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아닌 상호교류 절실
어느 나라서 만들었나 보다
누구를 위해 만들었나가 중요
3국 협업체계…亞 넘어 세계로
1990년대말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韓流)가 최근 몇년사이에 주춤하고 있다. 심지어 한류의 불씨가 꺼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한류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의견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한류가 성장지체기, 또는 성장변혁기에 놓여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류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분분한 것은 패러다임이 급속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류의 원조로 꼽히는 드라마 ‘겨울연가’를 거쳐 ‘대장금’의 히트 이후 최근까지 한류는 1단계 성장을 그런대로 잘 이뤄왔다. 이제는 2단계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다.
한류 2.0의 새로운 설정은 ‘메이드 포’ 시대로 궁극적인 의미에서 부가가치가 누구에게 많이 돌아가느냐가 핵심이다. 소녀시대, 이병헌, 빅뱅, 카라(위부터) 등 스타마케팅과 더불어 새 콘텐츠 창출도 중요하다. |
일본과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규제 강화 등을 포함하는 혐(嫌)한류와 항(抗)한류, 역(逆)한류 등 한류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을 2단계에서는 극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승호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는 “혐한류와 항한류는 특정문화의 쏠림 현상이 빚어낸 반작용이다”면서 “한류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으로 흘러가야 마찰 없이 지속될 수 있다”고 문화의 상호교류를 강조한 바 있다.
■2단계 한류-한중일 강점 결합 비지니스 시장구조
그래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라이벌의 관계를 구축하기보다는 서로의 강점들을 결합해 윈윈하는 비지니스 시장구조를 만들어 대중문화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특히 일본의 마케팅 능력, 자본력과 중국의 인적 자원, 한국의 제작 기술력이 합쳐진 콘텐츠는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경쟁력을 지닐 것이고 혐한류도 줄일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 점은 헤럴드경제가 최근 재창간 기념으로 마련한 ‘글로벌 소프트파워 한류’ 좌담회에 참가했던 인사들도 절감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이날 참가한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는 “우리가 기획한 공연의 마케팅은 철저하게 현지사에 맡긴다”면서 “가령 배급을 잘하는 업체가 있으면 상대국이라 하더라도 협업하는 것이 파이를 키우는 방법이다. 우리가 문화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 콘텐츠는 우리 것이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제작사인 삼화네트웍스도 최근 일본의 유명 작가와 한국의 스타PD가 합세해 제작한 한일합작드라마인 7편의 ‘텔레시네마’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박인택 삼화네트웍스 부사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드라마의 미래전략, 글로벌 킬러콘텐츠 기획과 마케팅’ 발제를 통해 “성장 지체기에 접어든 한류 드라마의 새로운 전략으로 한일 양국의 영화와 드라마,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텔레시네마를 활용할만하다”고 주장했다.
박 부사장은 “텔레시네마는 방송권과 영화판권 등으로 초기 단계에서 이미 제작비의 80% 정도를 회수했기 때문에 흑자 달성이 용이했다”면서 “한일간에 제작 풍토가 달라 애로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화와 합의로 풀어나갔으며, 큰 소재를 즐겨 다루는 한국작가와는 달리 작은 것에서 깊이있는 주제를 파헤치는 일본작가들의 이야기는 콘텐츠 다양성 측면에서 이점을 안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류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에서의 진화도 이뤄내야 할 과제다. 한국에서 만들어야 한국상품이 된다는 논리를 극복하면서 쌍방향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한류콘텐츠 만드는 방식의 진화
김휴종 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장은 “한류 1단계는 어느나라에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메이드 인(made in)’ 시대였다면, 그 다음에는 ‘메이드 바이(made by)’ 시대다. 어디에서가 아니라 어떤 나라의 사람들, 어떤 기업이 만들었냐가 중요한 것이다”면서 “지금은 ‘메이드 포(made for)’ 시대다. 궁국적으로 부가가치가 누구에게 많이 돌아가느냐가 핵심인 시대다”라고 설명했다.
가령, 우리나라의 기획자가 중국에 가서 중국 배우라든지, 가수를 써 상품을 만들어 그 부가가치를 한국에 가장 많이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국상품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따진다면 에이벡스사가 관리하는 보아를 일본인들이 일본 상품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런 전략은 우리 것을 지니치게 강조하기보다는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문화를 가지고 아시아를 결집시킨다는 제스처와 물려 적지 않은 효용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HOT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많은 한류가수를 배출한 SM엔터테인먼트도 이 점을 인지해왔다. 이른바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 CT)의 3단계론이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는 “HOT를 중국에 보낸 게 CT 1단계, 중국과 일본 시장을 겨냥해 만든 ‘동방신기’가 CT 2단계였다. 3단계는 우리의 컬쳐 테크놀로지(CT)를 활용해 중국 현지인으로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 같은 그룹을 뽑아서 큰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중국인으로 구성된 동방신기가 중국에서 뜨면 한국이 매니지먼트하는 그룹이라 해서 배타시할 가능성은 적어진다는 것이다.
한중일 3국이 효율적인 협업에 의해 탄생한 한류 콘텐츠는 아시아류(流)를 너머 글로벌류(流)가 될 수 있다. 이런 전략으로 한국이 아시아 문화산업의 허브(Hub)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고정민 한국창조산업연구소장은 “한류콘텐츠의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정서가 유사한 아시아 시장을 1차적으로 선점해야한다”면서 “이를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 보다 인간, 인문학적 상상력 키워야
하지만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경쟁력 있는 콘텐츠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난타’ 제작자인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는 “우리나라의 콘텐츠가 아시아에서 가장 재미있기 때문에 한류가 인기가 있는 것이다”고 못박았다.
한국은 모처럼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모험성과 추진력을 갖춘 콘텐츠 제작자들이 나오고 있다. 위험한 실험을 하지않고 성공 콘텐츠를 수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지상파에서 황금시간대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아이리스’ 제작자인 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사장은 “검증된 능력을 갖춘 콘텐츠 제작사에는 우선 지원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인문학적인 상상력과 감성을 키울 수 인적자원을 키워내야 한다. 기술과 마케팅 전략이 한류를 발전시키기는 하지만 한류에 매력을 불어넣는 건 결국 인간이다. 문화는 단기간에 성숙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한류의 디테일이고 한류 2단계의 핵심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 기자/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