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와 비교문화

[흐름과 소통] ‘위기의 한류’ 실상과 대책은-곽진희 방송위원회 국제교류부장(왼쪽)과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한류의 위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9. 15. 01:11

[흐름과 소통] ‘위기의 한류’ 실상과 대책은


곽진희 방송위원회 국제교류부장(왼쪽)과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한류의 위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박재찬 기자>
곽진희 방송위원회 국제교류부장(왼쪽)과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한류의 위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박재찬 기자>

‘한류의 미래는 있는가?’ 산업적 측면에서 한류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일본에선 일부 스타에 의존하는 콘텐츠에 식상한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중국에선 한국의 일방적 수출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류가 시민들의 자발적 문화 교류가 아닌, 일부 기획사의 돈벌이를 위한 브랜드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한국예술학)는 최근 저서 ‘아시아 문화연구를 상상하기’를 통해 한류에 내재한 ‘문화민족주의’와 ‘문화자본의 논리’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반면 방송위원회 곽진희 국제교류부장은 한류의 산업적 가능성이 여전하며, 아시아 국가간 상호 이해의 문을 넓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곽진희 부장(이하 곽진희)=한류가 위축되고 있다고 해석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확인 결과 방송 수출액은 작년 대비 20% 증가했습니다. 그동안 방송 수출액의 60% 이상을 차지하던 일본에서 방송 편성이 줄어들어 한류가 위축된 것처럼 보이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도 한류 열풍 때문에 반한류 정서가 생긴 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드라마 중심의 콘텐츠를 다큐멘터리 등 다른 장르로 확대하고, 수출 국가도 일본 중심에서 다른 나라로 확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동연 교수(이하 이동연)=한류의 최정점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현상으로서의 한류라는 부분을 본다면 최정점에 왔으며, 이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주 특별하고 기이한 신드롬으로서의 한류는 ‘겨울연가’ ‘대장금’으로 정점에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잉된 한류 현상이 가라앉고 거품이 빠지면 현실 속의 한류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해외 쇼케이스의 엄청난 관객이나 일본 공항을 마비시키는 ‘배용준 효과’가 10∼20년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최근 비보이 신드롬이나 뮤지컬 등 공연예술 분야의 성과는 한국의 문화적 역량이 아시아에서 좋은 방향으로 갈 여지와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이런 잠재력을 10년 이상 지속시킬 수 있는 환경, 제도가 정착돼 있느냐는 점은 의문입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민주화되고 경제가 성장함으로써 문화 소비가 증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기회를 살리기 위해선 한국내 시장 인프라와 제도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곽진희=한류를 할리우드에 대한 저항 헤게모니로 보거나 자본의 논리로 보는 이분법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문화는 국가간의 충돌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됩니다. 한류도 ‘진출 확대’보다는 ‘교류’로 봐야 합니다. 현재 반한류 정서는 방송사들의 지나친 경쟁과 상업적 계약 관행이 신뢰 훼손을 초래한 데 이유가 있습니다. 또 문화적으로 민족주의를 추구하니까 중국, 일본에서도 반발하고 있습니다. 저항과 반발이 있음에도 콘텐츠가 우수하면 시장을 뚫을 수 있지만, 이미 중국에선 ‘사극은 안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한류를 끌어가기 위해 상호주의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중국, 일본에 진출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도 한국에 들어오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KBS는 ‘아시아의 창’이란 프로그램을 마련해 아시아의 우수한 콘텐츠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이동연=상호주의 원칙에 동의하지만 현실이 그런가 하는 점을 짚어봐야 합니다. 드라마 배급 시스템만 봐도 1990년대 중반에 비해 지금은 편당 판권 액수가 엄청나게 뛰었습니다. 방송사들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아시아 시장을 생각해 막대한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공영방송 KBS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의 논리가 개입됩니다. 음악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이 붕괴하면서 정상적인 음악활동으로 수익을 낼 수 없는 단계가 됐습니다. 가수 비가 아시아 콘서트를 하면서 번 돈이 2백억원이라고 합니다. 한류가 자본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렇게 한류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문화 교류는 뒷전입니다. 게다가 문화 자본의 논리가 개입하지만 철저하지 못해 수익을 일본에 빼앗깁니다. 제가 2004년 일본에 갔을 때 현지 여성 월간지에서 ‘배용준 같이 멋있는 한국남자와 결혼하는 법’ ‘배용준 가정교사와 전격 인터뷰’ 같은 가십성 기사를 봤고, 이걸로 7만부 팔았다고 하더군요. 결국 한류 부대효과는 일본이 누리고 있습니다.

곽진희=경제논리가 작동하는 건 당연합니다. 다만 경제논리로만 접근한다면 한류가 최정점에서 끝날 수 있으므로 문화적 접근도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동연=문화 교류라는 부분도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지만 여기에 숨은 논리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에선 중국어권 국가를 커뮤니티로 결속하는 거대한 작업이 학술적, 경제적 영역에서 일관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선 90년대 초반부터 미국식 자본주의를 일부 받아들여 내세운 것이 ‘위대한 중국(그레이트 차이나)’입니다. 이를 ‘문화중국(컬추럴 차이나)’이라고 포장하고 있죠. 일본도 ‘소프트 내셔널리즘’, 즉 ‘연성 국가주의’를 내세워 일본 대중문화를 아시아에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의 참여정부도 한류를 문화중국, 연성 국가주의에 대항시키고 있는 듯 보입니다. 여기서 문화민족주의로서의 한류가 나쁜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깁니다. 한류가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완충할 수 있다면 굉장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소통한다면 한류가 민족주의를 뒤섞을 수 있습니다.

곽진희=한류는 국가 지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자발적 확산이 상업적인 논리로 치달아 이제 한류 스스로를 훼손시킬 정도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가가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나친 경제적 목적 때문에 국가 신인도까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월6일 방송위원회와 중국의 광전총국(방송, 영화 주무당국)은 상호 협력을 강화하자는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들의 불만은 한국이 중국의 콘텐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화가 확산되고 성장하기 위해선 상호 교류 차원에서 정책이 필요합니다. 사업자들이 개별적으로 타 문화권에 진출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상호 이해와 교류 차원에서 한류를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결국 작품성이 중요하므로 국가가 우수한 인력 양성과 환경 정비에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이동연=국가가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잘못된 방식으로 가고 있다는 거죠. 2004년 나온 ‘문화산업 5대 강국 실현을 위한 전략보고서’ 이후 국가가 한류를 브랜드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한류를 통해 IT, 자동차 수출 등에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것인데, 여기서 한류와 한국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류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가 아시아 전역에서 소통의 장으로 일상화되고 자연스럽게 수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동연=상호주의 원칙과 다르게 대중은 한 쪽으로 쏠립니다. 시장의 논리, 대중의 수용 방식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죠. 그러나 기울어진 추를 균형있게 하려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전통예술원 졸업연주회에 러시아, 중국, 브라질 학생들을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 낯선 음악을 듣고 ‘한류의 역동성이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고 얘기하더군요. 국악, 전통 예술 등을 해외의 사회지도층에게만 알릴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파고드는 공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곽진희=KBS는 ‘아시아의 창’과 해외 진출을 통해 적극적으로 교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성장한 우리 콘텐츠를 반한류 정서가 태동하는 지역에 방치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국적 콘텐츠를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휴머니즘으로 가공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동연=한국은 촬영기법, 제작기술 등에 있어서는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 얘기하자면 보아, 비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아무로 나미에, 어셔,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미국과 일본의 스타일, 멜로디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류 콘텐츠가 독자적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심하게 얘기하면 식민지적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적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미국, 일본보다 자생적인 우리 이야기를 가미해야 합니다.

곽진희=중국의 중화주의, 일본의 내셔널리즘 속에서 한류 열풍이 일어났다는 것은 한류 콘텐츠가 독자적인 특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한류는 ‘대장금’ 같은 전통적인 소재, ‘겨울연가’ 같은 휴머니즘적 요소가 어필된 것입니다. 지금의 한류는 아시아 블록을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상호교류를 위해서는 일방적인 수출이 아니라 공동제작 형태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합니다. 한류 콘텐츠는 오후 10시 프라임타임에 방송될 수 없지만 공동제작물은 가능합니다.

이동연=중국에서 프로게이머 임요환은 우상입니다. 상하이에서 시범게임을 했는데 10만명이 모였다더군요. 2004년 국가정보원이 한류에 대해 전방위적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한류의 자발적인 힘을 국가가 자기의 목적, 정치적 이해관계에 이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일본 고이즈미 전 총리의 정상회담 때 보아가 함께 간 것이 한 예입니다. 요즘 정치인들은 외국 나갈 때 연예인을 대동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이건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는 겁니다. 다른 한쪽에는 대중적 민족주의가 있습니다. 한류 스타가 도착한 나리타 공항에 일본인 3,000여명이 모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만 해도 자랑스럽거든요. 연예 프로그램들에서 이런 현상을 과장해 얘기하면서 ‘한국문화 자랑스럽다’고 자긍심을 높이지만, 반대로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부분은 위험합니다.

곽진희=저희들은 각 기획사가 해외 마켓을 위해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부분을 도와주려 합니다. 매년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MIPTV/Millia 등 국제영상견본시에 한국관을 만들어 한류 콘텐츠를 알리는 일도 합니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문화교류 차원에서 상대방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리|백승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