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트남 등 동아시아권 국가들이 방송 프로그램의 소재로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단순히 ‘이국적 배경’으로 소비되거나 열악한 환경을 강조하고 있어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SBS 드라마 ‘황금신부’가 대표적이다. ‘황금신부’는 ‘라이따이한’이라는 사회적 소재를 끌어들여 방송 초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베트남 여성’에 대한 사회적 문제는 기존의 갈등을 반복하는 가족 드라마의 구조 속에 희석되고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 류티씽(33)은 인천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아시아문화비평지 ‘플랫폼’ 5호에 실린 ‘어느 베트남여자가 본 황금신부’라는 글을 통해 “‘황금신부’가 묘사하는 베트남 여성의 모습이 실제와 너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드라마 속에는)대형 마트의 시식 코너를 신기해하며 욕심내서 마구 먹거나, 한국의 평범한 전기밥솥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진주의 모습이 등장한다”며 “베트남에서도 시식 코너나 전기밥솥은 흔하디 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베트남을 우리에 비해 형편없이 뒤떨어진 나라로 생각하는 잘못된 우월의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셈이다.
반면 베트남 여성 개인의 현실적인 문제들은 지워져 있다. 류티씽은 “극중의 진주는 한국말을 너무 잘한다. 이는 한국어 구사와 이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의 어려움을 가볍게 취급하는 태도”라며 “가족들이 진주를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도 병에 걸린 남편을 돌봐주기 때문일 뿐 현실에서 베트남 출신의 아내들은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뿐 아니다. 상당수의 다큐멘터리나 보도·교양 프로그램에서도 베트남 등 동아시아권 외국인들을 개개인의 주체가 아닌 열등한 존재로 주변화시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KBS1 ‘러브인아시아’는 주로 국제결혼 이민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 결혼생활의 애환 등을 그린다. 최근에는 이들의 고향 방문을 도와주는 것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다. 개개인의 개별적인 정체성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최근 KBS2 ‘특명 공개수배’에서 방송된 ‘천안 베트남 아내 살인사건’의 경우도 이런 시각을 드러낸다. 남편의 구타로 사망한 스무살의 베트남 여성을 조명하면서 그녀의 처참함과 열악함을 드러내 비극적 시선을 유지하는 데 역점을 뒀다.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강혜란 소장은 “최근 방송된 SBS 드라마 ‘깜근이 엄마’나 SBS 스페셜 ‘라이따이한’의 경우처럼 비교적 객관적으로 베트남인의 현실을 그려낸 프로그램들도 있다”면서도 “다차원적으로 조명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소장은 이어 “이들은 개별적 주체가 아닌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시혜’의 대상으로 뭉뚱그려 전형화되어 있고, 한국을 우월한 지위에 두는 위계적인 질서 안에 포섭되고 있다”며 “특히 여성의 경우 ‘결혼이민자’로만 형상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획일적 접근은 ‘다문화사회’로 향하는 길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다문화 정책이 무조건 통합지향적일 수는 없다”며 “개별적 정체성을 도외시한 채, 한국 사회 속에 이들을 모두 통합시키려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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