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을 봤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만화를 말하는 건지, 지난해 방영된 SBS 드라마를 말하는 건지 이것도 아니면 현재 방영중인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를 말하는 건지 분명히 해야 하는 시대다. 이런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는 요즘 대중문화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라디오스타’ ‘미녀는 괴로워’처럼 흥행영화가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날보러와요’ ‘이(爾)’와 같은 인기연극은 영화 ‘살인의 추억’ ‘왕의 남자’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이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선보이는 매력을 찾아보는 일은 새로운 재미다. 그러나 동일한 원작이 반복생산되다 보니 창작작품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원소스 멀티유스의 명과 암은 과연 무엇일까.
근래 2~3년 사이 급격하게 불고 있는 원소스 멀티유스 바람은 대중문화계의 원작 선호 현상 때문이다. 제작비 등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고 믿는 것이 바로 인기가 검증된 원작. 드라마 한편만 하더라도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블럭버스터가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인기 원작, 스타 작가에 기대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이에 따라 드라마, 영화 및 공연 제작사들의 원작 확보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원소스 멀티유스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콘텐츠 산업 측면에서 볼때 하나의 콘텐츠가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느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 최세경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전문위원은 “원소스멀티유스는 리스크 부담을 분산하면서 콘텐츠산업의 부가적 가치를 높이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지음) ‘바람의 화원’(이정명 지음)이라는 베스트셀러가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인 것처럼 출판 콘텐츠는 오래 전부터 영상, 공연 산업에서 수익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강풀의 만화가 영화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텍스트적 상상력과 영상적 상상력은 분명 다르다”며 “현재의 원소스 멀티유스는 창작자 관점에서 이런 식으로 다른 포인트를 주면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 입장에서 그냥 인기작품의 후광효과에 기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다보니 그만그만한 복제형 작품이 늘어나게 되는 상황. 또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를 확보한 원작은 양날의 칼이다. 장르만 달라졌을 뿐 똑같은 이야기를 다시 돈을 내고 볼 사람은 없다. 다음 이야기가 뭔지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상쇄할만한 색다른 재미가 없으면 안된다. 실제로 강풀의 ‘아파트’, ‘바보’처럼 인기원작이 영화 흥행에 실패하는 사례도 많다.
원소스 멀티유스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수다. 소설 혹은 만화가 영상작품으로 옮겨질때 관객들은 시각, 청각 등 다른 측면의 감각에서 만족감을 얻기를 기대하게 되고 영화가 조그만 연극무대, 뮤지컬로 옮겨질 때는 더 생생한 느낌을 갖기를 원한다. 일례로 5월 26일 방영예정인 SBS ‘식객’은 2시간 짜리 영화와 다른 24부작 드라마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영화와 시간차가 1년도 안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제작사인 제이에스픽처스의 신선주 PD는 “드라마화하면서 원작에도 없고 영화에도 없는 인물을 만들었다. 영화가 두명의 대결구도였다면 드라마는 갈등구조가 훨씬 복합적”이라고 설명했다. tvN ‘쩐의 전쟁’ 역시 케이블TV의 장점을 살려 리얼리티를 더욱 극대화해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 원작에 기댄 ‘무비컬’이 유행하고 있는 공연계 역시 원작과의 차별화는 중요한 문제다. 원작의 팬이었다고 할지라도 다른 장르에서는 다른 매력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원소스 멀티유스는 그래서 쉽고도 어렵다. 올해 뮤지컬로 선보일 ‘내 마음의 풍금’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등이 원소스 멀티유스의 함정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오연주 기자(oh@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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