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지식인의 죽음이 어른거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나타난 새로운 현상, 즉 ‘대중지성’의 탄생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지난해 5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위한 대장정’에 들어가며 내놓은 선언문은 대중지성이 지향하는 바를 잘 나타낸다. “우리는 대중을 훈계하는 지식인, 대중에 연민을 갖는 지식인 모두를 거부한다. 우리는 지식인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식인 스스로가 대중일 때뿐임을 안다.”
‘수유+너머’는 올 1월 ‘2007 대중지성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지식은 아카데미의 강단이 아니라 대중적 네트워크를 타고 소통되고 있다. 아카데미도, 지식인도 없지만, 가르치고, 배우고, 묻고, 읽고, 쓰는 일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고 밝혔다. ‘대중지성 프로젝트’는 대학과 학술진흥재단이 규정한 분과에 얽매이지 않은 학자들이 ‘강좌’를 통해 대중들과 교감하며 네트워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 공동체인 ‘다중네트워크센터(http://waam.net)’도 지식인의 죽음을 선고했다. “과거 절대정신이자 보편적 주체로서 역할을 하던 지식인의 유형들은 모두 사망했으며, 다중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직할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지식인’이자 자유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대중이 지식의 소비자이면서도 생산자가 되어 새로운 지식 체계를 만드는 ‘대중지성’은 인터넷에서 더 보편적이며 활발하다. 인터넷상의 대중지성들은 때로 자신이 대중지성에 속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카데미의 수준에 버금가거나 으뜸가는 지식을 창출해낸다.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 인터넷 서평꾼들이 모인 카페다. 인터넷 책 세상의 오피니언 리더로 꼽힌다. ‘책에 관한 한 가장 수준 높은 담론이 진행되는 곳’이란 평가는 이 사이트의 존재를 아는 이들에게는 어색하지 않다. 자발적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올린 ‘텍스트’가 대중지성의 근간이다.
최근 출간된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 b)에 대한 서평이 책 출간과 거의 동시에 올랐다. 비평 대상은 라캉, 들뢰즈의 서구 철학 서적, 김훈, 은희경, 이문열의 문학 작품 등 인문학 전반과 이창동의 밀양 등 영화를 망라하고 있다. 이곳의 ‘지성’들의 글쓰기 수준은 계간지 비평 수준 못지 않다. 갓 나온 번역서의 오류를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전문적이다.
때로는 책 번역자가 이 카페를 찾아 논쟁을 벌인다. 회원들간에도 ‘주례사 댓글’은 없다. 각자의 글에 논쟁하고 토론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카페지기 조영일씨(서강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ID 소조)는 “문학이나 지식에 관한 논의들이 특정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다. 독자나 일반인들의 논의를 이끌어내는 장이 없었다”며 카페 개설 배경을 밝혔다.
비평고원에서 고정 코너를 갖고 있는 ‘불멸회원’들은 고수들이다. ‘로쟈’, ‘폭주기관차’, ‘쌍수대인’, ‘로카드’ ‘아이온’, ‘김남시’, ‘K’, ‘brick’ 등 8명이다. 조씨는 “불멸회원들은 박사 학위자, 비정규직 강사, 자영업자, 번역가, 취업준비생, 일반 회사원들”이라고 말했다.
자연과학쪽의 ‘대중지성’으로 꼽히는 곳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 사이트인 브릭(BRIC)이다.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의혹을 처음 제기한 곳이다. 서울대 이병천 교수팀의 ‘늑대 복제’ 논문의 오류를 지적한 곳도 브릭이다. 기존 아카데미아가 애초 시도도 못할 검증을 해낸 것은 ID로만 알려진 익명의 연구자들이다.
익명의 유권자들이 무수한 정치·개혁 담론을 쏟아내며 ‘정치권력’의 향방에 영향을 미쳤던 2002년 대선 당시의 노사모 사이트도 ‘대중지성’의 한 전형으로 꼽힌다. 상근기자들이 아니라 시민기자들이 중심이었던 초기 오마이뉴스도 대중지성의 사례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지식iN’은 더 많은 익명의 대중들이 만들어내는 지식의 곳간, 인터넷 ‘대중지성’의 상징이다. 익명의 네티즌들이 수천만 건의 질문과 답변으로 지식을 쌓아 올린다. 이 ‘지식’은 인터넷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체계화된 형태를 띠었다. 네이버 홍보팀 이경률 대리는 “인터넷이란 미디어를 통해 지식 공유의 시대를 열었다. 특정인 한 사람의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의 질문에 여러 사람이 답을 달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통해 ‘집단지성의 활성화’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지식인들이 독점했던 지식 체계를 인터넷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중이 가져간 것(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러면 대중지성은 과연 지혜로운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최근 나온 책 ‘여럿이 함께’에서 영국 유전학자 프란시스 골튼(1822~1911)이 시골 장터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시골 장터에서 열린 황소 몸무게 알아 맞히기 퀴즈에서 아무도 답을 맞히지 못했지만, 퀴즈에 참가한 사람들이 적어낸 몸무게를 합쳐서 나누어 보니 맞았다는 이야기다. 신교수는 “단 한사람도 맞히지 못했지만, 여러 사람의 판단이 모이니까 정확한 몸무게를 맞힐 수 있었다. 언론도 얼핏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대중의 지혜를 모아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대중은 잘 안다”고 말했다. ‘대중의 지혜’는 디지털 철학자로 알려진 피에르 레비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의 “개인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집단은 가능케 한다”는 ‘집단지성’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의견은 다르다. “대중의 지혜는 사실 하나마나 한 소리다. 확률적으로 대중은 늘 지혜롭게 돼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그 자체의 힘(머리 수 파워) 때문에 대중의 선택은 정당화되고 지혜가 되게끔 돼 있다. 대중은 이미 ‘지혜’라는 답을 내장하고 있는 개념이다. 예컨대, 대중이 선거에서 아주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망정 그걸 무슨 수로 꾸짖을 것이며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도 “대중지성이 기존에 나온 사실을 적시하고 수정하고 지혜를 모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한가지 주제에 매달려 중요한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기존의 지식인이고 전통적 지식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대중지성에서 새로운 개념의 노동착취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나 이를 저급하게 모방한 네이버 지식iN이나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제는 선(善)의지를 가진 대중지성의 결과물로 채워진다. 그러나 참여자 또는 조직구성원이랄 수 있는 대중지성에 대해서는 배려가 없다. 대중지성이 생산한 양질의 결과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 새로운 노동착취의 시대가 온 것이고, 그 착취는 선의지, 자율성, 참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조정환씨(다중네트워크센터 대표)도 “기업과 자본이 자기네의 이윤 축적을 위해서 사실상 다중지성을 착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또 국가와 기업이 서로 협력하면서 지적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헤게모니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트 포드주의, 팀제, 자율책임제 등 노동자가 상상하고, 기획하고, 조직하는 시스템도 기업체가 대중지성을 이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독주 체제, 국가·국적·국경을 초월한 거대 자본의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체제를 ‘제국’이라고 규정한 조씨는 향후 지식사회의 과제를 대중지성과 제국의 대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 기업적으로 일어나는 제국적 흐름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지금 어디에도 없다. 대중지성이 최후의 보루고 여기에 승부가 걸려 있다”고 말했다. 대중이 네트워크적 권력인 ‘제국’에 속해 있으면서 그것에 대항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이란 설명이다. 그 가능성은 이미 드러난 바 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미선·효순이를 위해 온라인에서 촛불을 들기로 결의하고, 오프라인인 광화문으로 그 촛불을 들고 나온 수십만의 추모 인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위해 온·오프라인 운동을 벌인 사례가 그런 경우이다.
지식인의 무덤 위에 태어난 대중지성의 성격과 역할을 주목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김종목·손제민·장관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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