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극 전성시대´ 퓨전사극 무엇을 볼건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7:38

<김헌식 칼럼>´사극 전성시대´ 퓨전사극 무엇을 볼건가

 2010.03.13 13:56

 




[김헌식 문화평론가]2009년 드라마 < 선덕여왕 > 의 흐름을 이어 최근 다양한 사극들이 제작 방영되고 있다. < 명가 > 의 뒤를 이어 < 거상 김만덕 > 이 방영을 시작했고, < 추노 > 가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 제중원 > 은 색다른 의료사극을 보여주는가 하면 숙빈 최씨를 최초로 전면에 내세운 이병훈 피디의 드라마 < 동이 > 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 사극은 모두 조선(구한말 포함)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어떤 함의점을 얻어야 하는지 그 점을 짚어보자면 그간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의 차이점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한동안 사극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주말 사극 방영시간대에는 1주일 가운데 유일하게 남성들이 리모콘을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녀를 불문하고 사극에 열광하고 있다. 또한 사극은 중년 이상이 즐겨보던 장르였다. 하지만 중년이라는 세대적 틀을 벗어나 10대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가 즐겨보게 되었다. 

당연히 시청층이 늘어나면서 사극은 문화콘텐츠로 가치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 선덕여왕 > 의 경우 7개월간 광고비로만 433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사극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의 폭발은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21세기, 사극이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사극이 인기를 끌게 되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 각광을 받고 있는 사극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단순히 우연히 사극이라는 장르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작자들의 각고의 노력과 특화 전략이 숨어 있다. 이른바 '정통사극'과 '퓨전 사극'의 차이점으로 분석할 수 있다. 

정통사극은 대개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다. 하지만 퓨전 사극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데 치중한다. 이른바 팩션 드라마의 등장이었다. 팩션 드라마는 사실을 의미하는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쳐진 말이다. 약간의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장르를 일컫는다. 상상력의 확장은 흥미 있는 소재와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된다. 정통 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기 때문에 소재와 내용에서 흥미를 자극할 만한 요소가 팩션 장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사실에 충실할 때 의미가 큰 것이 정통사극인데 이미 많이 알려진 역사를 가지고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드라마의 극적 요소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대신 팩션은 정통사극보다는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기록이 많지 않은 소재나 인물, 사건을 상상력을 통해 능동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호응을 크게 이끌어냈다. 

사극에 다양한 볼거리 등을 부여한 것도 새롭게 각광 받게 된 이유이다. 기존 사극과는 달리 대형작비가 투여된다. < 태왕사신기 > 의 제작비는 밝혀진 것만 450억 원이었다. < 선덕여왕 > 의 제작비는 200억 원이었다. 이러한 제작비는 대형 세트장의 건립과 야외촬영, 대규모 전쟁과 군중 신에 사용된다. 

정통 사극의 경우에는,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을 하거나 야외 촬영이라 해도 한국 민속촌의 공간적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극들의 공간은 엇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사극하면 이러한 공간적 제한성 때문에라도 조선시대를 주 배경으로 했다. 이에 심한 경우에는 

사극하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사극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도 했다. 많은 제작비는 화려한 복색과 실내 디자인에도 사용되었고, 영상미학의 진화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볼거리만이 아니라 들을 거리에도 변화가 있었다. 들을 거리의 변화는 음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제가와 배경 음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80년대 < 조선왕조 오백년 > 과 같은 드라마에서는 주제가를 생각할 수 없다. 배경 음악도 둔중하거나 유장한 궁중 음악 계열의 'ost'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퓨전 사극에는 주제가가 빠짐없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 허준 > 에서는 조수미가 부른 '불인별곡'이 크게 각광을 받았다 이른바 퓨전 국악이었다. < 대장금 > 에 등장했던 민요풍의 주제가 '오나라' 같은 경우는, 전국민의 애창곡이 되어 국내외 각종 공연장에서 연주되었다. 일종의 국악의 재발견이자, 대중화에 기여한 점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사극에는 발라드, 락, 재즈, 랩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변주되었다. 

서사 구조나 캐릭터의 변화도 있었다. 기존 사극에는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구조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극에는 허구적인 인물이 크게 부각되는가하면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 선덕여왕 > 의 미실을 들 수 있다. 또한 정통사극에서는 복잡한 인물구도 때문에 몰입의 분산효과를 가지고 왔다면, 퓨전사극은 압축된 인물구도와 캐릭터로 몰입을 증가시킨다. 무협사극의 차용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드라마 시청의 중심축인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노력이 바로 멜로 코드의 적극적 수용이다. 멜로코드는 단순한 사랑이야기와는 달리 사랑하는 연인이 불가항력적인 상황 때문에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얼개다. 남성들이 주로 액션 무협에 주목을 한다면 여성들은 이러한 멜로코드와 함께 감수성 어린 분위기에 몰입하게 된다. 

여기에 정통사극에서는 대개 암투의 주인공으로나 등장하던 여성 캐릭터들을 적극 내세운 것도 주효했다. < 대장금 > 이나 < 선덕여왕 > 이 대표적이며, < 서동요 > 나 < 주몽 > 에서도 여성 주인공들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자명고 > 나 < 천추태후 > 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이 전면에 등장해서 정치와 사랑을 모두 주도해나갔다. 

우리는 사극을 통해 어떤 위로를 받는 걸까? 최근 사극들의 특징은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집단화에서 개인화된 인물로 진화해 나간 점이다. 여기에서 개인화된 인물은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거나 나아가 이기주적인 인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아의식이 충만하거나 실존적인 고민을 더 충실하게 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은 현대인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점을 드러낸다. 

< 이산-정조 > 의 경우, 왕은 거대 국정담론을 고민하기도 하지만 사랑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 황진이 > 에서 황진이는 섹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종합예술인으로 성공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바람의 화원 > 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추상적인 이념이나 구호보다는 자신의 자아실현에 더 충실하다. < 추노 > 에서는 쫓고 좇기는 구도를 통해 현대인들의 불안한 지위의식을 투영해 내고 있다. < 주몽 > 과 < 선덕여왕 > 은 성공스토리를 통해 약자의 꿈을 드러낸다. 때로는 미실과 같이 현실 속에서 현대인의 도덕적 고민을 투영하기도 한다. 

요컨대, 인기를 끌고 있는 사극들의 대체적인 경향은 그것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시켜낸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 고대로 이동했던 배경이 다시 조선시대로 이동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동안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상상의 환타지 속에서 도피적인 대안을 모색했다면, 이제는 현실 속에서 대안을 모색하려는 대중심리로 읽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극열풍이 우리 문화에 미친 영향은 또 무엇일까?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사극은 한국문화의 종합예술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문화사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해야 풍부한 볼거리로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극의 문화사'의 측면에서 사극 열풍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은 문화사의 자료가 풍부가 조선시대일수록 유리하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 의존하는 사극이 아니라 문화사에 치중할수록 더 풍부해지는 것이 조선시대 사극이다. 문화사 측면에서 접근하기에 한계가 많은 것이 고대 배경의 사극이다. 한편으로는 이는 다양한 문화적 조명을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재발견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한류에서 사극이 기여할 것으로 여겨지는 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