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해모수는 21세기형 아버지상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6:15

해모수는 21세기형 아버지상



대중문화속 아버지의 모습은 딱 잘라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그리 모범적이지 않음은 분명하다. 드라마 ‘궁’과 ‘슬픔이여 안녕’에서 강남길은 무능한 아버지를 연기했다. ‘불량주부’의 손창민은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해 전업주부로 들어앉는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아버지는 ‘별난 여자 별난 남자’의 이영하처럼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해 비굴한 삶을 살거나 안석환처럼 대기업 임원이면서도 아내 가계부의 3천원짜리 영수증까지 챙기는 속좁은 인간으로 그려진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송강호와 ‘올드보이’의 최민식의 좀 모자란듯 한 소시민 이미지도 우리 시대 아버지상(像)으로 소비되고 있다. 어수룩하게 시대에 짖밟히고 채인 이런 아버지들의 이미지는 뭔가를 만들어주고, 이끌어주는 모범적인 아버지가 아니다. 자신의 몸도 추스르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아버지는 어느 정도 시대상이 반영된 이미지다.

그런데 MBC 월화극 ‘주몽’의 초반돌풍을 이끌었던 해모수(허준호)는 이와는 다른 아버지다. 다물군을 이끌고 고조선의 재건을 꿈꾸는 해모수는 두 눈을 잃었지만 출중한 무예실력과 용감한 정신으로 ‘허셀 크로’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하지만 권위적이거나 가부장적인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보다 가족(부족)을 먼저 보호하고 배려하는 아버지다. 이는 착하면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경제력을 갖추면 정신상태가 문제가 있던 아버지상을 극복한 캐릭터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해모수는 용맹하고 외향적이면서도 수평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아버지다”고 평했다.

해모수-주몽 부자가 바람직한 스승과 제자 관계로 설정된 점은 주목할만하다. 얼뜨고 유약한 주몽은 해모수로부터 각종 무예를 배우며 몸과 마음을 단련시킨다. 주몽에게 연속 활쏘기를 가르치는 해모수의 지극히 인자한 강의방식은 요즘 학교 현실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해모수는 이상적인 ‘멘토’로서의 아버지상을 구현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아버지를 역할 모델로 설정한다. 그 아버지는 모방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이다. 할리우드나 중국 영화만 해도 스승이나 아버지에게 무술을 배운다든가 하는 과정이 자주 나오지만 우리 대중문화에서는 이러한 역할모델로서 아버지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불행한 근현대사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아나 편모 슬하의 주인공들이 유난히 많다.

한국 대중문화에서 드물게 보는 아버지상인 해모수는 고조선 재건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극 초반 대소의 칼에 장렬한 죽음을 맞고 퇴장한다. 모범적ㆍ표준적 아버지의 이미지가 아직 우리에게는 판타지로만 존재한다는 의미일까?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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