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의 시대적 요건
글/ 김헌식(평론가, 박사, 한국 연구소. 미래학회 이사)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점토판, 이집트 피라미드 안 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글에도 이런 말은 남아 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1990년대 초반 X세대가 등장했을 때 기성세대들은 이해 못 할 집단이라고 했다. 사회의식도 없고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적이라고 했으며 물질 만능에 소비적인 특징을 언급했다. 아마도 지금 세대를 논하는 디지털 요소만 빼놓으면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이때 과연 90년대 초반 학번들이 모두 X세대처럼 살았고 그런 행태를 보였을까.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이다. 그런 X세대가 이제 기성 세대가 되어 새로운 세대를 바라볼 때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할 만하다. 요즘 질타를 받는 MZ 세대가 그 대상이 되고 있다. 90년대 생을 다룬 책들이 유행하는가 싶더니 이제 SNL코리아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그들을 풍자하는 내용을 다루기까지 했다.
사실 MZ 세대를 묶는 것조차 적절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MZ 세대’는 기성세대가 만든 가상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미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는 1980~1996년생을 밀레니얼 세대, 1997~2012년생을 Z세대라고 하는데 10세부터 42세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 언론 미디어들은 MZ 세대 10대, 20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잘못 쓰이고 있다. 실제 조사를 보면 한국리서치가 2022년 2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 결과, 사람들은 MZ세대를 ‘Z세대’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 이 조사에서는 1995~2004년생을 Z세대로 묶었는데, 자신을 MZ세대로 부르는 것을 61%가 ‘적절하지 않다’라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Z세대와 다른데 같이 묶고 풍자까지 하는 것이다.
설령 10대와 20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해도 이미 매우 다양화된 젊은 세대를 20년씩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더구나 이런 통칭은 기성세대에게 30~40대도 나이가 적어 보이는 인식 틀 때문에 발생한다. 물론 퓨리서치센터의 방식도 적절하지 않다. 40대면 10살의 아이가 있을 수 있는데 그 부모와 자녀를 묶어 버린다면 그 명칭을 만들어낸 이들의 나이가 드러난다. 이런 범주라면 이에 바탕을 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때,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히려 애써 세대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나을 법하다.
SNL코리아 시즌3의 코너 ‘MZ 오피스’는 꼭지 제목 그대로 MZ 세대의 직장 생활을 소재로 해서 눈길을 끌었다, 이 꼭지는 사실상 20대 직장 초년병들의 행태를 다루고 있다. 소재를 보면 근무 중 아이팟 착용, 회식에서 고기 굽기, 비대면 주문, 회사 내 브이로그 찍기 등을 다룬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요즘에만 논란이 된 것도 아니고 이전에도 있었는데 요즘 20대만 그런 것처럼 다뤄진다. 문해력이나 사내 예절, 전화 기피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도가 약간은 달라질 수 있다. 더구나 이런 특성을 모든 20대가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SNL코리아의 ‘인턴기자 주현영’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좀 더 심화시킨다. 젊은 인턴기자가 때론 도발적으로 당차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코믹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도를 지나친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평소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언급하고 자기 세계관과 가치관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무책임한 행동까지 보인다. 전체적으로 엉뚱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질문과 행동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가 된다. 정작 당사자들은 과히 좋게 생각하지 않을 요소가 있다. 더구나 20대 여성을 희화화하는 것에 대한 이견도 있다.
‘패러디 이론’에서 린다 허치언(Linda Hutcheon)은 풍자와 패러디는 권력적 불균형 속에서 발생한다고 봤다. 전통적으로도 상류 계층이나 권력자에게 가해졌다. 우리가 풍자하면 주로 정치인, 기업가, 상류층을 대상으로 했던 이유다. 여성을 풍자해도 부동산 복부인이나 졸부 등을 풍자하고 희화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젊은 세대인 MZ 세대를 희화화하고 조롱을 하면서 웃음을 유발하려고 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런 풍자가 주로 올드미디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주로 올드미디어는 10대와 20대들이 이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본다고 해도 짤 형태로 유튜브나 SNS에 공유되는 짤이나 클립을 통해서다. 그렇게 접해도 좋은 반응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플랫폼에서는 인기가 없다. 요컨대, 올드미디어나 레거시 미디어에서 이러한 풍자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결국 기성세대들이 주시청층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기성세대에게 새로운 세대는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들은 젊고 기회가 아직 많다. 더구나 집단적 군집을 이루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갈수록 젊은 세대를 활용해야 한다. 그들을 통하지 않고는 일이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목표나 야망을 실현하기 어렵다. 옛날에는 그들을 무시하고 기존의 방식으로 이끌어가면 되지만 이제는 쉽지 않다. 지식과 정보는 공유되고 있으며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으며 새로운 기준들이 생겨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기준만을 고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권력자 같다. 트렌드를 형성하고 끌고 나가기도 한다. 비롯하는 양태들은 어이없지만 그들의 무시할 수 없고 그러니 희화화를 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실질적인 정치, 경제적 강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젊은 세대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대상으로 재벌 3세나 철없는 졸부 집안의 자제가 등장했지만 이러한 구분은 사라진 지 오래다.
방송에서 그래도 눈여겨볼 사례는 없을까. 예능 ‘지구오락실’의 경우를 보자. 제아무리 나영석 피디라고 하지만, 젊은 신세대들이 나영석 표 예능을 반드시 좋아하리라 장담할 수 없다. ‘지구오락실’은 젊은 세대를 대상화하지 않았다. 많은 프로그램이 아이돌 멤버들은 예능 프로에서 기성세대 사이에 하나씩 끼워 넣는다. 이를 통해 노리는 다양한 세대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특히 젊은 층 유입이 어렵다. 왜 그런 것일까? 제아무리 개성 있고 예능 감각이 있어도 한국 특유의 문화 상황에서 젊은 출연자들은 얼어붙고 만다. 장유유서의 서열 문화가 연예계만큼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곳도 드물다. 이러한 점은 일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제품과 서비스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더욱 이는 바람직하지 결과다.
‘지구오락실’의 경우 젊은 세대에게 주도권을 넘긴다. 여행 예능인데, 그들이 스스로 벌이고 주도한다. 오히려 문화권력자인 스타 피디 나영석은 그들의 흐름에 끌려간다. 그는 때로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권력자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 우회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자가발전해서 완성한다. 나영석 피디의 입지는 어떻게 보면 버릇없을 새로운 세대 때문에 그의 예능이 살았다. 능히 스스로 조롱과 희화화가 된 결과다.
기성세대의 미래는 사실상 새로운 미래 세대에 달려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들의 통제력에 잘 따라 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것이 쉽지 않으니 그들에게 침을 뱉고 조롱을 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새로운 세대가 모두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다. 기성세대와 공통분모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 공통분모를 생각하지 않고 차이점을 애써 구분하는 것은 자신은 변화의 의미가 없으면서 기존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행태에서 별 차이가 없다.
20~30년 차이의 사람들을 MZ 세대로 무리하게 묶는 행태를 그들에 관해 관심이 없거나 편하게 해석하려는 행태다. 이렇게 큰 범위에 걸쳐 묶어 버리면 왜곡과 편견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바탕에서 무턱대고 풍자하는 태도는 또 하나의 더 큰 왜곡이다. 갈등과 논란을 일으켜 통합이나 화해를 일으키기 쉽지 않다. 풍자의 전제 조건은 웃음 속에서 상대방도 공감을 하며 은근슬쩍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일종의 넛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젊은 세대가 잘못하는 부분이 없을 수 없다. 나이 어린 상황에서 경험과 적응이 좀 덜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의 잘못이나 특성을 전체 집단으로 확장해 규정하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 미비한 부분들을 웃음과 버무린 것이 풍자행위라고 받아들이라는 것인데 그것이 잘 받아들여질 수 있게 수용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현대의 풍자는 모두에게 건설적인 방향으로 건강하게 생산되고 소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