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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매너있는 액션 영웅에 열광하는 심리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4. 19. 00:16

[김헌식 문화평론가]

흔히 영화 '킹스맨'을 B급 코드라는 관점에서 흥행과 인기 요인을 분석한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뇌불꽃놀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과히 틀린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흥미요소를 덧붙이는 것이 상업영화의 생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특별하게 달라보이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600만 관객의 다수가 누구인가하는 점이다.

19금이며 첩보액션 장르에 뜻하지 않게 많은 관객들이 몰리는 것은 평소에 그 장르를 외면했던 이들이 합세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애써 말하자면 여성들이다. 본래 첩보 액션물은 남성들이 평균적으로 선호하는 영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들은 영화관을 찾기 보다는 손쉬운 경로를 찾기 쉽다. 어둠의 경로일 수도 있고 인터넷 공유사이트 내지 IPTV일 수 있다.



↑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역대 청소년 관람불과 외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하지만, 영화 '킹스맨'은 여성들이 열광한 첩보액션물이었다. 그 이유는 뇌불꽃놀이 같은 B급 코드 등이 아니라 바로 매너남에 있었다. 콜린 퍼스는 매너남의 정석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술집격투였다. 이때 콜린 퍼스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라고 말한다. 이말은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면서 2015년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다.

액션 영화에는 흔히 티셔츠나 가죽 재킷이 유니폼처럼 주인공의 패션으로 등장할 법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깔끔한 정장 수트가 등장한다. 전혀 액션 영웅답지 않은 신사의 이미지가 강하다. 점잖게 폼이나 잡다가 사라질 것 같은 신사는 순식간에 상대방을 제압한다.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방법이 없으며 말과 행동은 절제되어 있다. 절제된 언행뒤에 갑자기 폭발하는 그의 액션은 과잉이나 격함과는 거리가 있다.

우아함과 격함이 절묘하게 융합되어 있다. 그는 악의 세력을 응징하는 세련된 폭력(?)을 만들어낸다. 절도와 평정심이 언제나 함께 존재하는 그의 움직임에 순식간에 상대방은 제압 당한다. 하지만 상대방을 제압하고 나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는 평소에 하던 데로 평온한 표정과 말투를 여전히 유지하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난다. 그는 모든 상황을 예측 통제하여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자신의 성과에 결코 우쭐해하지 않는다.

이런 캐릭터를 통해 어떤 문화 심리가 형성되는 것일까. 우선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모두 달관한듯 한 혜안과 명철함이 이를 지켜보는 이들을 안정감있게 만들어준다. 그를 따르면 항상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아 믿고 의지하고 싶어진다. 괴물을 잡으려는 사람은 괴물이 되어간다는 니체의 말을 기억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절대 그는 괴물을 잡으려 나서도 괴물로 변하는 비매너의 존재가 되지는 않을 듯 싶다.

이러한 매너남은 이전까지 나왔던 이상적인 남성상과 과는 다른 킹스맨만의 독특한 그렇지만 보편적인 매력 코드를 지니고 있다. 꽃미남처럼 단지 얼굴이 예쁜 것도 아니며 육식남이나 몸짱남 처럼 육체적인 근육질이 장점인 것도 아니다.

그는 결코 윗옷을 까고 식스팩을 자랑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착한 남자나 훈남처럼 마음 자체가 선하고 온화한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차가운 도시남이 가지고 있는 도시적인 매력은 문제 해결에서는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다. 차도남은 자기 분위기에 취해있기 때문이다.

킹스맨은 뇌가 섹시한 남자에 머물지도 않는다. 행동하지 않은 지성이야말로 무능할 뿐이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남자,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할 지도 모르지만, 밥만 먹고 인간이 사는 것은 아니다.

당장에 겉으로 드러나거나 뭔가 만들어 내는 행위 이전에 인간에게는 매너와 품격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문화적 존재인 인간이다. 공자의 말대로 인간에게는 '예'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예'라는 것이 적에게도 무조건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괴물과 싸우지만 결코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는 인간의 품격을 지키고 싶은 의지의 욕망이 킹스맨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이성적인 남성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염원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미래는 갈수록 불확실하다. 경쟁은 격화된다. 갈등과 분쟁의 소지는 항상 잠재되어 있다. 이에 대응하는 스스로든 다른 누군가이든 이상적으로 바라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보통 영화에서는 영웅의 형태도 등장한다. 하지만 보통의 액션 스타들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공격적인 응징에 나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문화의 시대에 직접적인 감정의 표출과 공격은 대개 불가능하며 오히려 그것은 나에게 돌아오는 불행의 부메랑이 된다. 우리는 항상 우아하게 날아서 벌처럼 쏘는 상상을 한다. 인간적인 품격과 매너는 지키되 불의에 대한 응징을 완벽하게 꿈꾸고 있는 점, 그것을 킹스맨이 대리투영해 표출해주고 있으니 우리는 품위있게 통쾌할 뿐이다.

하지만 킹스맨과 같은 매너남이 되기에 우리 현실은 돌출적이고 분노조절장애에 걸리게 만들만큼 복잡다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풀기 위한 훈련을 멈출 수는 없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