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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과 ‘노리개’의 공통점, '자발적 노예화'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1. 19. 12:47

‘직장의 신’과 ‘노리개’의 공통점, '자발적 노예화'

미디어오늘 | 입력2013.04.28 16:06

기사 내용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발적 노예화를 구축하는 갑과 을의 관계

[미디어오늘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 노리개 > 는 연예계 성상납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어, 일찍부터 화제를 모았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단체 등도 모두 허구이기는 하지만 맥락은 짚을 수 있다.

흔히 성상납과 같은 통념을 벗어나는 행위들이 발생하는 이유를 지적할 때, 대개 개인들의 비도덕적인 요인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성 상납을 받는 이들은 변태적인 캐릭터로 묘사되고, 그 중간에 제공해주는 기획사 대표 등은 파렴치한으로 설정된다. 그리고 이에 수단으로 이용되는 여성은 희생자가 된다.

사실 이러한 구도는 단지 연예기획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일반에 해당되는 메커니즘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자발적 노예화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영화 < 노리개 > 의 한 장면

드라마 < 직장의 신 > 은 비정규직들의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는데, 미스 김(김혜수)이라는 달관자, 깨달은 자(?)를 등장시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말과 행동은 시청자들을 통쾌하게 만들기도 했다. 미스 김은 신입 비정규직 정주리(정유미)에게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길 기대하며, 혹사당하지 말라고 한다.

심지어 업무 이외의 회식 자리도 과감하게 거절하고 업무 이외의 기획안도 제공하지 말 것을 조언한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비정규직의 재산은 몸이기 때문에 자기 몸을 챙기는데 더 낫다고 한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일할 것이며 업무 시간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수당 청구를 요청한다.

비정규직의 삶을 더 비참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러한 기대감 때문에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들과 단결도 이루지 못한다. 즉 경쟁상대일 뿐이다. 미스 김은 더 나아가서 오로지 자기 일에만 충실할 뿐만 아니라 계약 사안이나 업무지침 안에서만 일을 처리한다. 오로지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미스 김에게는 조직에 기대하는 것이 없다.





KBS 드라마 < 직장의 신 >

영화 < 노리개 > 와 같은 영화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일반 시민과 연계되는 점이 없어 보이는 것은 그들이 연예인이나 그 지망생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타가 되기 위해 그 영역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일반인들과 다르게 보이는 지점이다. 하지만 인권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문제임이 분명하다. 누구가의 기대와 소망을 저버리고 그들을 이용하는 맥락에서 그렇다. 다만 그 기대치가 단순히 정규직 전환 정도가 아니라 부와 명예를 한 번에 달성할 수 있다는 대박 추구의 허황한 꿈과 연결되는 점이 다르다.

공통점은 불확실성 속에서 누군가에게 잘 보여 특정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자발적인 노예를 만들어버리는 점이다. 그러나 자발적 노예화 구조에서는 실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는 일이나 업무강도는 같거나 크지만 (비정규직의) 대우는 낮고, 그 능력이 뛰어나도 미스 김처럼 비정규직에 남는다. 연예인들도 오히려 실력이 있기 보다는 다른 요인으로 캐스팅이 우선된다. 그것은 제도의 지배를 누군가가 불투명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도 있다. 포털에 기사를 무료공급하면서 언젠가 유료로 전환시켜주기를 바란다. 대형마트는 값을 제대로 주지도 않고 물건을 공급받는다. 전임교수를 바라며 논문을 대필해주는 박사들도 있고, 고위공직자나 관공서에 줄을 대기 위해 브로커들의 요구를 다 수용하기도 한다. 정치권의 힘을 빌리기 위해 자금은 물론 고급자동차와 주거공간을 대주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에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예적 행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갑과 을의 관계는 자발적 노예화를 구축한다.

영화 < 노리개 > 의 주인공은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그가 남긴 다이어리는 문제 해결을 위한 결정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 직장의 신 > 에서 미스 김은 혼자 단독으로 돌파해 나가고 결국 성공하는 듯이 보인다. 결국 미스 김이 업무의 신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미스 김은 더 이용만 당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이는 결국 혼자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준다. 단순히 직장 동료들 특히 정규직과의 다툼이라는 틀에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랑과 화해를 통해 해결되지도 않는다.

변태가학의 신문협회 회장을 징벌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성상납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나 제도적 노력들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들의 고통과 그것의 법적 좌절을 다룬다. 약자라는 프레임이 성립되기 어려운 대중 정서 속에서 이는 이중고가 된다.

사실 영화 < 도가니 > 와 같은 대중정서에 호소하기 보다는 집단적 연대와 투쟁이 현실에선 더 중요하다. 드라마 < 빛과 그림자 > 와 같이 권력과 법, 제도에 기획사 대표와 매니지먼트관련 단체가 연대해야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직장의 신 > 처럼 비정규직을 악용하는 자본의 실체는 덮고 오로지 개인들의 화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실효성도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연대하여 사측에 투쟁하는 것이 훨씬 나을 듯하다.

만약 비정규직 사원이 내 여동생, 내 애인이라면 자발적 노예화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감상주의'는 자본권력과 제도에 항거하는 모습을 그려야 의미가 있다. 드라마와 영상은 문화 콘텐츠로 이상적인 지향점을 그려내어 변화에 대한 대중열망을 그려내면 족하다. 무엇보다 개인의 욕망의 포기가 근본적인 해답일 수도 없다. 자발적 노예화를 방지하기 위해 막연한 기대감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개인에게만 모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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