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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종 대량 생산’되는 드라마는 이제 그만.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시청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채우려면 시즌드라마처럼 새로운 형식의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방송사의 조급증과 예산 부족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 시즌드라마 ‘별순검’ ‘비포&애프터 성형외과’ ‘라이프 특별조사팀’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ㆍ‘옥션 하우스’등 작품성 호평 불구 시청률에 발목 폐지 방침
MBC 시즌드라마가 방송 6개월 만에 폐지 위기에 처했다. MBC는 ‘단막극의 실험성을 담보할 수 있는 드라마’를 선보이겠다며 지난해 9월 시즌드라마를 시작했다. 단막극 ‘베스트극장’을 지난해 3월 폐지한 후, 다양한 비상업적 실험성을 담을 수 있는 장이었다. 시즌드라마는 여러 명의 프로듀서와 작가가 팀을 이뤄 매회 다른 에피소드를 연출하는 형식. 기존의 일일극이나 미니시리즈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로 의미있는 행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출발 6개월 만에 폐지 소식이 들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 3월 마지막까지 남았던 KBS 단막극 ‘드라마 시티’도 폐지된 상황. 지상파 방송사들의 조급증은 국내 드라마의 다양성을 거세하고 있다.
◇사라지는 실험 공간 = MBC는 오는 5월26일 개편에서 시즌드라마 폐지를 고려 중이다. 이재갑 편성본부장은 “완전한 폐지 여부는 5월 초쯤 결정된다. 여러가지로 공과를 따져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MBC 드라마국 ㄱ프로듀서는 “6월29일 종영 예정인 ‘라이프 특별조사팀’ 후 사실상 시즌드라마는 폐지되는 것”이라며 “이후엔 다른 형식의 단막극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MBC는 지난해 9월 경매사들을 다룬 ‘옥션 하우스’로 시즌드라마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성형외과를 배경으로 한 ‘비포&애프터 성형외과’를 거쳐 지난 13일 보험 조사원들을 소재로 한 ‘라이프 특별조사팀’을 시작했다. 일요일 심야시간이라는 열악한 편성에도 이들은 선전했다. 국내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삼각 관계, 결혼 갈등, 가족 문제 등에서 벗어나 전문 직종의 세계를 흥미롭게 펼쳐놓았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탄탄한 구조의 ‘미드(미국 드라마)’ ‘일드(일본 드라마)’에 접근하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씨는 “시즌드라마는 드라마의 소재를 확장하고, 단막극과는 달리 이야기의 다양성을 연속성을 갖고 실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잘 만들면 잘 팔린다? = 방송사 측에서 들고 나오는 문제는 역시 시청률이다. 호평에도 불구하고 MBC 시즌제 드라마는 5~8% 시청률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제작진과 전문가들은 편성시간의 한계와 작업 인프라의 부족을 지적한다.
MBC 시즌드라마는 매주 일요일 오후 11시40분에 방송한다. 다른 드라마들과의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시간대다. 시청률 5~8% 정도면 동시간대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MBC 드라마국의 ㄴ프로듀서는 “앞 프로그램이 지연되면 자정이 넘어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 시간대에는 어떤 프로그램도 시청률이 나오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MBC ㄷ프로듀서는 “파일럿 프로그램처럼 시도 해보고 가능성이 보이면 메인 시간대로 옮겨 확실히 어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시즌2, 3을 만들 수 있고 진정한 시즌제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ㄴ프로듀서는 “공동작업, 에피소드별 진행 등은 기존에 시도한 적이 없던 스타일이라 아직 ‘CSI’나 ‘프리즌 브레이크’ 수준의 드라마를 만들기엔 미숙한 점이 많다”면서 “그런 것을 연구 개발할 수 있는 시간과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별순검’의 가능성 = MBC ‘베스트 극장’ 부활 얘기도 새어 나온다. 시즌드라마도 있고 ‘베스트 극장’도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론 ‘시즌제 아니면 단막극’이다. 제작진들은 “상품처럼 찍어내는 대형 드라마들의 강세 속에서 상업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는 시즌제나 단막극이야말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루”라고 입을 모았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2005년 MBC 첫 방송 이후 조기 종영의 아픔을 딛고 케이블 채널로 쫓겨가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시즌드라마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의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며 “최소한 1년의 시간은 두고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