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해를 품은 달’에서 조선시대 가상 왕 ‘훤’ 역을 맡은 김수현은 매력적인 표정과 흡인력 강한 연기로 뭇 여성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
1년3개월 전 SBS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 뭇 여성의 심장을 옥죄었듯, MBC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24)이 지금 대한민국 여심을 통째로 사로잡고 있다.
‘김수현 신드롬’은 곤룡포나 면류관 등 옥체(玉體)를 감싸 안은 구식(舊式)의 의상에도 불구하고 그 본연의 매력적인 표정과 연기로 듣고 보는 전 세대의 가슴을 쾅쾅 짓누르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현빈의 ‘주원앓이’처럼 ‘훤앓이’란 평가를 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는 김수현. 그의 폭발적인 인기는 현빈이 인기를 얻은 요인과 과정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무엇보다 현빈과 김수현은 캐릭터가 소화할 수 있는 연기의 극점을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공유점을 지녔다.
아무리 뇌까리고 까칠해도 그것마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미학이 이들 연기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이다. 김수현 연기의 ‘어떤 점’이 현빈의 그것과 비슷한지 따라가 봤다.
◆ 가진 자의 ‘까칠한 횡포(?)’ = 현빈은 ‘시크릿 가든’에서 재벌 2세로 나온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류 사회 중에서도 톱클래스에 드는 인물이다. 오피니언 리더인 만큼 도덕과 교양, 절제의 미덕이 요구되지만 현빈은 극에서 ‘삐딱함의 선수’로 그려진다.
아버지뻘 외가 친척(상무)에게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하면서 무안 주기 일쑤고, 회사의 룰을 깨며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사랑하는 여인(하지원)에겐 얄미운 말투와 비호감적 행동으로 사랑을 전달하고,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묵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반면 김수현은 정치계의 1인자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지녀야 할 ‘덕’보단 ‘까칠함’을 통해 세상의 불합리와 싸우려 한다.
그는 때론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원자 아기씨를 위해 후궁을 두라는 중전의 말에 “심정에 없는 말로 연민을 끌어내려는 그 가식이 싫소”라며 대놓고 뇌까린다. 그렇다고 막무가내식 독설로 자신의 이미지를 궁지에 몰아넣지도 않는다.
늙은 신하들을 상대로 냉철하고 합리적인 논리를 휘두르면서도 본의를 숨기는 예쁜 미소로 마주 앉은 이를 되레 긴장시킨다. 사랑하는 연인 연우에게 “나는 이 나라 조선의…” 하며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도 현빈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도남’의 ‘일탈’과 ‘온정’ = 두 사람은 모두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현빈은 화재 사고로, 김수현은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으로 생긴 트라우마를 통해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이들이 보여 주는 소통의 제1원칙은 ‘일탈’. 경제계와 정치계 1인자는 자신의 상처를 무마하는 ‘반기의 언어’들을 앞세우며 기존 체제가 요구하는 방식을 늘 배반한다.
추리닝을 입은 채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채널쯤에 나올 법한 헐벗고 가난한 이들의 세계에 동참하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거나(현빈), 죽은 연인과 비슷한 이를 위해 한 나라의 예법을 무시하며 과감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탈’을 서슴지 않는(김수현) 일들은 ‘차도남(차가운 도시의 남자)’이 흔히 지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식들이다.
그리고 그 극복 과정에는 온기와 열정이라는 본질의 무기가 투영돼 미묘한 매력을 발산한다는 것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가진 자’의 차가움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안에 ‘온기’라는 속성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며 “두 캐릭터가 ‘냉정과 열정’이라는 두 테마를 적절히 소화하기 때문에 매력이 배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적극적이고 몰두하는 ‘연기 태도’ = 현빈이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하고, 김수현이 “한 나라의 임금이 어디 이 정도 생기기가 쉬운 일이냐?” 할 때 뭇 여성들이 쓰러지는 건 ‘같은 말’도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을 그들이 뼛속 깊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말보다 피식거리는 웃음 하나가, 때론 가슴을 북받치게 하는 눈물 한 바닥이 가장 극적인 감동을 연출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들은 보여 줬다.
‘해를 품은 달’로 처음 사극에 도전한 김수현은 ‘드림 하이’로 뜬 반짝 스타가 아닌 ‘연기자’로 평가받기 위해 자신의 캐릭터를 깊이 연구했다고 한다.
따로 트레이닝도 받지 않고 본인 스스로 예전의 사극들을 죄다 훑으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찾으려고 집중에 집중을 거듭했다는 게 소속사의 전언이다.
현빈은 실제로도 적극적이고 자기표현이 확실한 연기자였는데, 김수현 역시 활발하고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뭇 여성의 뇌와 심장을 단박에 제어하는 김수현의 연기에서 ‘제2의 현빈’을 보는 건 ‘워너비’가 아닌 ‘현실’이 된 듯하다.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