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08 05:40
스티브 잡스 창의력의 뿌리는 어디인가‥'혁신·대항문화'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든 애플. 그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 그가 보여준 창의력과 열정의 원천은 어디일까. 뿌리없는 나무가 없듯 잡스는 실리콘밸리의 해커 문화와 대항 문화라는 자양분을 바탕으로 오늘날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는 평가다.
◆ 진정으로 인간과 소통하는 기계를 원한 잡스
‘만지고 또 느끼고’
스티브 잡스가 선보인 제품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은 ‘기술 그 이상’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플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그래픽인터페이스(GUI)가 그렇다.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컴퓨터를 조종할 수 있도록 한 덕분에 누구든 쉽게 컴퓨터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클릭 한번으로 움직이는 마우스, 수백 곡·수천 곡의 곡중에서 원하는 곡을 찾아주는 아이팟의 ‘휠 버튼’, 손가락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조작하는 아이폰·아이패드의 ‘터치’에 이르기까지. 그는 진정으로 인간과 소통하는 기계를 만들고 싶어했다.
잡스는 ‘미투(복제품)’를 내놓는 것을 죽는 것보다 더 싫어했고, 부자가 되기보다는 ‘정말 놀라운 일을 했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 홈브루 컴퓨터 클럽
이러한 혁신에 대한 잡스의 갈망은 70년대 한 컴퓨터 클럽에서 구체화됐다. 잡스는 청소년 시절 실리콘밸리에 속한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시에서 보냈는데 그의 사교 무대가 바로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이었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1975년에서 1977년까지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한 초기 컴퓨터 애호가들의 모임으로 수준 높은 해커와 컴퓨터 전문가들이 주 회원이었다. 그들의 꿈은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것. 당시만 해도 개인 책상에 컴퓨터를 올려놓고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잡스가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난 것도 이 클럽을 통해서였다. 워즈니악의 공학적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잡스가 워즈니악을 설득해 1976년 애플을 창업했다.
이 클럽을 소재로 한 영화와 책도 있다. 1999년 만들어진 텔레비전 영화와 책 ‘실리콘밸리의 해적들(Fire in the valley: The Making of the Personal Computer)’은 개인용 컴퓨터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활동을 그리고 있다.
스티브 잡스 `플래시 거부'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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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비, 애플의 비판에 "사랑해요" 반격 (AP=연합뉴스, 보도용) 어도비 시스템즈가 웹 비디오와 게임 기술에 쓰이는 어도비의 플래시 기술을 비판한 스티브 잡스의 최근 발언에 대한 반격으로 13일 "우리는 애플을 사랑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미국의 10여개 일간지에 일제히 게재했다. |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성용 특파원 = 미국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동영상 구동 소프트웨어인 어도비의 플래시를 거부하고 있는 전략이 성공할 것인가.
플래시는 웹상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로 웹상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잡스는 플래시의 기술적 단점을 지적하며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플래시 지원 문제를 놓고 애플과 어도비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잡스가 플래시를 대체할 수단으로 지지하고 있는 비디오 코덱 표준인 `H.264'의 활용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고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14일 이 잡지에 따르면 미디어 리서치 웹사이트인 `미피디어'(Mefeedia)'의 분석 결과 웹상의 동영상 중 플래시가 아닌 `H.264'로 구동이 가능한 동영상의 비율이 5월 현재 기준으로 26%에 달했다.
`H.264'를 활용한 웹상의 비디오 비율이 아이패드가 공개됐던 지난 1월 기준 10%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크게 높아진 것이다.
포춘지는 "미피디어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플래시의 지원을 거부한 스티브 잡스의 전략이 웹상의 비디오 비율이란 측면에서 4분의 1 가량에 이를 정도로 상당한 진전을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ksy@yna.co.kr
"안드로이드와 핵전쟁"… 경쟁자에 무자비했던 잡스
구글 안드로이드 채용해 HTC가 스마트폰 내놓자
"애플 400억달러 모두 바쳐 죽는 순간까지 싸우겠다"
MS와 특허 소송 펼치며 "열등한 윈도, 시장 지배" 비난
삼성에 대한 특허 소송도 잡스가 최종 결정 내린 듯
"빌어먹을 구글, 당신들은 아이폰을 훔쳤어. 우리를 완전히 벗겨 먹었다고."
스티브 잡스는 2008년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 소리를 지르며 대판 싸움을 벌였다. 구글이 아이폰 운영체제 'iOS'와 사용법이 비슷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페이지와 브린은 그동안 잡스를 멘토(스승)처럼 존경했으나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과 정면 승부를 선언했다. 그러자 잡스는 구글에 대해 "검색을 제외한 구글의 제품들은 모두 개똥이다" "'사악해지지 말자'는 구글의 사훈(社訓)은 헛소리"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작년 대만의 HTC가 안드로이드를 채용한 스마트폰을 내놓자 애플은 즉각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책에는 '창조 경영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잡스가 퍼부은 독설과 특허 소송 전문가의 면모가 상세히 소개된다.
잡스는 작년 HTC에 소송을 제기한 직후 "필요하다면 죽는 순간까지 남아 있는 내 인생과 은행에 있는 애플의 자금 400억달러를 모조리 바쳐서라도 상황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기꺼이 핵전쟁을 불사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에 앞서 1990년대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가 우리 특허를 깔아뭉개고 있다"며 소송전을 벌였다. "열등한 제품(윈도를 지칭)이 시장을 지배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맞서 빌 게이츠도 "잡스는 기술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고, 그냥 말발만 센 세일즈맨"이라고 공격했다.
태블릿PC '아이패드'를 개발할 때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인 인텔과 마찰을 빚었다. 잡스는 "인텔은 고성능 칩을 만들지만 (업무처리 속도는) 증기선처럼 느리다"고 비판했다. 결국 애플은 아이패드의 두뇌 격인 응용프로세서(AP)를 직접 설계해 삼성전자에 제조를 위탁했다.
하지만 삼성이 구글 안드로이드를 이용한 스마트폰 '갤럭시S'로 대성공을 거두자 애플은 올 4월 삼성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HTC에 소송을 낼 때와 마찬가지로 잡스가 최종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명한 비전 제시한 잡스는 ‘현명한 독재자’
지난주 미국, 아니 세계 최고의 뉴스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이었다. 마침 그가 살던 집이 내가 사는 곳과 매우 가까운 터라, 현장에서 느끼는 애도의 열기는 실로 대단했다. 2년 전 마이클 잭슨의 사망 당시와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는 한 명의 ‘선지자(visionary)’를 잃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의 집을 찾았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집 앞에는 수백 개의 꽃다발과 감사카드, 불을 켠 양초, 한 입 베어 먹은 사과(그가 경영했던 애플사의 로고) 등이 놓여 있었다. 전 세계 미디어는 추도의 글로 넘쳐난다. 다들 잡스가 인류에 불어넣은 ‘영감(inspiration)’을 칭송하고, 그가 사라진 세상은 더 이상 예전처럼 흥미롭지 않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가히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엄청난 이 애도의 물결은 분명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일단 그는 교황과 같은 성인(聖人)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도 아니다. 단순히 보자면 그저 한 회사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단 애도의 ‘스케일’이 범세계적이며 추도의 내용 역시 그가 실천한 혁신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렇듯 과잉 추도 열기를 조심스럽게 비판하기도 한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하루 종일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붙들고 사는 사람들에겐 잡스가 지구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는 명석한 사람이었지만 아인슈타인은 아니었다”고 논평했다. 한 인터넷 언론은 애플사의 제품이 중국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진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의 월간지 더애틀랜틱은 “애플사가 성인에 의해 설립된 것은 아니다”라며 그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를 전했다. 애플사의 엔지니어들이 아이팟(iPod)을 개발해 잡스에게 가져갔다. 잡스는 요리조리 만져보더니 더 작게 만들라고 했다. 엔지니어들이 “기술적으로 더 작게 만들 수는 없다”고 하자 그는 사무실에 있던 어항 속에 아이팟을 넣었다. 기포가 올라오자 그가 말했다. “이 공기방울만큼의 공간이 제품 안에 있다는 증거다. 더 작게.”
요지는 잡스가 아주 우수한 두뇌를 지닌, 게다가 추진력까지 갖춘 유능한 기업가이긴 하지만 인류 평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성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날 미국 흑인인권 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인 프레드 셔틀스워스 목사가 사망했지만 그의 죽음은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결국 잡스의 죽음을 둘러싼 추도 열기는 이 시대가 갈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현재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것은 미담이나 선행이라기보다는, 다소 독불장군 같더라도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이다. 선행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 아니다. 잡스가 선지자로까지 추앙받는 현상 속에서 현대인들의 불안을 읽었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진정으로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현명한 독재자’인지도 모르겠다.
김수경씨는 일간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김수경 sisikolkol@gmail.com
월스트리트 시위대 "잡스는 '탐욕의 1%' 아닌 '선구자'"
잡스 '기부 인색' 논란…U2 보노 "에이즈 퇴치에 수천만 달러 냈다"
[프레시안 김봉규 기자]
지난 5일 사망한 스티브 잡스는 기부에 인색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망 이후 그의 생애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면서 사회적 책임에 충실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지만 잡스를 옹호하는 이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7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억만장자 중 하나인 스티브 잡스가 자선 사업에서는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잡스는 그와 비슷한 IT 업계의 억만장자들의 벌이는 자선사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는 재산의 최소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에 가입했지만 잡스는 가입을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디애나대학 자선센터가 집계하는 100만 달러 이상 기부자 명단에도 잡스는 없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8월 잡스의 기부 문제를 주제로 한 칼럼에서 그가 약 83억 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자선 기금을 냈다는 공개적인 기록은 없으며, 그의 이름이 들어간 병원이나 대학 건물도 없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자선활동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필랜스로피>의 칼럼니스트 빈센트 슈텔레도 많은 혁신기업들이 저마다 특징을 살려 사회공헌 방안을 내놓았지만 애플의 경우는 다소 실망스러웠다고 꼬집기도 했다.
잡스는 1997년 기울어가던 애플의 경영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기부 활동을 모두 중단시켰다. 2000년대 들어서도 애플이 큰 성장을 했지만 자선사업에는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지난 8월 잡스의 사임으로 최고경영자 자리를 물려받은 팀 쿡은 이같은 비난을 의식하고 지난달 애플 직원들이 비영리단체에 기부할 경우 연간 1만 달러 범위 내에서 회사도 같은 액수를 기부하는 자선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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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 본사 앞에 지난 5일 사망한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는 꽃들이 놓여져 있다. ⓒAP=연합뉴스 |
하지만 잡스의 옹호자들은 공개적인 기부가 없었다는 이유로 자선사업에 인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폈다고 신문은 전했다.
록밴드 'U2'의 보컬 겸 사회활동가인 보노는 애플이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 운동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해 2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에이즈 검사 및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고 밝혔다.
보노는 애플의 참여를 보고 다른 기업들도 같은 자선사업에 나섰다면서 잡스가 너무 바빠서 자선 활동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지 기부 자체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옹호했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잡스의 자선사업은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후 설립한 '스티브 잡스 재단'이 거의 유일하다. 잡스는 자신의 재단이 채식 운동 등에 집중하기를 원했지만, 재단 운영을 위해 영입한 마크 버밀리온은 사회적 기업 활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잡스는 얼마 뒤 컴퓨터 기업 '넥스트(NeXT)'를 세우고 재단을 없애버렸다.
버밀리온은 "잡스에게 (재단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지금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라며 "난 잡스를 비난하지 않는다. 난 그에게 내 아이디어를 좀 더 설명했거나, 그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했었다"라고 말했다.
버밀리온은 잡스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더 많은 기부를 했을 거라면서도 잡스는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잡스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는 (그 시간에) 매우 놀라운 제품을 만들어 내 사회와 문화에 공헌한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의 부인 로렌 파웰 잡스도 공개적인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활발한 기부 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나타났다. 로렌은 빈곤층 자녀의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한 지원활동 및 사회개혁 운동, 전 세계의 여성의 교육 개선을 위한 모금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편, <AP>는 이날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해 온 억만장자들을 꼽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대들도 잡스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올해 '아랍의 봄'에서부터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까지 시위대들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을 이용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접속해 시위 소식을 전했지만, 잡스 자신은 시위대가 비판하는 사회의 '1%'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통신은 시위대들에게 이에 대한 혼란은 없었다고 전했다. 도린 카를스토라는 시위 참자가는 통신에 잡스는 다른 '1%'처럼 돈벌이를 위해 인류의 미래를 무시하지 않았다며 대신 사람들이 더 쉽게 소통하고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시위 참가자들이 잡스를 '지도자, 선구자'로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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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7인치 태블릿에 '미래없다' 독설 왜?
[아시아경제 조성훈 기자]결국 태블릿시장은 9.7인치와 7인치의 대결로 정리됐다. 스티브잡스 회장의 독설이 이를 확인시켰다.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은 18일(현지시간) 4 분기 실적발표뒤 열린 콘퍼런스콜에 이례적으로 등장, "내달부터 쏟아질 7인치 안드로이드 태블릿PC는 'DOA'(Dead on arrival) 즉 도착 즉시 사망하게 될 것이며 제조사들은 뼈아픈 교훈을 얻고 내년에 우리와 같은 10인치로 화면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발언은 7인치 태블릿이 휴대성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일각의 지적과 배치되는 것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결국 스스로 7인치 태블릿PC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시킨 셈이다. 애플이 내년 7인치 태블릿을 출시할 것이라고 전망하던 해외 투자사와 외신들만 머쓱하게 됐다.
이날 잡스는 작심한 듯 안드로이드 진영 경쟁사들에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태블릿에 대해 모두들 7인치가 낫다고 얘기하지만 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면서 "아이패드의 9.7인치는 직경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실측하면 7인치 태블릿보다 45%나 화면이 크다"고 강조했다. 애플은 수년간 터치인터페이스를 연구해왔고 9.7인치는 손가락 터치조작(태핑이나 플릭, 핀치업) 등으로 태블릿용 앱을 사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크기라는 것이다.
나아가 대부분 태블릿 사용자는 스마트폰을 소유하는 상황에서 이동성을 강조한 7인치 기기는 스마트폰과 중첩된다는 것이다.
잡스는 또 "구글조차도 안드로이드2.2 프로요가 태블릿 기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내년에 태블릿용 플랫폼을 내놓는다고 말했는데 왜 제조사들이 이를 무시하느냐"고도 했다. 전용 앱면에서도 애플은 3만 5000여개인데 반해 안드로이드 태블릿은 사실상 제로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아이패드가 월등히 뛰어난 제품이며, 7인치 태블릿제조사들은 뼈아픈 교훈을 얻게 될 것이라는 엄포성 발언이다.
뿐만 아니다. 잡스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대해서도 "제조사마다 플랫폼의 버전이 분화되고 있는데다 안드로이드 마켓과 유사한 오픈마켓을 이통사나 관련기업들이 잇따라 내놓아 소비자와 개발자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애플이 폐쇄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오히려 "통일된 플랫폼과 단말기, 앱스토어로 소비자 혜택을 키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같은 잡스의 독설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갤럭시S 등 안드로이드 진영 태블릿의 파상공세가 거세자 애플이 다시 한 번 견제심리를 드러낸 것"이라며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잡스의 입이 아닌 소비자의 선택인 만큼 지켜보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4분기(애플 회계연도기준) 실적집계 결과 애플은 분기 사상 최대인 203억 달러의 매출에 42억 1000만달러의 순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아이패드 판매량은 월가 전망치(450만대)보다 30여만대 가량 적은 419만대에 머물렀다.
스티브 잡스의 고집이 꺾였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아이폰에서 구글 인터넷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쓸 수 있게 하고 어도비 플래시도 우회적으로 허용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구글은 16일(현지시각) 애플 앱스토어에서 구글의 무료 인터넷전화 애플리케이션 ‘구글보이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구글보이스는 사용자가 하나의 번호로 여러 기기에서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인터넷 기반 음성통화, 메시지 전송 서비스 등을 지원한다. 통화요금도 기존 전화에 비해 저렴한 수준이다. 구글보이스는 ‘iOS 3.1’ 이상 버전의 아이폰에서 이용할 수 있고 미국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1년이 넘게 구글보이스의 앱스토어 등록을 거부했던 애플이 방침을 바꾼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애플은 구글보이스를 비롯한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애플리케이션이 휴대폰의 주요 기능을 대체하고 혼란을 일으킬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등록을 막아왔다. 무엇보다 구글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만큼 구글의 통신시장 진입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달 초 애플은 플래시 동영상을 보여주는 아이폰용 브라우저 애플리케이션 ‘스카이파이어’의 앱스토어 등록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아이폰에서 구동되지 않는 플래시 기반 콘텐츠를 HTML5로 변환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일련의 행보로 인해 업계에서는 애플의 개방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에 자사 입맛에 맞는 애플리케이션만 등록을 허용하고, 플래시는 원천 봉쇄하는 등 폐쇄적인 행태로 비판을 받아왔다.
에릭 슈미츠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애플의 시스템이 폐쇄적”이라며 공격하기도 했다. C넷은 “애플이 앱스토어의 장벽을 낮추고 구글과의 관계도 다시 설정하는 등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돈보다 경쟁사 흠집내기 목적… 잡스 빠져 ‘소송戰’ 변화 가능성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가 24일(현지시간)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전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 전쟁’도 중·장기적으로는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적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특허 전쟁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술을 응용해 새로운 기술로 만들면서 발생하는 분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는 잡스가 빠진 애플의 정책이 변화하면서 특허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IT 시장의 맹주 자리를 놓고 펼쳐지는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전쟁의 배경과 전망 등을 10문10답으로 알아본다.
1. 특허 전쟁 왜 발생했나
최근 애플과 삼성전자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간에 특허 분쟁이 잇따르고 있는 현상은 휴대전화 시장이 일반 휴대전화(피처폰)에서 스마트폰 시장으로 전환되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다. ‘스마트폰 시장의 개척자’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애플이 전통적인 휴대전화 시장의 강자인 삼성전자나 노키아, HTC 등을 견제하는 ‘신흥 강자’ 대 ‘전통 강자’의 구도와 운영체제(OS)상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이 대립하면서 분쟁이 불가피한 측면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등장으로 휴대전화와 PC 간 경계가 무너지며 애플, 구글, 삼성전자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모두 뛰어든 총성없는 전쟁터가 된 스마트 디바이스(기기)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졌고 특허를 위시한 각종 법적 분쟁도 이 같은 경쟁의 일환으로 나타났다는 뜻이다. 스마트 디바이스 시장을 개척한 애플은 디자인이나 아이디어에서 강점을 보인 반면, 삼성전자 등 전통적인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통신 기술 표준 특허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것도 특허 전쟁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점을 가진 분야가 다르다 보니 자연스레 특허가 ‘무기’가 되고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는 뜻이다.
2. 특허 전쟁의 양상은
업계에서는 이 같은 특허 분쟁이 치고받는 심각한 대립으로 확대되기보다는 ‘흠집내기’와 ‘견제구’ 수준에서 그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통상 특허 소송 자체가 후발 기업의 시장 진입을 견제하거나 경쟁사의 이미지를 훼손해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다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 실제 특허 소송의 결과가 시장에 반영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통상 1년 이내 주기로 후속 모델이 나오는 만큼 특정 모델에 대해 소송을 걸어 봤자 판결이 났을 때는 이미 단종된 뒤일 가능성이 크다.
3. 애플의 속셈은
특허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애플의 속셈은 모바일기기 업계의 거인이자 주요 경쟁사인 삼성전자를 견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의 선두주자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삼성전자가 애플 아이폰에 맞서고 있는 구글 안드로이드 OS 진영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면서 향후 안드로이드 진영과의 글로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를 견제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애플이 소송을 통한 금전적인 손해배상보다는 경쟁업체에 ‘아이디어 도용’이라는 딱지를 덮어씌우고 시장 선두 주자의 이미지를 이어가려고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애플발(發) 특허 전쟁이 삼성에 손해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애플이 주로 삼성전자를 걸고 넘어지며 자연스레 ‘양강 체계’가 구축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4. 특허 소송 현황은
현재 글로벌 IT 기업 간 특허 전쟁의 진원지는 애플이지만 소송당한 기업도 맞소송을 제기하며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애플은 2009년 노키아로부터 아이폰을 만드는 과정에서 특허를 침해했다며 피소된 이후 특허 소송에 본격 참여했다. 최근 안드로이드 진영을 대상으로 마구잡이 제소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주요 국가 법원에 제소한 데 이어 HTC에 대해서도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등 침해를 이유로 고소했다.
삼성전자와 HTC는 맞소송으로 반격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애플은 9개국 12개 법원에서 19건의 특허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지난 22일 구글에 인수된 모토로라를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하는 등 글로벌 IT 기업 중에서 특허 소송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다.
5. 네덜란드 소송 결과의 의미는
네덜란드 법원의 24일 판결은 ‘사실상 삼성측에 유리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네덜란드 법원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 등 스마트폰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애플이 제기한 삼성 갤럭시 시리즈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10건 중 9건에 대해서는 삼성 승소 판결을 내렸다. 네덜란드 법원이 유일하게 배타적 권리로 인정한 애플의 지적재산권은 사진을 손으로 밀어넘기는 ‘포토 플리킹(photo flicking)’ 기술이며, 이를 제외한 나머지 2건의 특허와 디자인권, 복제권 등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삼성은 당장 10월14일부터 네덜란드 지역에서 갤럭시S 등을 판매할 수 없게 됐지만 포토 플리킹 기술이 대체가 쉬운 기능으로 업데이트 등의 방법으로 특허 침해를 우회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특히 10건 가운데 9건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사실상 애플의 디자인권이 무력화된 만큼 향후 삼성이 장점을 보이는 통신기술 표준 특허를 통해 삼성의 반격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삼성은 6월23일 애플이 디자인권 위주로 가처분 소송을 내자 1주일 뒤인 6월30일 애플을 상대로 통신 특허 침해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태이며, 네덜란드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삼성전자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6. 잡스 사임, 어떤 영향 미칠까
스티브 잡스의 CEO직 사임도 중·장기적으로 특허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애플이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을 취하하는 등 급격한 변화를 꾀하지는 않겠지만, 잡스 이후의 애플이 특허 소송에서도 새로운 정책을 들고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애플 내에서도 잡스만큼 특허에 대해 공격적인 인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애플이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 진영의 기업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이고, 전방위적인 특허 소송에 나서고 있는 배경에는 강한 공격적 성향을 가진 잡스의 영향도 컸다.
이에 따라 새로운 CEO인 팀 쿡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가 정립되면 애플의 특허 소송 관련 정책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특허 소송에서 애플의 변화는 중·장기적으로는 나타날 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미 전세계에서 애플과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 진영 기업들과의 소송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7. 다른 업체들과의 관계는
최근 애플의 특허권과 관련된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안드로이드 OS를 개발, 휴대전화 제조회사들에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는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사실이다. 125억달러(약 13조3750억원)라는 엄청난 규모의 인수를 발표하면서 구글은 “애플, MS와의 특허 소송에서 안드로이드 진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모토로라는 무선 통신과 휴대전화 관련 특허만 1만7000개 이상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안드로이드 진영이 애플과 특허 전쟁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제국’을 형성하고 있는 MS도 안드로이드 진영과 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MS는 애플처럼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막지는 않고, 인터넷 등의 분야에서 확보하고 있는 특허를 기반으로 사용료를 챙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8.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전쟁이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특허 소송은 대부분 매우 기술적이고 전문적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비자들로서는 내가 원하는 스마트 기기를 구입해 잘 사용할 수만 있다면 별로 신경쓸 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특허 소송의 결과, 수입이나 판매가 금지될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소비자가 원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제품을 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특허 전쟁의 결과, 특정 업체가 특정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경우에도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무차별적인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는 애플에 대해 “IT 업계의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허 전쟁이 과도해지면 혁신적인 제품의 개발이 그만큼 제약을 받게 돼 소비자 후생 증진에는 악영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9.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전쟁은 한국 경제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실적으로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전형적인 ‘소규모 개방경제’이며,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국 경제는 수출 중에서도 IT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포함한 정보통신 부문은 현재 삼성전자가 수출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반도체 시장의 업황 악화와 디스플레이 패널 등이 어려움을 겪으며 정보통신 부문이 삼성전자의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세를 유지시키는 핵심 사업군으로 부상했다. 향후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특허전에 잇따라 패소해 글로벌 마켓에 대한 수출 길이 막힐 경우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가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10. 향후 전망은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전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특허 소송은 짧아도 1~2년, 길면 몇 년씩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애플과 삼성전자는 상대방에게 즉각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수입 또는 판매 금지 가처분신청도 내고 있다. 판매나 수입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 당장 제품을 팔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만들기 이전에 휴대전화를 만들던 업체가 아니다. 따라서 통신 관련 특허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반면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통신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협상을 통해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두 기업이 특허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소송 자체보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전쟁은 자사 제품의 마케팅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스마트 기기 시장이 어느 정도 원숙기에 들어가면 협상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조해동·민병기기자 haedong@munhwa.com
혁신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남긴 특허 313개
<아이뉴스24>
[로스앤젤레스=이균성 특파원] 5일(현지시간) 사망한 스티브 잡스는 IT로 세상을 편리하게 바꾸고자 했던 '혁신 아이콘'이었다.
그의 혁신 의지는 1984년 첫선을 보인 매킨토시부터 그의 유작이 되고 만 최근의 아이폰4S까지 실제 제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혁신에 대한 그의 집념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는 그의 이름으로 등록된 특허다. 잡스는 빌 게이츠를 비롯한 그 어떤 IT CEO보다 제품의 디테일에 신경을 썼고, 그만큼 많은 양의 특허를 자신의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다.
그가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팀 쿡에게 물려준 이튿날인 지난 8월 25일 뉴욕타임즈, 포춘 인터넷판 등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특허청 DB에 등록된 애플의 특허는 총 1만1천112개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중 개발자 이름에 스티브 잡스가 오른 것이 313개다.
또 애플 전문 매체인 맥루머스에 따르면, 이중 33개의 특허는 여러 개발자 가운데 스티브 잡스가 주도 인물로 등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보도에 따르면 잡스의 특허는 아이폰과 같은 애플의 상징적인 제품 뿐만 아니라 애플 매장에 설치된 유리 계단(glass staircases), 파워 어댑터, 다양한 아이팟 모델을 위한 종이 상자 포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뉴욕타임즈는 이 사실을 맨 처음 보도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제품 개발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신경을 써왔는 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즈는 또 스티브 잡스의 특허는 대부분 소프트웨어 알고리즘과 같은 유틸리티 특허가 아니라 디자인에 관련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잡스가 제품의 외관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해왔는 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신문은 특히 잡스가 보유한 특허 수는 기술 혁신으로 성공한 다른 대부분의 기업의 CEO가 확보한 특허보다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MS)의 특허 가운데 빌 게이츠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9개에 불과하며, 구글의 공동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 특허에 이름을 올린 것도 12개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테크크런치는 이중 '유리 계단' 등 7개의 특허에 대해 스티브 잡스가 누구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특허(Iconic Patents)라고 평가했다.
/로스앤젤레스(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스티브 잡스 사망> 잡스도 실패했다…실패작 7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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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스티브 잡스의 10대 제품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 = 5일(현지시간) 숨진 스티브 잡스는 정규 기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300개의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잡스의 주도로 탄생한 제품 10건을 소개한다. kmtoil@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
(뉴욕 AP=연합뉴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 디자인 작업 때 기존의 통념을 깨고 한계에 도전하는 아이디어를 내놓곤 했다.
한계에 도전한 잡스의 아이디어는 대박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경우도 적지 않다.
잡스의 주도로 탄생한 제품 가운데 상업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실패로 끝난 제품 7건을 소개한다.
1. 애플Ⅲ (1981년 출시) : 큰 인기를 끌었던 애플Ⅱ의 후속작으로 업무용으로 출시됐다. 그러나 하드웨어의 신뢰성이 떨어져 같은 해 등장한 IBM의 PC에 시장의 주도권을 잃고 말았으며 이후 컴퓨터 시장은 급속하게 PC 중심으로 확대됐다.
2. 리사(Lisa·1983년 출시) : 그래픽 사용자 환경에 맞춰 출시된 첫 제품으로 출시 당시 가격이 9천995달러에 달했다. 비싼 가격 탓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1년 후 등장한 저가의 매킨토시에 의해 완전히 밀려났다.
3. 넥스트 컴퓨터(NeXT Computer·1989년 출시) : 잡스가 애플에서 퇴출당하고 나서 만든 벤처회사에서 내놓은 제품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제품이었다. 그러나 애플Ⅲ, 리사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고가여서 시장에 안착하는 데 실패했다.
4. 퍽 마우스(Puck Mouse·1998년 출시) : 96년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후 내놓은 야심작인 아이맥(iMac)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아이맥에 딸린 작고 둥근 모양의 마우스는 크기가 너무 작은데다 커서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사용에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5. 큐브(Cube·2000년 출시) : 깔끔한 플라스틱 육면체를 외관으로 한 소형 데스크톱 컴퓨터인 큐브는 각종 디자인상을 휩쓸었으나 비싼 가격 때문에 매장에서는 외면당했다. 또 기능적인 측면에서 여타 맥 제품과 비교하면 장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애플의 디자인은 우상이 됐지만, 당시에는 오로지 디자인 때문에 높은 가격을 낼 고객들이 별로 없었다. 큐브의 디자인은 이후 맥 미니(Mac Mini)로 명맥이 이어졌지만 튀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으로 다듬어진 후에야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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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애플 설립자 스티브 잡스 연보 (AFP=연합뉴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5일(현지시간) 사망했다. 향년 56세. kmtoil@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
6. 아이튠스 폰(iTunes phone·2005년 출시) : 애플이 휴대전화 사업에 처음 뛰어들 때 내놓은 제품이 아이폰이 아니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애플이 모토로라와 제휴해 2005년 ROKR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이 제품은 전화기로서는 괜찮은 제품이었지만 뮤직 플레이어로서는 아이팟에 밀렸다.
노래를 100곡만 저장할 수 있었고 컴퓨터로 음악을 전송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으며 휴대전화 네트워크를 통해 음악을 내려받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단점으로 꼽혔다.
7. 애플TV(2007년 출시) : 안방에서 TV와 맥 컴퓨터에 연결해 영화와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이 제품은 설치와 사용이 불편한 것이 단점이었다. 아이튠스를 통해 구입한 영화를 고화질TV를 통해 재생하면 흐릿한 영상으로 봐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shpark@yna.co.kr
[최재천의 책갈피]잡스도 신이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예닐곱 살 때 알았다. “그러니까 너네 진짜 부모님은 널 원하지 않았다는 얘기야?” 여자아이가 물었다. “집으로 뛰어들어갔던 기억이 나요. 울면서 말이죠. 그러자 부모님이 말씀하셨어요. ‘아니야, 그게 아니란다.’ 부모님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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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안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 |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그렇게 말씀하셨고, 천천히 반복해서 말해 주셨어요. 단어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가면서 말이죠.” 잡스는 누군가 자신의 부모를 ‘양부모’라고 부르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그들은 1000% 제 부모님입니다.” 반면 생부모에 대해 얘기할 때는 퉁명스러웠다. “그들은 나의 정자와 난자은행이지요. 무정한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래요.” 그는 생부가 자신을 버렸을 때의 나이와 똑같은 나이인 스물 셋이 되었을 때 아이를 낳은 후 버리게 된다. 물론 나중에는 그 딸에 대해 책임을 지지만 말이다.
버림받음, 선택받음, 그리고 특별함. 이러한 개념들은 잡스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무엇을 만들든 완전히 통제하려 드는 그의 집착은 출생 직후 버려졌다는 사실과 그의 성격에서 직접적으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동료의 말이다. “스티브는 버림받은 것과 그것이 자기에게 안겨준 고통에 대해 많이 얘기했어요. 그게 스티브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비유하자면 그는 다른 드러머의 비트를 따라간 셈인데, 자신이 태어난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속해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잡스는 마리화나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의 차에서 마리화나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잡스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거 마리화나예요.” 그는 인생에서 몇 안되는, 아버지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와 심하게 싸운 것은 그때가 유일해요.” 고 3이 되어서부터는 수면부족 상태의 환각을 탐험하는 것은 물론이고 호기심 삼아 LSD에까지 손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잡스는 고등학교 2~3학년 동안 지적으로도 꽃을 피웠다. 전자공학에 광적으로 빠져 있는 부류와, 문학과 창작에 몰두해 있는 부류의 교차점에 선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항상 저 자신이 인문학적 성향을 지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자공학도 무척 맘에 들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영웅 중 한 명인 폴라로이드 사의 에드윈 랜드가 한 말을 읽었어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에 관한 얘기였는데, 그걸 읽자마자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지요.”
17년 전 잡스의 양부모는 아들을 반드시 대학교에 보내겠다고 친어머니와 서약했다. 그들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저축했다. 점점 아집이 늘고 있던 잡스는 처음엔 아예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다음엔 오로지 한 가지 선택만을 고집했다. 미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대학교 중 하나인 리드대학교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1972년 가을 잡스의 입학식이 다가오자 부모는 그를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반항심이 작동한 잡스는 부모가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작별인사도 하지 않았고 감사의 마음도 일절 비치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게 기억하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너무 무심한 태도로 부모님께 상처를 준 것이지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를 그곳에 보내기 위해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신 분들인데, 따라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으니… 사실 제게 부모가 있다는 것을 누가 아는 게 싫었던 겁니다. 고아처럼 보이고 싶었던 거예요.” 잡스가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몇 가지 장면만을 옮겼다.
독후감은 이렇다. 인간은 나약하다. 상처 입은 꽃이다. 인간은 복합적이다. 한 가지 생각이나 모습만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관계적이다. 주변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위대한 창조자가 될 수도 있다. 잡스도 신이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잡스와 같은 위인과 한때나마 동시대를 호흡할 수 있었음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올리자.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에 대한 정성은 지극했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
<앵커>
네, 월요일에 스티브 잡스 전기 나온 소식을 전해주셨잖아요. 관련 소식 또 전해 주신다고요?
<기자>
월요일에 스티브잡스 전기 나왔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제가 오늘 책을 직접 갖고 나왔습니다.
<앵커>
아 이 책인가요?
<기자>
네, 생각보다 두껍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책을 읽으면서 역시 스티브잡스가 대단한 사람이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성격이 너무 거침없고, 강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는데요. 애플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CEO가 되기 위해선 이런 성격이 꼭 필요한 걸까요? CNBC가 이 스티브잡스의 전기를 쓴 저자, 월터 아이잭슨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스티브 잡스 일생을 꿰뚫고 있는 그는 과연 스티브 잡스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CNBC 영상으로 직접 들어보시죠.
[CNBC 주요내용]
<앵커>
그동안 수많은 위인들의 전기를 저술하셨는데, 스티브 잡스는 그 중 어떤 위인으로 분류되나요?
<윌터 아이작슨 /"Steve Jobs" 저자>
그는 특히 혁신적이고 창의적이었습니다. 그의 강점은, 예를 들어, 한편의 시를 프로세서로 전환시키고 뛰어난 영감과 아이디어, 창의력을 엔지니어링과 결부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초창기 인터뷰에서 잡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12살때 부터 자신이 인류와 기술의 접점에 서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요. 이러한 창의력과 상상력이 커리어의 원동력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제가 궁금했던 것은 스티브 잡스는 좋은 사람인가요? 회사를 위한 좋은 경영자가 되고 이런 업적을 이루는 사람이 꼭 '성격이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지 않나요?
<윌터 아이작슨 /"Steve Jobs" 저자>
애플 초창기에 스티브 잡스는 정말 최악의 매니저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그랬죠. 그 후 애플로 다시 돌아온 잡스는 팀 동료들에게 매우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모나게 구는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잡스는, 겉으로 좀 더 부드럽게 대하는 방식이 있긴 하겠지만 이게 내 방식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팀에 참여하기 위해 치루는 댓가라고요. 결국 이러한 그의 방식은 결과가 보여주는데, 15년전, 그리고 이번에 그가 결성한 팀의 팀원들은 잡스에게 엄청난 충성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새같이 움직이는 다른 회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변방의 사색]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
[프레시안 이계삼 밀성고등학교 교사]
컴퓨터의 사용이 새로운 생각이라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더욱 새로운 생각이다. (웬델 베리)
먼저, 스티브 잡스의 명복을 빈다. 그는 비범한 한 생애를 살다간 인물임에 분명하다. 무엇보다 나는 그가 췌장암을 발견했을 때 수술을 거부하고 혼자 힘으로 병을 다스리려 했던 그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많은 이들은 이를 두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주의적 맹신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제 몸을 열어 칼을 대고 거기에 기계적 화학적 처방으로 몸을 다스리려는 시도를 싫어했던 인간적 자존감, 예측 가능한 처방을 거절하고 스스로 불확실한 시도에 목숨을 내맡김으로써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서 이어간 그의 노력들은 그가 일구어낸 기술적 혁신만큼이나 존중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이들은 그를 천재라고 떠받들지만, 실은 그를 하나의 '뛰어난 기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수술을 받고서 더 오래도록 살아남아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도록 운명 지워진 그런 '창의적인 기계' 말이다. 이들은 스티브 잡스가 '천재'이기 이전에 병과 대화하며 서서히 죽어갈 권리를 가진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나는 잡스에게 바쳐지는 헌사들에 이의가 있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공식 전기에서 스스로 고백하듯, 그의 작업은 "먼저 이루어진 성과들 위에서 몇 가지를 덧붙여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산업 기술 문명의 최첨단의 자리에서 그 옷들을 갈아 입혀 온 디자이너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먼저 이루어진 성과들과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는 일들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스티브 잡스는 손가락으로 열고 닫는, 조그만 유리창 속의 세상을 가상이 아니라 실재로 여기게 만드는, 일종의 '환영(幻)影)'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그 환영 속에서 열린 세상은 과연 어떤 곳인가. 만인이 만인을 네트워크로 긴박해 놓은 원형 감옥이 아닌가.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도구로 인하여 더 깊이 긴박될 테크놀로지에 대한 종속과 노동력의 착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가끔 중세의 교부(敎父)들이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내놓은 물건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해본다. 엄지와 검지로 이미지를 그러모았다가 펼쳐 놓는, 미켈란젤로의 그림 <천지창조>를 떠올리게 하는 이 행위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은 이를 두고 인간이 신을 흉내 내는 것으로, 인간으로서는 해선 안 될 '교만(hubris)'의 행위로 해석하지 않을까.
요컨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잡스가 추구한 첨단의 기술은 인간은 먹는 존재라는 사실, 그 먹을거리가 끊어지면 한순간도 생존할 수 없다는 존재 조건을 한 치도 수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첨단의 기술 문명이란 실은 이렇게 허망한 것이 아니겠는가.
스티브 잡스의 정반대 편에 웬델 베리라는 미국의 농부가 있다. 팔순이 다 된 고령이지만, 여전히 농사와 문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잡스가 실리콘밸리의 총아로 전 세계의 각광을 받으며 수십 년간 내달려오는 동안, 베리는 1960년대 이후로부터 고향 켄터키 주로 되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43세이던 1977년에는 대학 교수직까지 사임하고서 전통적 방식으로 지금껏 농사를 지어왔다. 그리고 근대 산업 기술 문명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에세이와 땅과 고향의 삶을 그린 문학 작품들을 발표해온 저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녹색평론>의 독자라면 <녹색평론 선집>에 실린 '나는 왜 컴퓨터를 안 살 것인가'의 글쓴이로 웬델 베리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의 글이 담고 있는 명확하고도 근본적인 통찰에 반했고 <녹색평론>에 드문드문 발표되는 그의 에세이들을 지금껏 감탄하며 읽어왔다.
그리고 이번에 웬델 베리의 농업에 관한 에세이와 문학 작품을 발췌해서 모아 놓은 <온 삶을 먹다>(이한중 옮김, 낮은산 펴냄)를 골똘히 읽으며 나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책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좌우를 막론하고 온 사회에 울려 퍼지는 창의와 혁신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되물어야 할 시점에서, 후쿠시마 사고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4대강 사업 완공과 1퍼센트의 독점에 대한 전 세계의 항의가 울려 퍼지는 이 시점에서, 뭔가 끄트머리를 향해서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향해서 움직여가는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되어야 할 진실을 담은, '경'(經)의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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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삶을 먹다>(웬델 베리 지음, 이한중 옮김, 낮은산 펴냄). ⓒ낮은산 |
이 세상이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문제가 있으되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고 있는 이들과 웬델 베리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뭔가 근본적인 데서부터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는 이들, 이 세상에 넘쳐나는 야만과 비참, 불의와 불공평에 분노하는 이들, 이들이 베리를 골똘하게 읽는다면, 그들에게 이 책은 복음이 될 것이다.
나 또한 어떤 시점까지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가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웬델 베리는 생각이 다르다. 그는 인간이 농토에서 공장으로, 고향에서 타향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내몰리던, 그러면서도 그것을 '해방'이라고 불리기를 강요당했던 어떤 순간에서부터 우리의 삶이 근원적으로 뒤틀렸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예화가 있다. 웬델 베리가 열일곱 살이던 1950년 어느 날, 트랙터 위에서 느린 걸음으로 밭을 가는 두 마리의 노새를 보며 '왜 저리 느려 터졌을까'며 골을 내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할아버지의 사후 4년, 그의 손자가 노새가 '느리다'며 갑자기 골을 냈다는 사실은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즉 트랙터는 남고 노새는 가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 나는 기계와 생명의 경쟁을 목격하고 있었고, 그 승자는 기계일 수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아침 밭에 도착한 노새들이 농사의 역사에서, 그리고 그 농장 자체에서 왔다는 사실은 알아보지 못했다. 반면, 트랙터는 거의 정반대의 역사에서, 그리고 농장의 범위를 넘어서는 머나먼 과정을 거쳐 밭에 왔다는 사실은 알아보지 못했다.
노새는 결국 트랙터에 패배했다. 그리하여 기계와 기업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농민은 '땅의 청지기'이자 '신의 신비를 분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업의 농식품 유통 시스템의 가장 말단에 자리 잡은 노동자가 되었다. 기계와 기업이 요구하는 규모와 획일화를 따르지 못하는 소농은 몰락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도시로 가서 노동자가 되거나 실업자로 도시 빈민으로 떠돌게 되었다. 이제 농업은 기계와 유독한 화학 물질이 지배하게 되었고, 이웃과 어머니 대지와 고향의 의미도 사라졌다.
인구의 4퍼센트에 불과한 농민이 전체 인구를 먹이는 것이 가능해진 이 시스템은 겉으로는 꽤 효율적으로 보인다. 고되고, 성가신 농업 노동을 거세시켜버린 이 공장 시스템은 그래서 대단한 진보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웬델 베리는 이 공장이 겉보기엔 꽤 질서가 잡혀있는 것 같지만, "급속도로 확대되어가는 이 세계의 무질서를 대표"하며, 사실상 재앙이라 말한다.
베리는 농사가 아니라 "채굴"이라고 표현한다.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땅의 영양분이 먹을거리와 함께 도시로 나가고, 하수와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결국 바다에 버려진다. 농토로 되돌려지는 것은 없다. 당연히 땅은 고갈된다. 이를 유예시키기 위해 화학비료로 지력을 붙들어두지만, 결국 사막화만 재촉할 뿐이다.
이제 우리의 먹을거리는, 삶은, '돈'과 '석유'와 '기계'와 '규모'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간이 견뎌내야 하는 전례 없는 외로움이다. 햄버거 한 조각, 뜨내기 드난살이처럼 홀로 식당 구석에서 우걱우걱 씹어 넣는 밥 한 그릇, 어디서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온갖 착색료와 향을 뒤집어 쓴, 유전자를 조작했는지 뭣으로 코팅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자연의 모습은 하나도 담지 않는, 공산품에 다름없는 오늘날 우리의 먹을거리들.
먹을거리와 심신의 건강은 너무나 긴밀하다. 교사인 내가 보기에 확실히 오늘날 아이들의 정서는 안정되어 있지 않다. 거칠고 과한 행동들, 예민하게 폭발하는 정서들, 결핍된 주의력은 아이들의 생활환경뿐 아니라 상당 부분 아이들의 먹을거리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포로 수용소, 혹은 지옥의 이미지를 차용한 공장식 사육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학대를 체험한 동물들도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들이 죽어가면서 인간을 얼마나 저주했겠는가. 그리고 이를 먹은 아이들의 영혼과 신체가 어떻게 건강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것은 웬델 베리가 지적하듯, 사실상 '실업' 상태,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이다. 그 날을 위해서, 이를테면 은퇴를 위해서, 방학과 휴가를 위해서 우리는 회사를 다니고 학교를 다니며, 적금을 붓고, 주식을 한다. 그 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날을 위해서 말이다.
오늘날 우리의 집은 점점 모텔을 닮아 자연으로부터 격절되고, 오직 육신을 편리하게 쾌적하게 담아두는 보육기(保肉器)로 진화해간다. 인간과 집이 맺고 있던 영적 관계는 거의 사라졌다. 주방과 먹을 공간은 점점 주유소를 닮아 이미 조리된 음식물의 포장을 뜯어 몸에다 주입하는 공간으로 변해간다. 인생의 즐거움이란 별게 아니고, 무어든 먹는 일이든, 쉬는 일이든, 서둘러 경쟁적으로 해치워야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마을은 사라졌고, 이웃은 사라졌다. 도시의 거리를 가는 이들에게 뒤에서 누군가가 '어이~'라고 부르면 열의 일고여덟은 성난 얼굴로 되돌아보는, 적의와 긴장에 찬 나날들이다. 웬델 베리는 농업이 사라진 사회가 겪어야 할 생태적 재앙을 말하기 이전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다. 그것은, 나치의 수용소를 체험한 이탈리아의 화학자 프리모 레비를 흉내 내자면, '이것이 인생인가?'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낭비
우리는 지금 석유를 먹고 있다.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의 전 과정에, 우리의 물질적 삶의 과정 전체에 석유가 관여한다. 그리고 석유로 만들어진 값싼 먹을거리가 실은 굉장히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는 것도, 미래 세대의 몫을 강탈한 것이라는 사실은 이제는 널리 유포된 생태학적 상식이 되었다. 이것은 웬델 베리를 비롯한 일군의 지식인들이 이미 1970년대부터 지적해 온 사실이기도 하다.
석유 농업은 모든 것이 낭비다. 기계화로 인한 대규모 영농은 1년에 한 가지 작물만 재배하는 단작으로 귀결된다. 그로 인하여 가을과 초봄의 햇빛은 식물에 붙들어두지 못한 채 버려지게 되었다. 인간의 육체노동으로 발산되어야 할 에너지는 도시인의 뱃살에 실업자의 육체에 가둬지게 되었다. 가만히 두면 알아서 풀을 뜯어 먹고 살 수 있을 동물을 감금하고 그래서 그들이 가진 천부의 노동력을 낭비하고 있다. 그들을 후딱 살찌우기 위해 풀 대신 곡물을 먹이고, 대신 다른 인간들이 굶는다. 감금과 집중, 분리로써 성립한 지옥 같은 동물공장이 있다. 당장 금지해야 할 야만의 극치이지만, 전 세계적 관행이 되어버렸다.
결국 우리에게 재앙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이 어이없는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던가. 모든 것을 기계의 영역으로 환원시켰기 때문이다. 동물을 영양분만 투입하면 필요한 단백질과 지방을 생산해내는 기계로, 농토를 작물을 생산해내는 공장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지금 이미 우리가 충분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실로 오늘날 산업의 논리는 단순 무식하다. 재미난 일화가 있다. 웬델 베리가 일생토록 되풀이하여 읽었던 영국의 선구적인 농학자인 앨버트 하워드 경이 남긴 일화다. 하워드 경 부부가 인도에서 연구하던 시절, 쪽마름병이 퍼졌다. 15년 동안 엄청난 돈을 들여 곤충학, 균류학, 세균학 전공자들이 모여 연구를 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하워드 경이 그 원인을 찾았다. 장마로 물이 차서 뿌리가 썩어서 양분 부족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들 전공자가 하워드 경처럼 농민들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농토에서 벌어진 일을 몇몇 분야로 쪼개어서 파고들지 않고 농사짓는 사람의 시선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바라보았더라면 대단히 쉬웠을 이 일에 그토록 긴 시간과 엄청난 낭비가 자행된 것이다. 참으로 지성적인 것은 흙과 농토, 산물과 인간까지 포괄하는 시선, 말하자면 농민의 시선이다.
탐욕의 바깥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세상을 받아들였던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이끌려 들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육체노동, 시골살이,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려는 선망 또한 강하게 작용했다. 강제와 자발성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편입된 오늘날 산업 경제가 바깥에 있는 모든 기준과 윤리적 이상과 결별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내부에 있는 욕망들, 탐욕, 정욕, 식탐, 시기심, 어느 종교든 죄악으로 지목하는 이 덕목들이 오늘날 경제를 이끌어가는 가장 근본적인 힘으로 작동한다. 이것이 부추기는 생산과 시장의 확장이 진화를 거듭하여 환율, 유가, 주식 시장 지수 같은, 웬델 베리가 '종이 경제(paper economy)'라고 표현한, 그 가짜들이 실체를 함부로 농락하고 세상을 망가뜨려왔고 지금 세상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면서도 몇 년마다 한 번씩 선거는 하고, 자신들이 뽑은 바대로 정치 지도자가 바뀌어가니 자신들은 꽤 괜찮은 민주 사회에 살고 있다고 착각들을 하며 산다. 모든 것이 이 종이 경제에 의해 식민화되어버려 제 힘으로는 옴짝달싹 못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욕구란 그런 것이어서 그 안에 스스로를 제어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결국 어머니의 회초리가 아이를 일깨우듯 외부에서 부과된 윤리와 도덕, 혹은 인간적 상식의 힘이 오늘날 경제를 새롭게 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웬델 베리의 답은 간단하다. 우리들 각자가 '산업 경제, 석유 경제, 종이 경제'라고 부르는 이 사기 도박장을 떠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체성과 민주주의
그러므로 웬델 베리의 제안은 먹을거리를 스스로 거두어 먹자는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오늘날 일반적인 통념이란 경제 성장을 통하여 중산층이 두터워질 때 민주주의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리는 단호하다. 소농이 민주주의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중산층이란 우리가 지금 지켜보고 있듯이 세계 경제의 추이에 따라 끊임없이 등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 서서히 옅어지고 몰락하도록 구조화된 운명에 놓여 있다. 그러면서 부와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된다. 땅과 자본이 소수에 집중되면 민주주의는 다만 정부의 형태에 불과하다는 베리의 진단은 정확하다.
지금 20대 80을 넘어 1대 99의 사회가 되어버린 오늘의 세계가 이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웬델 베리가 존경해마지 않는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부유한 상공업자를 대표한 알렉시스 해밀턴이 연방은행을 창설하려할 때, 은행은 군대보다 더 위험하다면서 격렬하게 반대했다. 제퍼슨에게 민주주의의 참된 기반은 자립적 소농이었고, 그래서 그는 미국을 분권형 국가로 소농이 중심이 된 농업 국가가 되길 바랐지만, 좌절당했다.
토머스 제퍼슨이 옳았다. 해밀턴의 주장대로 경제 성장과 부국강병으로 온 세계의 참혹한 독재와 전쟁의 주역으로 내달려온 미국이 바로 지금 겪고 있는 모습을 보라.
이행의 가교
이런 이야기,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많은 이들의 답은 '그래서, 어쩌라고?'이다. 그러고는 '나는 농사 지을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겪은 바도, 배운 바도 없기 때문이다. 농업적 삶은 이미 이 세대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결국 소농 사회로의 전환을 강제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되었다.
조만간 도시 거주민이 세계의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만 놓고 봐도, 앞으로 최대 10년만 흐른다면 이제 농사를 짓는 인구는 사라지고 만다. 석유가, 소수의 농기업이 농사를 대신 지어줄 수 있을 기반도, 그 먹을거리를 수입해서 먹을 수 있을 여지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석유가 한계에 다다랐고, 표토 고갈 문제도 심각하다. 세계 경제의 추이가 또한 그렇다. 기후 변화 문제도 심각하다.
이제는 농업에 대한 지식도 농경적 삶에 대한 기억도 없는 세대가 버려진 땅에서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살림을 되살리는 문제, 농업에 대한 만인의 책임 의식을 일깨워야 할 필요는 대단히 긴급하다. 정치 운동도 언론의 노력도 책임 있는 지식인의 노력도 교육자들의 노력도 모두 절실하다. 진보 정당은 농업적 의제를 중심에 걸어야 한다. 아이들이 농사를 배우고 농민의 삶을 당연으로 받아들이는 학교가 곳곳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이 노력을 향한 기초적인 차원의 사실 관계를 점검해보려는 노력도 정말 놀라우리만치 찾아보기 어렵다.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에 대한 한없는 숭모의 반대편에 정작 없어서는 단 한시도 지탱할 수 없는 것들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일에 종사하는 농민에 대한 모멸만 하늘을 찌른다. 이제는 다들 늙었고, 숫자로도 얼마 되지 않는 그들이기에 그렇게 함부로들 말하는 것이겠지만, 도가 너무 지나치다. 한미 FTA를 앞두고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농민들을 두고 "다방에서 노닥거리면서 보조금이나 챙긴다"며 힐난하였고, 국회 외교통상위원장 남경필은 미국 대사 앞에서 "이제는 국회가 농민에게 저항할 용기를 내야 한다"고 용감하게 말한다.
예외적인 소수만이 성공하는 그 정도만큼 그 시스템은 실패한다는 베리의 금언을 새겨보자. 이제 99퍼센트가 실패하는 체제가 되었다. 말기적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의 뼈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거품을 걷어내고 화려한 옷을 벗었을 때 드러나는 구조, 그것은 우리 삶의 큰 졸가리이다. 먹고 사는 일, 먹을거리를 짓는 일에 주의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답은 농업과 농민에게 있다.
대안
웬델 베리가 상정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있다면 미국에 여전히 번성하고 있는 아미쉬 공동체이다. 개신교 재침례파의 일원으로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정착한 이들의 후손인 이들은 여전히 공동체와 전통적 방식의 농사를 지키고 있다.
몇 년 전 그곳 학교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한 외부인 남성이 끔찍한 총기 사고를 일으키고 자살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고로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이 그 남성의 부모를 찾아가 위로했다는 감동적인 일화를 전해주기도 했던 그 공동체이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원칙을 함께 읽어보자.
1.가족과 공동체를 지킨다.
2. 이웃과 함께 농사짓는다.
3. 요리와 농사, 가사와 주택에 관한 기술을 이어간다.
4. 기술 이용을 제한하여, 이용 가능한 인력이나 태양광, 풍력, 수력 같은 무료 에너지원을 배제하지 않는다.
5. 농장을 작은 규모로 제한하여, 이웃과 의좋게 농사를 짓고 저출력 기술을 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6. 앞서 말한 방식들로,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한다.
7. 자녀가 가족을 떠나지 않고 공동체를 지키며 살도록 교육한다.
8. 농사짓기를 실용적 기술이자 영적 수단으로 존중한다.
그는 말한다. 이런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그랬을 때 우리는 경영자, 주주 전문가, 정치가들에게 착취당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나에게 성서를 가르쳐준 목사님은 윤동주의 시를 말씀하시며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라는 구절을 감동적으로 가르쳐주셨다. 우리들 인생의 의미 또한 실은 그러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 시대의 의미를 덧붙여보면 어떨까. 우리의 시대 또한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하는 시대라고 말이다.
이 책 3부에는 웬델 베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먹을거리와 관련한 몇몇 대목들이 발췌되어 실려 있다. 그의 소설 <그 먼 땅>에 나오는 앤트니 가족의 식탁 묘사를 보자.
프라우드풋 집안의 가족 모임은 유명했다. 그 즈음이면 충분히 오래 저장한 햄과 닭튀김과 그레이비, 두레종류의 생선, 뜨거운 비스킷 빵과 세 종류의 옥수수 빵, 감자와 콩과 구운 옥수수와 당근과 사탕무와 양파, 옥수수 푸딩과 익혀서 저민 토마토, 식초에 막 절인 싱싱한 오이, 서너 종류의 피클이 있고, 늦여름일 경우 멜론과 수박도 있으며, 각종 케이크와 파이, 과일 푸딩도 있고 우유와 커피도 넉넉했던 것이다. 그 시절, 냇가에 있는 너른 옥수수밭을 가진 프라우트풋 부부의 집은 위스키 맛이 일품이기로 유명했던 것이다.
백석의 시가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먹는다는 것은 먹을거리의 윤리학, 미학, 정치학을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이 풍성한 전근대의 식탁들.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 이 연작 소설은 <엄숙한 소년>이라는 단편으로 이어진다. 이 프라우드풋 집안의 아들 톨은 노년임에도 아직 자식이 없다. 톨은 1934년 대공황기의 추운 겨울, 굶주린 부자를 마차에 태워주는데, 그들이 딱해서 식사라도 대접하고자 집으로 데려온다. 톨의 부인 미스미니는 이들을 환대한다.
"아이구, 어서 들어와요! 점심 함께 먹을 동무들이 생겼나보네! 얘, 어서 들어와서 몸 좀 데우렴!"
그리고 농가의 전통대로 성찬을 대접한다. 그러나 그들 부자는 전혀 웃지 않는다. 아직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 있다. 이 엄숙하고 잘생긴, 그러나 곤궁한 한 소년은 조금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다. 프라우드풋 집안의 아들 톨은 농민의 낙천성과 환대의 마음을 간직한 훈훈한 농민이다. 그는 소년을 억지로 웃겨보려고 버터밀크를 앞섶으로 쏟는 퍼포먼스를 한다. 그제야 얼어붙은 소년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소년은 목을 스토브 연통만큼이나 넓게 틔우려는 듯 크게 마음껏 웃기 시작했다. 누구한테 지독히도 간지럽힘을 당하는 소년의 웃음소리였다. 그 소리가 모든 걸 바꿔 버렸다. 미스 미니는 방긋 웃었다. 그러자 톨은 크고 호탕하게 웃었다. 미스 미니도 깔깔 웃었다. 다들 웃고 있었고, 미스 미니는 앞치마 자락으로 눈물을 훔쳐야 했다.
단숨에 이들은 친구가 된다. 농민들의 너그러움, 환대의 문화가 대공황기의 빈궁 속을 헤매는 두 부자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준다. 우리가 잃어버린, 언젠가 우리도 간직하고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한 모습이다.
마무리
웬델 베리는 이렇게 말한다. "장소를 안다는 것,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삶, 인간과 동물에 자애롭고 훈훈한 기억과 유머, 흙에 뿌리박힌 삶과 그 장소를 알고 겪는 다는 것은 굉장한 인간적 힘이자 역량이 된다"고.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삶으로부터 멀어져버렸는지.
대안은 자발적인 것이다. 스스로 걸어 들어갔으니, 나오는 것도 자발적이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수없이 생각했다. 나는 농민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웬델 베리의 책을 덮으며 나는 가느다란 한숨을 쉰다. 가능할 것이다, 가능할 것이다, 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암시를 준다.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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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이계삼 밀성고등학교 교사 (
tyio@pressian.com)
ㆍ작가 글래드웰 “혁신 아닌 개량·편집의 천재”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은 발명이 아닌 편집에 있다.”
미국의 기자이자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은 잡스의 진정한 천재성은 디자인이나 비전이 아닌, 개량을 통해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편집(editing)’에 있다고 지적했다. 글래드웰은 오는 14일 발간되는 잡지 뉴요커에서 이같이 논평했다.
그는 “잡스는 토머스 에디슨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고 사무엘 크롬프턴의 방적기를 성공적으로 개량한 영국의 기계기술자 리처드 로버츠와 견줄 만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달 5일 잡스가 사망한 뒤 나오고 있는 칭송 가운데 ‘거대한 통찰력을 가진 인물’ ‘발명가’라는 언급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그러나 실제 잡스는 이와 달랐다는 게 글래드웰의 주장이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잡스의 전기를 보면 잡스는 오히려 기존 제품을 적절하게 개량해 적용하는 ‘트위커(tweaker)’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애플의 대표적인 제품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트위커는 기계, 특히 컴퓨터를 미세하게 개량해내는 사람을 뜻한다.
마우스와 아이콘을 이용해 조작하는 매킨토시 컴퓨터의 경우, 주요 부분의 특징을 제록스 PARC 연구소의 기술자들로부터 차용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휴대용 디지털음악기기는 1996년 출시됐지만 애플은 아이팟을 2001년 내놓았다. 글래드웰은 “잡스는 시장에 나와 있는 음악기기들에 주목한 뒤 ‘정말 돈벌이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역시 1990년대에 나오기 시작했지만 애플은 아이폰을 2007년에 소개했다. 아이패드의 아이디어는 잡스 가족의 친구와 결혼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자로부터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라고 글래드웰은 주장했다.
글래드웰은 애플 내에서도 잡스가 남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지적했다. 아이팟 등을 디자인한 조너선 아이브는 “잡스가 내 아이디어를 보고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해놓고서 나중에 청중 앞에서는 그 아이디어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설명했다”고 말했다.
아이폰과 아이팟, 아이패드가 남의 아이디어를 응용해 나온 것이지만 정작 잡스는 다른 사람이 애플의 제품을 손보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 제품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글래드웰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잡스를 빗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트위커는 자신의 제품이 다른 형태로 적용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글래드웰은 그러나 잡스가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것은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완벽함을 추구한 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데이비드 갤런터 예일대 교수(컴퓨터사이언스학)는 애플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각종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면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7일 전했다. 소송 배심원들은 지난해 10월 애플에 갤런터 교수가 소유하고 있던 회사인 ‘미러 월드’에 6억2500만달러(약 7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재판장인 레너드 데이비스 판사가 애플이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이례적으로 평결 내용을 뒤집은 뒤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DT 시론] 스티브 잡스를 넘어서자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애플이 아이폰을 들고 나왔을 때 마치 삼성이 금방이라도 거꾸러질 듯 언론들이 법석을 떨었다. 게다가 한국에는 스티브 잡스 같은 걸출한 사람이 없음을 식자들은 통탄해 마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누르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척박한 소프트웨어 산업 환경을 탓하고 있을 때 소리 없이 애플을 따라잡은 것이다. 그런 인물이 없어도 이 정도 했다면 그게 더 무서운 거다.
한국은 걸출한 영웅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다. 대신 누구든 만만한 경쟁상대로 본다. 내기 골프가 좋은 예다. 이제 막 7번 아이언을 잡은 하수도 언감생심 상대와 비슷해 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마침내 해낸다. 그러니 잘난 사람 인정하기 어렵다. 쉽게 말하면 그래서 다 제가 가장 잘난 줄 알고 산다. 다 `하면 된다'고 믿는 그들의 믿음이 무섭다. 지난 50년의 경제적 기적은 이런 정신으로 달성했다. 한국인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튀는 것은 경계한다. 대신 귀에 딱지 생길 만큼 엄친아와 비교되며 자란 세대들은 은연중 그 정도는 되려 한다. 지고는 못사는 독특한 문화적 배경 때문에 스티브 잡스 같이 튀는 인물이 없어 보일 뿐이다.
1992년 필자가 미국에 잠시 머물 때였다. 삼성전자 임원들이 수시로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려 미국을 방문했다. 그때 그들은 10년 내에 삼성전자가 세계시장에서 5위 안에 들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말을 했다. 그들의 목표는 어찌 보면 허황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다. 당시만 해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즐비하던 때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 1위를 노리며 선전하는 것을 보면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없다. 그 사이 삼성전자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였던 소니를 제쳤다. 이동통신의 강자로 군림하던 노키아도 제쳤다. 이제는 적어도 향후 20년간 1위를 지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뭔가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선두주자 베끼기가 어느 정도 통했다. 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한다는 `시나공'도 통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선두주자 수준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베낄 대상이 있었고 베끼기 능력도 탁월했다. 베끼기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잘 교육된 양질의 인적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지금도 기업들은 한국의 대학들이 마치 불량품만 양산한다며 매도하지만 그들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전적으로 그 알량한 교육제도 덕이다.
앞으로도 성장동력은 여전히 인력에서 나온다. 공을 독식하기 보다 책임 나눠지기를 선호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굳이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을 고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있어서 나쁠 것도 없지만. 아무튼 1등 자리를 지키자면 이제는 시험에 안 나오는 문제도 풀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은 대부분 교과서에 아예 없다. 그러니 시험에 낼 수도 없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 하면 풀어야 할 난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현장의 요구 일부는 산학협력으로 풀어야 하므로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 나머지 문제 일부는 협력업체에게 맡겨야 하므로 동반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탁월한 안목을 지닌 디자이너였다. 그래서 모두 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애플에서는 그런 인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거기서 고뇌하며 외롭게 살다 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굳이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없어도 한국적 상황에서는 성장이 가능함을 봤다. 그것은 튀지 않는 다수의 우수한 인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일반화하기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그를 넘을 수 있음을 알았고 그래서 넘지 못할 산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우리가 어느새 부쩍 커버렸다는 것도 알게 됐다. 덩달아 대학들도 훌쩍 컸다. 협력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후진성에 함몰되어 우리만 그것을 인정하는데 인색할 뿐이다.
이제 선두를 달리는 연습을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게다. 가보지 않은 길을 처음 가는 데 쉽겠는가? 약간 돌아가거나 잠깐 넘어질 수도 있을 게다. 그래서 혹시 추월을 허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저력으로 다시 선두를 탈환할 수 있을 게다. 필자도 시험에 나오지 않는 문제들을 풀며 대단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들과 같이 선두를 달리는 기분으로.
[ET단상]잡스는 잊고 우리만의 잡스를 찾아라
김경진 한국EMC 대표 kevin.kim@emc.com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은 애플 마니아뿐 아니라 세계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아쉬움을 주었다. 평범치 않았던 출생과 성장. 치열하게 일하고 성공했지만 또한 여러 번의 실패도 경험한 오뚝이. 불과 물을 동시에 겸하고 있는 것 같은 성격. 아름다움과 간결함을 사업화시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천재. 잡스의 명복을 빈다.
필자에게 잡스는 아직도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여러 아름답고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었고, 또한 그만큼 실패하기도 했으며, 사업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불같은 성격에 완벽주의자이며, 훌륭한 프레젠터라는 사실 외에는. 창의성, 디자인 능력, 끈기, 완벽주의 성격, 통합력 등 사실 잡스의 수많은 천재성 중에서 무엇이 그를 성공시켰는지 누가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잡스 스토리의 완결판인 애플의 현재 성공은 아마도 그의 천재성과 할로(halo) 효과, 치밀한 마케팅과 유통망 장악, 가격정책, 글로벌 소싱, 그리고 행운의 우연한 작용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창의성과 융합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설파한다. 배워서 성공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잡스의 능력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할 뿐, 어떻게 배워야 하는 지 콕 집어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법석은 수년 전 빌 게이츠 열풍을 생각나게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한참 잘 나갈 때는 많은 이들이 우리 아이들을 빌 게이츠처럼 창의적 인재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소프트웨어 천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빌 게이츠를 갖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제 그는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최고 자리에 서 있지 않은 존재다.
자의적인 판단이나 통념으로, 누가 성공했으니 그대로 따라 하자는 것이야말로 창의성을 말살하는 주범이다. 빌 게이츠를 칭송하고 따라 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그와 같은 천재 소프트웨어 사업가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가 생겨났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잡스의 성공 공식을 따라서 외우면 과연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보다 더 창의적이었고, 더 끈기 있었으며, 더 디자인을 잘 했고, 더 똑똑했고,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성공하거나 유명해지지는 못했다.
진정한 창의성은 결국 남과 다른 것을 먼저 인지하고 행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잡스처럼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기계로 찍어낸 잡스식 창의력은 결국 또 하나의 복제품일 뿐이다. 세상에 마술은 없다. 잡스나 게이츠의 마법이면 성공한다는, 단세포적인 답을 강요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발전과 성공에 가장 큰 적이다. 우리사회의 장점이자 단점인 집단주의 경향, 이성적 평가보다 심정적 지지를 중시하는 문화,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선호하는 성향 등을 파고들며 맞지도 않는 성공의 공식을 세계적 천재들의 명성에 기대어 파는 것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 성공은 창의력과 시스템,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과 인내, 땀의 결실이고 또한 거기에는 운도 작용한다. 우리가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이 교만으로 넘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천재 몇 사람의 성공사례만 들먹이며 우리를 비하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우리가 정말 찾아야 할 것, 더 연구해야 할 것, 더 칭송하고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이미 가진 ‘한국판 스티브 잡스’들이다. 세계 3대 주류로 부상하는 한국 자동차 산업과 철강산업, 세계를 제패한 반도체, 가전제품, 조선 및 플랜트 산업, 세계에서 가장 편리하게 발달한 국내 서비스 산업과 백화점 및 양판점의 서비스, 세계 1위의 국제공항, 떠오르는 글로벌 문화인 K-POP 등, 이 모든 것들은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창의성, 진지함, 노력, 불굴의 의지를 가진 우리 형제자매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잡스를 찾으러 나설 차례다.
"아이폰이 명품인양 착각마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유저들은 아이폰 사용자를 보며 "아이폰을 명품 프리미엄으로 생각하는 듯하다"는 뉘앙스의 조사결과가 나와 화제다.
미국의 IT전문매체인 PC월드는 구글플러스(+)를 통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로 구동되는 스마트폰(안드로이드폰) 이용자들을 상대로 `사람들이 왜 아이폰을 구입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물은 데 대해 이런 대답이 많았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PC월드는 안드로이드폰 이용자 가운데 유독 아이폰 이용자들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의견들이 눈길을 끌어 아이폰 이용자들에 대한 이들의 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이 질문을 올려놓았으며, 게시 8시간 만에 500개의 답변이 코멘트로 올라왔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아이폰은 우둔한 이용자들을 위한 스마트폰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아이폰은 사용하기 쉬워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에 이 같은 답변이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아이폰 이용자들은 능숙한 마케팅에 현혹된 사람들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의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 그가 말하면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며,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만든다는 뜻으로, IT업계에 널리 알려진 말이다)`에 의해 세뇌된 희생양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또 스티브 잡스에 대한 경외심으로 아이폰을 바라보고 있으며, 잡스의 사망 이후 이 효과가 훨씬 커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와 함께 안드로이드폰 이용자들은 스마트폰을 원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 것(customization)을 큰 장점으로 생각하지만 아이폰 이용자들은 스마트폰을 다른 형태로 변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결국 아이폰 이용자들은 안드로이드폰 이용자들처럼 `기술`을 좋아하지 않으며, 아이폰을 `개인 가전(consumer appliance)`정도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PC월드는 안드로이드폰 이용자들이 이렇게 지적했다고 해서 아이폰 이용자들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라면서 이는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전재홍기자 jhjeon@wowtv.co.kr
[유레카] 히피 자본가 잡스 / 구본권
[한겨레]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동갑의 라이벌 빌 게이츠를 혹평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유전자에는 인간애와 인문학이 없다”며 “빌이 젊었을 때 마리화나나 히피문화에 빠졌더라면 좀더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최근 발간된 <스티브 잡스>에 실려 있다. 잡스는 젊은 시절 경험한 환각제(LSD)에 대해서도 “엘에스디는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의 하나”라며 자신을 깨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잡스는 히피였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애플 광고대로 살았다.
1960~70년대 반전, 평화, 자유, 사랑을 추구한 히피 중엔 회사를 세운 이들도 있다. ‘평화, 사랑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내건 아이스크림 회사 벤앤제리의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 “당신의 몸을 사랑하라”는 자연주의 화장품 회사 보디숍의 애니타 로딕, “처녀 같은 미지의 영역을 찾아 발전시키는 게 꿈”이라는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등이 ‘히피 자본가’로 불린다. 벤앤제리는 친환경 재료를 고집하고, 이익의 상당 부분을 기금으로 조성해 인종차별, 성차별, 빈곤 등 사회문제 해결에 투입했다. 미국 국방예산 1%를 평화유지 활동에 쓰자는 제안도 했다. 보디숍은 동물실험 반대, 환경보호 운동 등 기업활동을 사회운동과 연계시켰다. 파격 마케팅으로 즐거움과 윤리경영을 추구하는 브랜슨은 내년엔 스스로 우주여행에 나서며, 이를 새로운 사업분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록밴드 유투(U2)의 보노는 “21세기를 창조한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처럼 마리화나를 즐기고 긴 머리에 샌들을 신고 다니던 히피들이었다. 그들은 다르게 생각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제2의 잡스’는 길러지기보다 자유를 토양으로 자라날 것이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