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고전영화 '가스등'에서 잉그리드 버그먼이 연기한 여주인공 폴라는 남편 그레고리의 정신적인 고문에 서서히 질식해간다.
아내 폴라의 유산을 빼앗기 위해 그녀를 정신병자로 몰고가는 남편이 다락방에서 보석을 찾으려고 불을 켜면 폴라의 방에 있던 가스등이 희미해지곤하는데, 폴라가 이를 이야기하면 남편은 그녀가 미쳤다고 매도한다.
필사적으로 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던 폴라는 남편의 냉대에 점점 혼란스럽고 무기력해지지만, 폴라의 이모의 죽음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도 가스등이 희미해지는 것을 봤다고 이야기하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다.
'가스등'에서 남편 그레고리는 뚜렷한 의도를 갖고 폴라를 학대하지만 두 사람이 맺는 인간관계에서 많은 경우는 의도하지 않는 사이에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된다.
미국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은 이런 관계가 만들어내는 병적인 심리현상에 '가스등 이펙트'(Gaslight Effect)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신을 형편없이 취급하는 애인, 상사,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매달리는 피해자와 자신이 부당하게 상대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를 파탄 상태로 몰고가는 가해자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딴 남자들에게 항상 추파를 던진다고 의심하는 애인을 인내하다 점점 까닭모를 죄책감과 자기비하에 빠지는 여성도 있고, 새 상사가 자신을 중요한 결정이나 회의에서 은근히 배제시키고 고객을 가로채려는 것을 눈치챘지만 남들로부터 오해만 사는 직장인도 있다. 또는 다 큰 아들의 옷차림 하나하나를 지적하는 어머니에 대해 은근히 불편함을 느끼는 아들도 있다.
저자 로빈 스턴은 책 '가스등 이펙트'에서 이런 불균형한 관계의 피해자라면 가스등 이펙트가 진행된 단계에 맞춰 현명하게 타인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최악의 경우 관계를 계속할지 여부를 깊이 고민해보라고 충고한다.
랜덤하우스. 신준영옮김. 400쪽. 1만4천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