘의 발명자도 세 명이나 안다. 에드워드 제너보다 앞서 백신의 효능을 발견한 과학자도 네 명이나 있으며, 모두 각자 발견했다. 아드레날린은 네 번이나 '최초로' 분리되었다. 소수(小數)는 세 명의 천재가 각자 발견(혹은 발명)했다. 전신은 조지프 헨리, 새뮤얼 모스, 윌리엄 쿡, 찰스 휘트스톤, 카를 슈타인하일이 각자 재발명했다. 프랑스인 루이 다게르는 사진술을 발명한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그외에도 니세포르 네엡스, 어퀼 플로랑스, 윌리엄 헨리 폭스 탤벗 세 명이 독자적으로 같은 과정을 창안했다. 로그 발명의 영예는 대개 존 네이피어와 헨리 브리그스 두 수학자에게 돌아가지만, 사실은 제3의 인물인 요스트 뷔르기가 그들보다 3년 앞서 그것을 발명했다. 타자기는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서너 명의 발명자가 동시에 발명했다. 여덟 번째 행성인 해왕성의 존재는 같은 해인 1846년 두 과학자가 독자적으로 예측했다. 산소의 액화, 알루미늄의 전기분해, 탄소의 입체화학은 둘 이상이 독자적으로 발견한 화학적 발견 가운데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며, 이 세 사례에서는 겨우 한 달 정도 사이를 두고 동시 발견이 이루어졌다." ('기술의 충격', p162)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SBS

케빈 켈리는 조앤 롤랭의 표절 시비도 이 같은 관점에서 다룬다. 1997년 조앤 롤랭이 <해리 포터>를 발표한 뒤, 한 작가는 <해리 포터>가 13년 전에 자신이 쓴 작품을 표절했다는 소송을 걸었다. 그 작가는 안경을 쓰고 머글에 둘러싸인 고아 소년 마법사 래리 포터가 나오는 아동 동화를 발표했던 것이다. 이는 해리포터의 주인공과 흡사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 가운데 오직 한사람만 했을까. 케빈 켈리의 책에서도 등장하는 1994년 '13번 플랫폼의 비밀'에서 기차역 플랫폼은 마법의 지하세계로 가는 출입구였다. 이도 비슷하여 표절시비가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마법의 세계와 기차역 플랫폼을 연관 짓는 일은 그렇게 독창적이고 유일한 사유는 아닐 것이다. 출판이 되지 않았거나 판매율이 저조한 작품들이 다른 유명해진 작품에 나오면 우리는 흔히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베낀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 있다. 

강경옥 작가는 자신의 작품 만화 <설화>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베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표절 논란이 일었고 <별에서 온 그대>를 더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유사한 점은 광해군 일기, UFO, 초능력, 외계인, 미스터리, 영생 불사, 타액 접촉 등이다. 이러한 코드들이 같이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좀 많이 다르다. <설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영생 불사이지만, 외계인은 아니다. 외계인에게 영향을 받았을 뿐이다. 드라마 <별에서는 그대>는 외계인 남성과 지구 여성의 환타지 로맨스다. 과거 자신과 인연을 가진 여성과 흡사한 이를 다시 본 외계인 남성 도민준(김수현)이 고향별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흥미를 자아낸다. 

<설화>에서는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좀 더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유쾌한 로맨스 코드가 강하다. 전지현이 맡은 여성주인공 송이의 직업은 톱스타이고, <설화>의 여성 주인공은 거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였다. 요컨대, 코드와 콘셉트가 비슷한데 스토리텔링의 구성이 상이하고 주제의식이나 내러티브의 접근 방식도 캐릭터의 상이성으로 인해 이런 현상은 사실 비일비재하다. 특정 작품이 공개되면, 자신의 작품과 비슷하다고 문제 제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문제제기 하는 이유는 작품 자체가 자신의 독창적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즉 자신만이 그런 작품을 구상하거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할수록 표절에 대한 문제의식과 분노가 강해진다. 정말 작가들의 작품은 오로지 자신의 순수한 창작성에서 나왔을까. 그렇다면, 곧 창작자가 될 수 없는 모순에 처한다. 

창작자는 끊임없이 당대의 사회문화에서 무엇인가를 흡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이 이해할만한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순수한 창조성이란 시대적 산물의 결집일수 있다. 물론 진짜 다른 작가의 작품을 표절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특히 기성유명 작가가 약자인 무명작가들의 작품을 편취하거나 아이디어를 도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집합적인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문화적 무의식에 주목해야할 필요성도 있다. 작가들의 작품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교호작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각 작가들이 천재적인 능력으로 작품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시대 문화적 욕망과 심리들이 빚어내는 현상인 것이다. 

우리가 이런 표절 논란과 별개로 살펴야 하는 것은 두 작품이 왜 그렇게 동시적으로 같은 코드들을 착상하고, 그것을 스토리로 구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화 <설화>나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일단 여성 주인공들은 모두 돈을 많이 갖게 된 존재다. 그 돈은 갑자기 주어진 측면이 많다. 연예인이 되어 벼락 스타가 되었거나, 갑자기 거대한 상속금을 받은 존재다. 그러나 그 존재는 무엇인가 결핍되고,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적인 상처나 트라우마가 있거나 피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뱀파이어 같은 속성이 그렇다. 우리는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그런 구조 속에 처하게 된다. 또한 미스터리한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강한 호기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설명하기 힘들거나 할 수 없는 일들을 초인적인 존재가 만들어 낼 수 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점성술이나 운명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의 나아질 수 없다는 참담한 사회경제적인 상황은 이런 현실도피적인 욕구를 추동시키거나 위안삼을 대상을 찾게 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지구인이 아니다. 이러한 점은 이상적으로 간주되는 남성은 이제 지구상에 없다는 무의식을 전제하고 있다. 현실에 없는 이상형을 찾는 행태들은 외계인에게까지 뻗어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둘 모두 과거의 알 수 없는 인연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본질주의가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잉여 속에서 각 개인들은 본질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각 개인들이 수많은 이들 속에서 하나의 수단이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인식만큼 좌절하게 하는 것도 없다. 자신들의 욕구 수준을 충족시킬 만한 대상은 찾지 못하고 현실에서 필요한 물적 욕망을 향한 갈망은 크다. 이성과 과학, 합리의 세계에서 여전히 초월적인 능력자들로 인해 답답하고 결핍된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의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UFO, 외계인, 초능력, 미스터리, 영생불사, 타액 접촉, 뱀파이어 등이 빈번하게 많은 작품에서 등장하고 있다. 

창작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의 측면도 중요하지만 왜 비슷한 유형과 얼개의 작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좀 더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케빈 켈리의 '테크늄'처럼 '스토리템'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이에 따른다면 작가가 창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스토리시스템이 자생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은 대중들의 문화적 욕망이다. 하지만 그 욕망에 단순히 영합하는 작품은 결국 단명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생명체에서 유전자가 중요하듯이 일정한 문화 코드들이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과정을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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