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원수와 동업하는 금나나(왼쪽), 그의 삶의 목표는 우선 살아남기 |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치욕을 감내할 것인가, 아니면 치욕을 감내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이보다 더 인간을 괴롭혀온 화두가 없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겪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 ‘남한산성’을 통해 김훈은 말한다. “삶은 치욕이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자존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죽어서 살아남는다는 말은 없다.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금나라는 부모님 원수와 동업하는 치욕을 선택했다.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서 잭 스패로우는 해적의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열심히 싸우다가 재빨리 도망가는 것”이라고. 멋진 영웅인 척하지 말고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우선 챙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신념에 따른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어깨에 힘주기를 포기한다. 그 덕분인지 그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화려한 영웅담이나 용기, 활극이 아니라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는 위대한 선장 잭 스패로우가 되었다. 그에게 삶의 목표는 우선 살아남기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치욕을 감내하며, 무엇이든 해야 한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아니 성공을 위해선.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는 이가 승리하는 것이다. 금나라같이 부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데 돈이 없다는 사실은 비참하고 치욕을 주며 자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IMF 체제 10년의 치욕을 비참하게 겪은 사람들의 심리적 기반이다. 사채 대부업이건 굴복이건 그리고 줄행랑이건 관계없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은 살고, 남들을 몰살시킬 행동은 이기적 유전자 탓으로 돌리면 된다.
“청병이 곧 들이닥친다는데, 너는 왜 강가에 있느냐?” “청병이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볼까 해서….” 이렇게 말한 뱃사공은 죽었다. 다른 생명들의 죽음에 무심했기 때문이다. 인조는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항복하여 살았다. 잭 스패로우는 생명을 빼앗으려는 이들에 대항했기에 살았다. ‘쩐’을 위해 다른 생명을 앗아가는 사채업자가 될 때 금나라는 어찌될까. 김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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