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잡스이즘

“오직 일에만 몰두했던 잡스 돈 집착, 삶 파괴한다 말해”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11. 9. 21:35

“오직 일에만 몰두했던 잡스 돈 집착, 삶 파괴한다 말해”



[한겨레] 스티브 잡스 전기작가 아이작슨 인터뷰 

윤회 믿어 죽음 담담히 수용

삼성 ‘동반자’ 구글 ‘적’ 평가


“잡스는 1960년대 말의 반체제·히피 운동과 실리콘밸리의 공학·기술 운동을 합하려 했고, 그것이 바로 애플 조직의 본질이다.”

지난달 5일 숨진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59·사진)은 8일 미국 워싱턴서 가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잡스의 반사회적인 성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작슨은 “잡스는 울타리도 없는 작은 집에 살았고, 매일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을 정도로 평범한 생활을 했다”며 “잡스는 ‘돈과 물질에 대해 너무 많이 고민하면 삶이 파괴될 수 있다’며 오로지 일에만 몰두했다”고 말했다. 불교신자로 윤회를 믿는 잡스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에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잡스는 삼성에 대해선 ‘애플의 동반자’로 높이 평가한 반면, 구글에 대해선 안드로이드폰이 애플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해 매우 싫어했다고 그는 전했다. 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에 대해선 “경쟁자인 동시에 존경하는 사이로 애증 관계였다”며 “죽기 두 달 전, 게이츠가 잡스를 찾아 추억을 나눴다”고 말했다.

잡스는 정치에는 거의 문외한이었지만 “버락 오바마와 민주당을 지지해 오바마를 위한 광고를 만들려고도 했고, 한때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작슨은 “2004년에 잡스가 처음으로 전기를 써줄 것을 제안했으나, 그때 잡스는 젊었으므로 ‘20~30년 뒤, 당신이 은퇴한 이후에 보자’며 거절했다. 그러다 2009년 잡스의 아내인 로런 파월이 ‘스티브가 암과 싸우고 있다’며 다시 제안해 수락했다”고 말했다. 

잡스는 모든 걸 솔직하게 써달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요구도 없었으며, 표지 디자인은 잡스가 직접 제시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벤자민 프랭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헨리 키신저 등의 전기 작가로도 유명한 아이작슨은 1984년 시사주간 <타임> 기자 시절부터 잡스를 알게 돼 전기를 쓰는 인연을 맺었으며, <타임> 편집장과 <시엔엔>(CNN) 최고경영자(CEO)를 거쳐 현재 아스펜연구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글·사진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월터 아이작슨 "밥 딜런에 빠진 잡스…분노의 눈물 자주 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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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전기작가

"최고경영자(CEO)로서보다 그의 창의성과 열정,완벽주의를 모델로 삼을 만하지요. "

애플의 창업자이자 CEO인 스티브 잡스가 타계하기 전 그와 40여차례의 인터뷰를 가진 사람.잡스와 애증관계에 있던 주변 인물들을 가감 없이 취재해 누구보다 잡스를 다각도로 파고든 주인공.'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8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잡스를 이렇게 평가했다. 

아이작슨이 전한 뒷얘기들 가운데 가장 궁금증을 자아낸 것은 전기에 구체적으로 실리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잡스가 아들 리드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이나 계획을 내비치지 않았느냐고 묻자 "미국에선 자식들이 경영권을 승계토록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되받았다. "내 생각에 잡스는 팀 쿡(현 CEO),조너선 아이브(디자인 총괄),필립 실러(마케팅 총괄),스콧 포스톨(아이폰 소프트웨어 총괄) 등으로 이어지는 경영 승계팀을 꾸려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리드는 스탠퍼드대 2학년생으로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다. 인문학,미학과 정보기술(IT)을 제품에 접목시켜 애플을 성장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잡스는 "앞으론 생물학과 기술을 접목시키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이작슨은 "잡스의 유언장 유무와 상속 문제는 잘 모르겠다"면서 "재산의 기부 여부는 한두 달 후 윤곽이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전기에서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애플과 삼성과의 관계를 거의 다루지 않은 것은 왜였을까. 아이패드를 다룬 장에서 삼성을 칩 납품업체로 딱 한 번 거론했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삼성을 훌륭한 파트너로서 존경했다"며 "그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시스템에 분노했고,이 시스템을 채택한 HTC와 삼성은 그 사이에 끼였다"고 해석했다. 

잡스에 대한 아이작슨의 평가는 그를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반열에 올린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잡스가 컴퓨터,MP3플레이어,휴대폰,태블릿 컴퓨터를 새로 발명하진 않았지만 창의와 상상력을 동원한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제품을 통해 관련 산업을 변화시켰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잡스의 천재성도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인문학과 기술을 접목시킨 데 있다"는 것이다. 

잡스가 가수 밥 딜런에게 푹 빠졌던 이유에 대해선 "딜런의 반항적이고 변화를 지속하는 기질에 호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이작슨은 "성격이 괴팍한 잡스가 아름다움을 생각할 때나 분노할 때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을 봤다" "그만큼 감성이 풍부한 인간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잡스 분발시킨동기는 인생이 짧다는 사실"

헌신적 사랑 복합적 성격 묶어줘
암 걸리기 전부터 종종 죽음 얘기
삶이 짧다는 것에 혼신의 힘 다해


[세계일보]“스티브 잡스를 분발시킨 가장 중요한 동기는 인생이 짧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애플의 공동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애스펀연구소에서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잡스의 전기를 쓰며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잡스의 삶과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아이작슨은 1984년 시사주간 타임의 기자 시절 잡스와 인연을 맺었으며 타임 편집장, CNN 최고경영자를 거쳐 현재 애스펀연구소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잡스의 요청으로 그의 전기를 쓰게 된 아이작슨은 잡스를 약 50차례 인터뷰했다고 한다. 100명이 넘는 주변 인물도 취재했다. 아이작슨은 “그의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전기에 쓰고 있는 내용을 말해줬다”며 “그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긴 하지만 괜찮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잡스가 유일하게 관여한 부분은 책 표지였다. 그는 단순하고 세련된 표지를 원했다고 한다.

잡스는 죽음 앞에서 담담했다고 한다. 아이작슨은 “그는 암에 걸리기 전에도 죽음에 관한 얘기를 자주 했으며, 우리는 태어나고 죽으며 아주 짧은 삶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열정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또 “선불교 수련을 쌓은 때문인지 잡스는 윤회를 믿었으며,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그 무엇이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월터 아이작슨
아이작슨은 잡스에 대해 강점과 약점을 모두 지닌 까다로운 인간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잡스의 창조성은 다른 생각을 하는 능력, 가장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무엇이 잡스를 위대하게 만들었을까. 아이작슨은 이 물음에 “잡스는 위대한 제품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면서 “그는 컴퓨터를 발명하지 않았지만 컴퓨터 업계를 변화시켰고, 뮤직 플레이어와 휴대전화를 발명하지 않았지만 음악산업과 휴대전화산업을 변화시켰다”고 답변했다. 

이어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그랬듯이 애플의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다른 것을 생각(Think Different)’한 천재”라고 규정했다. 전기를 쓰는 과정에서 잡스에게 경도된 것은 아닐까. 그는 “감정적으로 그에게 끌린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에 근거해 최대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잡스 전기에는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잡스를 입양한 양부모와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 선불교 스승인 스즈키 순류, 그리고 잡스와 인연을 맺은 여러 여인들…. 아이작슨은 잡스의 현재 부인인 로런 파월이 잡스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20여년 동안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그의 낭만적이면서도 통념을 거스르는 성향과 과학적이고 사무적인 성향을 통합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아이작슨은 잡스 없는 애플의 미래를 “향후 5년에서 10년은 번성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낙관했다. 잡스는 생전에 삼성과 치열한 지식재산권 전투를 벌였다. 그럼에도 잡스의 전기에는 삼성 관련 언급이 없다. 아이작슨은 “잡스는 삼성을 애플의 훌륭한 동반자로 생각했지만, 삼성과 대만 기업 HTC 등이 사용한 안드로이드가 애플의 운영체제를 도용했다는 점에서 매우 분개했다”면서 “자서전 집필 과정에서는 잡스가 삼성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전기에서 “잡스가 너무 긴장해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적은 가수 밥 딜런을 만났을 때 뿐”이라고 썼다. 잡스는 왜 밥 딜런에게 열광했을까. 아이작슨은 “잡스는 밥 딜런이 자신의 세대를 대변한 반항아이자 시인이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밥 딜런이 계속 변화했다는 점을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coolman@segye.com


 

"잡스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사랑한 CEO"

"스티브 잡스, 그의 혁신의 끝엔 항상 사용자가 있었습니다." 

이 한마디에서 스티브 잡스가 살아 생전 애플에서 보여준 혁신의 원동력을 찾을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 본 제이 엘리엇 누벨(Nuvel) CEO는 스티브 잡스가 쫓던 혁신의 모습을 이 짧은 한마디로 설명했다. 

제이 엘리엇은 1980년, 10여년간 몸담고 있던 인텔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날, 당시 25세였던 젊은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 식당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다. 제이 엘리엇 CEO는 이를 두고 "인생을 뒤바꾼 운명적인 만남이었다"라고 회고했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는 제이 엘리엇에 대해 "나의 왼팔"이라고 표현했다. 스티브 잡스가 왼손잡이 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제이 엘리엇 CEO가 애플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왼팔'이었던 제이 엘리엇 CEO가 한국을 찾았다. 제이 엘리엇 CEO는 지식경제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테크플러스 포럼'에서 11월10일,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과 애플의 기업문화’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애플 스토어나 스티브 잡스의 대문 앞에는 애플 제품 사용자가 찾아와 편지와 꽃다발을 두고 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티브 잡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내 평생 이렇게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주는 기업은 처음이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하죠. 생각해 보세요. 그 누가, 그 어떤 기업의 CEO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이런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제이 엘리엇 CEO는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 이후 전세계 애플 사용자가 스티브 잡스에 보낸 애도의 얼굴을 설명했다. 이 같은 이례적인 모습은 스티브 잡스가 추구한 혁신의 끝에 사용자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 진정성이 사용자에 전달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스티브 잡스는 항상 그가 창조한 제품의 최고의 전문가였고, 동시에 사용자였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이후, 오늘날 대형 업체 CEO의 모습에서 스티브 잡스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제이 얼리엇 CEO가 들려준 또 다른 경험담이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자동자 브랜드가 일본 브랜드에 자리를 빼앗기기 시작한 때가 있었죠. 결국 미국 자동차 업계 CEO 단체는 미국 정부와 직접 로비를 하고자 헬기며 비행기로 미국 정부를 향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각자 개인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벤츠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죠. 그들은 모두 GM이나 포드 차동자 업체의 CEO가 아니었던가요? 스스로 자동차를 만드는 업체의 CEO이면서 자기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만든 제품을 외면한 셈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쫓았던 혁신의 모습은 '기술의 인간화'가 아니었을까. 수학적이고, 물질적인 기술이라는 틀을 사람이라는 틀로 확장하는 것 말이다. 제품의 끝에는 항상 사용자가 있기 마련이다. 업체의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용자 입장에 서서 사용자를 위해 만든 제품이야말로 '혁신'이라는 딱지가 잘 어울린다.

오원석 기자 sideway@bloter.net

 

엘리엇 전 애플 부사장 "잡스는 부끄럼쟁이였다"

/제이 엘리엇 전 애플 수석부사장
제이 엘리엇 전 애플 수석부사장이 프리젠테이션의 '달인'이었던 스티브 잡스에 대해 "부끄럼을 매우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라고 말해 눈길을 끈다.

엘리엇 전 부사장은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테크플러스 2011'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달 초 영면한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엘리엇은 "그는 사실 부끄럼을 대단히 많이 탔고 대중 앞에서 하는 연설도 아주 싫어해 유명한 '스탠포드대 연설'도 겨우 하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잡스는 1985년께 뉴욕의 한 식당에서 엘리엇과 식사를 함께 하던 중 유명 연예인이 들어오자 "제이, 제이 저기로 가서 사인 좀 받아 줘"라고 말했다. 

엘리엇은 "잡스 당신이 사인을 직접 받아 와야하기도 하지만 실은 저 연예인이 사인을 여기로 받으러 와야하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잡스는 재차 사인을 받아와 달라고 졸랐다는 것.

이어 "아시다시피 잡스가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데 그 연예인은 영화 음악을 담당하던 연예인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잡스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엘리엇은 "그는 훌륭한 혁신가였다. 나는 그의 인재 사랑, 조직 문화와 제품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보인 점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잡스는 에디슨처럼 특허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기 보다는 기술을 기반으로 제품을 인간화시킨 데 장점이 있다"며 "그를 이을 혁신가는 현재로선 어떤 산업 분야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그의 단점은 본인이 하는 애플의 일에만 집중해서 개인적인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는 "잡스는 타인이 제품이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나 수익에 대한 것 보다는 '내가 사용자라면 어떤 제품을 만들지'를 고민했다"며 "한국뿐 아니라 다른나라 기업 CEO도 이런 점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엘리엇은 "잡스의 리더십을 배우려면 자기 제품의 최고 사용자가 돼야 하고 그 제품을 사랑해야한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함께 지난 20여년간 제품 개발과 인재 채용, 조직 문화 , 브랜딩 등 애플의 전반적인 경영에 참여한 인물로 왼손잡이인 잡스가 '나의 왼팔'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믿고 기댄 멘토로 알려졌다. 

한경닷컴 김동훈 기자 dhk@hankyung.com

 

[낮은 목소리로]스티브 잡스와 i

영어를 정식으로 배운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첫 수업시간에 영어 선생님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문장에서는 흔히 주어가 생략되지만 영어에서는 반드시 주어가 필요하다. ‘나’를 뜻하는 주어는 반드시 대문자 I로 써야 한다.

고등학교 때 i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소문자였고 영어시간이 아니라 수학시간이었다. 이 세상은 실수만으로는 설명이 되지를 않는다. 그래서 도입된 수가 허수이다. 제곱을 해서 -1이 되는 수를 i로 표시하는 것이다.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2011년 10월7일자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주요 신문들의 1면에 i가 많이 등장했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개발하고 떠난 한 미국 기업인의 부음을 전하는 소식이었다. i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세상이 밝히는 촛불처럼 보였다.

“이젠, 잡스 없는 세상” “잡스, iSad” “갈망하라 무모하라 그렇게 살아라” “i Dad” “그가 있어 인류는 진보했다” “IT 세상을 남기다” “세상을 바꾼 남자 Logout” “고마워요. 스티브” “잡스가 남긴 유산은 아름답다” “i Sad…스티브 잡스” “선(禪). 잡스 정신적 기반은 불교” “사과 한입 베어 물고 죽음에 키스하다” “천국에 로그인”

i는 어찌보면 한 인간의 모습과도 같다. 언젠가는 똥막대기처럼 변해야 하는 빼빼 마른 인간의 육체. 애플사 홈페이지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Steve Jobs 1955~2011’과 사진이 떠있었다. 빳빳한 수염이 수북하고 동그란 무테 안경의 남자였다. 

그는 컴퓨터에만 능통한 게 아니었다. 삶에서 죽음의 의미도 독특하게 발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죽음으로 이 세상에 대단한 파문을 던졌지만, 그는 살아서도 죽음에 대한 연설로 감동을 주었다.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장에서였다. 그 대단한 축하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바로 ‘죽음’입니다.”

애플은 초기의 매킨토시를 제외하고 제품명에 i를 붙였다. i는 무엇을 뜻할까. 인터넷을 뜻하기도 하고 ‘나’를 뜻한다고도 한다. 잡스는 디자인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한다. 대문자 I를 소문자 i로 바꾼 것. 그리고 제품명에 i를 앞에 붙인 것. 애플의 디자인 중에서 이것 역시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디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세상을 바꾸었다. 정보기술(IT) 혁명으로. 그는 자신의 세계도 바꾸었을까. 여기에는 마음혁명이 필요한 법인데, 과연 그리 했을까. 작은 실마리를 찾아보기 위해 잡스가 I를 i로 바꾸듯 나는 아이티(IT)를 소문자로 써본다. 그러면 그것은 그것(it)이 된다.

김형효 선생이 지은 <마음혁명>은 현대철학의 모든 문제를 잘 해설해 놓은 책이다. 이런 대목이 있다. “의식의 말인 ‘나는 말한다(I speak)’는 사실 무의식의 말인 ‘그것이 말한다(It speaks)’의 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 본성의 말을 하이데거는 ‘그것(it)의 말’이라고 불렀다. 데카르트가 말한 ‘내가 생각한다’는 철학은 나는 의식의 주체로서 진리를 소유해야 확실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그런 철학은 자의식 중심주의가 되어, 절대로 우주와 세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세상과 로그아웃하고 천국에 로그인’한 스티브 잡스. 그곳에서도 IT업계에 종사할까. 내 생각에는 아닐 것 같다. 몇 가지 정황이 있다. 한때 그는 애플에서 쫓겨났었다. 그가 복귀 연설을 할 때 무대 스크린에 ‘iCEO’라는 직함을 썼다. 임시(interim)라는 뜻이었다. 그는 삶 자체가 임시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죽음에 관한 그런 통찰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또한 이승에서 그의 소신은 ‘다른 것을 생각하라(think different)’가 아니었던가. 무엇보다도 잡스의 정신적 기반은 선불교이지 않은가. 그러니 그간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지 않을까.

<마음혁명>을 꺼내 그 대목을 다시 읽으면서 애플 홈페이지를 또 들여다본다. 나는 그하고 닮은 점은 없지만 같은 점은 매우 많다. 눈이 둘이고 귀는 양옆으로 붙었다. 하나뿐인 입은 굳게 다물었다. 더구나 나도 언젠가는 그처럼 삶에서 죽음을 발견해야 한다. 내가 그만 바라보듯 그도 나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게. 자네 자신만의 인생을 살게.” 

1955~2011년의 56년간은 그에게 한바탕 꿈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곳에서 깨어난 스티브 잡스. 나(I)밖에 모르는 괴팍한 천재였던 그도 i가 도립한 느낌표(!)와 같다는 것을 이젠 깨닫지 않았을까. 이젠 IT 혁명이 아니라, 마음혁명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 우주와 이 세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나(I)의 말이 아니라 그것(it)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검은 터틀넥에 형형한 눈빛의 고인을 보면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스티브 잡스가 문화콘텐츠 생태계에 남긴 자취들
[기고칼럼]
 
황준석 
▲황준석 /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
애플의 창업자이자 전 CEO인 스티브 잡스가 지난 5일 영면에 들었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추모 열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고, 그의 전기는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이나 언론보도도 이어지고, 많은 이들이 인류 역사에 영향을 끼친 세 개의 사과로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와 함께 애플의 로고인 '한입 베어 먹은 모양의 사과'를 포함시키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는 애플2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으며, 매킨토시로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는 운영체제 시대를 열고, 전자출판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통해 3D CG애니메이션 시대를 열고, 아이팟과 아이튠스로 음악 산업을 뿌리부터 바꿔 놓았다. 최근에는 아이폰으로 휴대폰 시장에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아이패드로 태블릿 컴퓨팅 시대를 열어 종이에서 스크린 문화로, 컴퓨터를 모바일로, 포털 시대를 앱(App) 시대로 재창조해냈다. 
  
많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를 단지 첨단 IT 기술에서의 혁신을 이룬 인물로만 기억하지는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 인터넷 서점이 진행한 ‘스티브잡스가 남긴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이라는 설문에서 많은 네티즌은 그가 남긴 것으로‘기술과 인문학의 만남, 예술적 감수성과 상상력의 가치 재발견' 이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스의 업적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잘 다뤄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콘텐츠 산업 생태계에 대해 스티브 잡스가 끼친 영향에 관한 것이다. 스티븐 잡스가 영웅으로 조명을 받는 것은 그가 개발한 제품과 서비스는 단지 첨단의 기술이 적용된 기기라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직관적인 디자인과 함께 직접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성적 가치를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의 예술가적인 집착이 가져다 준 결과물이었으며, 이로 인해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다. 
  
먼저 그는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그가 애플사에서 떠나 있던 1986년 조지 루카스로부터 인수해 10년의 노력 끝에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성장시킨 픽사(Pixar)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손으로 한 컷 한 컷 그려 찍는 셀 애니메이션이 주류였다. 픽사는 컴퓨터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CG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픽사는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첫 작품인 `Toy story'의 성공에 이어 'bugs life', 'Monster Inc', 'Finding Nemo' 등의 흥행에 성공을 거둠으로써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종결시켰다. 
 
픽사의 성공 이후 Walt Disney나 Fox, Dreamworks 등의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 작업은 흥행성을 상실하였으며, 캐릭터와 배경의 입체감을 극대화하고 색감과 운동감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CG애니메이션이 대세로 등장했다. 그 동안 무려 60여년에 걸쳐 애니메이션의 강자로 군림했던 월트 디즈니는 결국 픽사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다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강자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 셀 애니메이션은 이제 일본과 같이 거장용 셀 애니메이션의 전통이 남아 있는 시장에서나 흥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의 경우도 CG 애니메이션이 대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듯 픽사는 애니메이션이란 표현양식의 본질적 구성 속성을 바꿔버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둘째로 잡스가 음악 산업의 생태계에 미친 영향도 매우 크다. 애플이 컴퓨터 제조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2001년 아이팟(Ipod) 출시 때부터이다. 아이팟은 스티브 잡스가 구상한 `디지털 허브'로서 작용하였으며, 이른 바 기기와 플랫폼, 그리고 콘텐츠로 연계되는 ‘애플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상품화한 MP3 플레이어가 애플에 의해서 첨단의 모바일 제품으로 재탄생되었지만, 아이팟으로 인한 음악 산업의 생태계 변화는 매우 컸다. 아이팟의 성공은 사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우수한 인터페이스와 더불어 기기와 콘텐츠를 연결하는 생태계 조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MP3 플레이어 도입 초기 음악 저작권자들이 불법 콘텐츠 유통에 대해 우려하는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들을 설득하여, 아이튠스(Itunes)라는 콘텐츠 장터를 형성함으로써 MP3 시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후 애플은 2004년 아이팟 미니(Ipod mini), 2005년 아이팟 나노(Ipod nano) 등 아이팟 시리즈를 잇달아 성공키며 MP3 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했으며, 이러한 아이팟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2007년 1월 새로운 방식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출시하여 전 세계 휴대폰 시장 구도를 뒤흔들었다. 아이튠즈를 바탕으로 스마트폰에 적합하게 만든 앱스토어(Appstore) 역시 새로운 콘텐츠의 유통의 플랫폼을 변화시키는데  핵심 요인이 되었다. 잡스는 이어 2010년 1월 아이패드를 발표하여, 태블릿PC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이는 음악 뿐 아니라 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콘텐츠 유통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세 번째는 출판 산업의 생태계에 미친 영향이다. 디자인을 핵심 경쟁력으로 하여 애플에서 공급하는 첨단의 기기와 소프트웨어는 전자출판이 가능하게 하였다. 기존에 직접 사람의 손을 통해 제작되는 책을 만드는 작업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만든 매켄토시, 맥북과 레이저프린터의 결합으로 이어졌고, 가히 출판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는 컴퓨터 화면과 실제 인쇄했을 때 그래픽이 동일하도록 한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로 인해 가능했다. 컴퓨터에서 보는 모습이 그대로 출력되는 소프트웨어는 출판사에게 새로운 출판방식으로의 전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애플의 컴퓨터와 프로그램은 창조적인 예술 분야에서도 컴퓨터가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매킨토시의 등장은 최초로 컬러그래픽을 구현함으로써 전 세계에 혁명적인 디자인의 물결을 일으켰다. 출판업자를 비롯해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 등 그래픽으로 작업을 하는 모든 예술가들의 핵심 작업은 매킨토시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디스플레이와 레이저 프린터 등 이미지와 관련한 장비들도 매킨토시에 최적화되면서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아울러 소비자에게 있어서 스티브 잡스는 직관적인 첨단 기기를 통해 새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출판 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고 있다. 스마트폰인 아이폰과 태블릿 PC인 아이패드는 이용자가의 독서 패턴을 모바일과 디지털 환경으로 전환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태블릿 PC는 전자책 산업의 기반을 형성하는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 비록 스티브 잡스가 애니메이션이나, 음악 그리고 책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는 예술적 감수성과 상상력, 인간의 감성에 대한 이해와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탁월한 마케팅 감각을 바탕으로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를 재편해 놓은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떠났지만, 그가 이루어온 업적은 남겨진 기업과 후배들에 의해 계속 계승 발전될 것이다. 이는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에 있어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예술의 발전 과정을 살펴 볼 때, 예술적 흐름의 주인공은 비록 예술가 본인들이었지만, 예술적 표현양식의 진화와 개발, 확대는 대부분 발명가들과 혁신적인 사업가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기술자와의 협업, 그리고 마케팅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된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스티브 잡스를 능가하는 혁신적 사업가, 애플을 뛰어넘는 최첨단기업이 나와야 한다. 또한 첨단의 기기와 서비스를 활용하여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이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유통시키는 창의적인 콘텐츠 업체도 나와야 한다. MP3 플레이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콘텐츠의 P2P 유통방식을 처음으로 시도한 바 있는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충분히 그럴 자격과 능력이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이제는 인문학적 소양과 첨단의 기술력, 그리고 마케팅 능력을 갖춘 콘텐츠 기업과 혁신적인 기업인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다시금 다양한 분야의 인류 역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기고 떠난 전 애플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스의 영면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