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와 디아스포라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 Kamome Diner, 2007)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2. 10. 13. 11:17

문화 다양성과 다문화

유네스코는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2001)을 통해 유네스코가 ‘모든 이는 자신이 선택한 언어, 특히 모국어로 자기 작품을 창조하고 배포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문화 다양성을 전적으로 존중하도록 양질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비단 학교만이 아니라 일상의 곳곳에서 이러한 교육과 훈련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유네스코는 ‘문화다양성의 보호는 인간존엄성의 존중에게서 분리할 수 없는 윤리적 책임’이라고 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과 같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해서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며 그러한 윤리적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 2005년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협약은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화가 세계 무역에서 일반상품과 같은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며, 각국의 문화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잘 지켜진 각각의 문화들이 잘 보전되어 서로 교류를 이루고 그 교류에서 다른 새로운 문화들이 잉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경제적 정치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문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소수민족이나 국가의 문화라고 해도 그것은 인류의 공통의 유산이며 그것이 다양하게 보장될 때 개인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따라서 각 문화적 정체성이 가진 풍요로움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를 갖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의 교류와 공유 그리고 새로운 문화의 탄생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다문화 현상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공유 그리고 융합의 의지가 없다면 다문화없는 다문화주의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다문화는 결혼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를 중심에 두고 있는 개념만은 아니다. 여러 요인에서 민족이나 인종, 국가의 차이가 있는 이들이 접촉하고 교류하는 상황에서 존재하게 되는 다종한 환경 속의 문화들을 가리킨다. 서로의 문화를 전하고 다른 문화를 존중할 수 있도록 교육과 연습의 장이 있어야 한다. 다만 그러한 여러 상황을 개인들이 모두 경험하거나 겪을 수 없으며 사전에 어떤 상황에 개인들이 처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예방적 차원에서 다양한 상황을 접할 수 있는 시네마 콘텐츠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교육과 훈련을 보완, 확충하는 것이다. 또한 다문화의 공간적 조우의 상황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의 생성요인을 파악하고 그런 상황을 대비할 수 있게 한다.


카모메 식당
밤마다 합기도 연습을 하며 잠자리에 드는 사치에(코바야시 사토미)는 일본에서만 식당을 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식당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선택한 곳이 핀란드다. 핀란드에 식당을 연 이유는 단 한 가지. 연어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연어구이를 좋아하듯이 핀란드 사람들도 그렇다고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이가 여기에서는 잘 될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식당을 연지 한달이 되어도 손님이 없다. 손님이 없으니 할 일이 없어 졸기 일쑤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첫손님으로 등장한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그는 커피한잔을 시키고는 어느 만화영화주제가 '독수리 5형제(갓챠맨)'를 사치에에게 가르쳐달라고 한다. 하지만 예전 만화영화주제가를 잘 기억할 수가 없다. 마침 그날 서점에 들른 사치에는 일본인 관광객을 만난다. 그 관광객에게 만화영화 주제가를 부탁하자 선선히 써주었다. 유일하게 온  손님의 부탁을 받고 고민을 하던 사치에게 미도리는 구세주였다. 그런 작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은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도 마찬가지였다. 미도리상은 어느날 갑자기 훌쩍 떠나고 싶어 아무지역이나 눈을 감고 세계지도에서 손으로 찍고는 핀란드에 오게되었다. 노래를 가르쳐준 게 인연이 되어 사치에는 미도리를 집안에 기거하게 한다. 처음에는 관광을 다니던 미도리는 식당일을 거들게 된다. 손님이 없는 데도 말이다. 손님이라고는 첫 손님으로 공짜 커피를 마사러오는 토미밖에 없다. 미도리는 이제 핀란드사람에게 맞는 음식을 만들고 관광 잡지에 광고도 내보자고 한다. 미도리는 사치에에게 묻는다. 왜 일본식 음식을 고집하냐고. 이 질문에 사치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이드북을 뒤져서 찾아오는 일본인이나 일식하면 일본 술과 초밥 밖에 모르는 외국인은 우리 가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요. 여긴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식당이에요. 근처를 지나다가 가볍게 들리곤 하는 곳이죠."

사치에는 또한 고유한 음식을 하면 점차 사람들이 인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서양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초밥을 외면하고 자신의 식당은 주먹밥(오니기리)이 메인 메뉴라고 말한다. 그는 주먹밥은 고향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오니기리야 말로 일본의 소울푸드니까요" 고향의 맛인 주먹밥을 핀란드 사람들에게 판다는 것이다. 미도리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주먹밥에 이색적인 재료를 넣은 걸 아주 좋아하거든요…. 이곳 현지의 재료들을 이용해서 제공하는 거예요.”
“가재… 청어… 그리고 순록고기.”

미도리의 제안에 따라 주먹밥을 현지화하기로 한다. 토미를 앞에두고 가재, 청어, 순록고기를 넣어보지만 토미는 맛있어 하지 않는다. 여전히 식당에서 주먹밥을 주문하는 사람은 없다. 식당에 들어와 식사를 시키는 손님은 없었다.
공짜커피를 마시는 토미만이 유일한 손님인 나날 마침내  식당을 방문한 한 남자 손님이 들어온다. 이 손님도 역시 커피를 시켜놓는다. 그런데 이 손님은 지그시 내려보면서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어쩐 일일지 커피루악을 외치며 손가락으로 커피가루를 누르면 맛있는 커피가 된다. 물론 마음으로 맛이 있으라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여기에서 루악은 잘익은 커피만 먹는 사향고양이를 말한다. 그 루악의 배설물은 향기좋은 커피의 백미다. 물론 그 남자는 전에 이 점포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으로 커피 기계를 놓고와서 기웃거리는 중이었다. 그가 손님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일본 음식은 하나도 시키지 않고 커피만 시키는 사람들, 어느날 사치에와 미도리는 시나몬 롤빵을 만들어 먹기로 한다. 일식집에서 향기 좋은 롤빵 냄새가 나자 사람들은 그 향기에 취해 가게에 들어온다. 그들은 가게에 들어오지는 않고 기웃거리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롤빵과 커피를 시키고는 수다를 떨었다. 롤은 물론 커피맛에 감탄했다. 커피를 공짜로 먹는 토미 그리고 커피와 롤 빵을 먹는 세명의 중년 여성은 단골고객이 되었다. 그런데 밖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한 여성은 그 눈빛이 매서웠다. 갑자기 나타나 한동안 쏘아보고 지나가는 그 여성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어느날 가게로 들어온 그녀는 술을 요구한다. 그리고 사치에에게 술을 권한다. 술을 못마신다고 사양하자 관광객으로 잠시 카모메 식당에 출입하고 있던 미카오에게 술을 권한다. 하지만 곧 그녀는 넉다운된다. 알고보니 애완견도 죽고 남편도 떠나 분노와 슬픔에 젖어 있는 여성이었다. 마사코는 친절한 배려와 보살핌에 그녀도 단골이자 우호적인 친구가 된다. 이런 와중에 사람들은 점차 식당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시키는 음식도 커피나 빵이 아니라 연어구이 등을 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핀란드 음식에는 없는 밥을 곁들여낸다. 음식이 융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핀란드는 선진국이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으로 생각했던 미도리는 핀란드 사람도 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사치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외로운 것은 외로운 것이다"
나중에 그녀에게 다시 남편이 돌아오면서 행복도 컴백홈한다. 외롭고 슬픈 것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예 없는 것도 아닌게 인생인 것이다.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 그리고 핀란드 여성은 조용히 햇빛을 쬐며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사이가 된다. 20년간 인생을 가족치료에 저당잡혔어도 남편의  가출로 슬픔과 저주가 점철되어 있어도 그 식당을 통해 웃음과 여유,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장면은 핀란드 사람들이 초밥에 관심을 갖는 계기이다.  이를 위해서 핀란드와 가진 이미지와 그런 이미지 때문에 핀란드에온 마사코의 이야기를 보야 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항상 여유가 있고 유유자적해보인다고 생각하는 사치에, 미카오, 미도리다. 어쩌면 그것은 동양인들이 핀란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일 것이다. 핀란드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할 때 토미가 그 해답을 말한다. 그건 숲이 있기 때문이지요. 여행가방을 잃어버린 마사코(모타이 마사코)는 20여년동안 시어머니 간병만 했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핀란드에 왔다. 그는 20여년 동안 간병으로 웃음을 잃어버렸다. 삶의 행복이 충만하다는 핀란드에 올만한 삶의 내력을 가지고 있는 마사코다.“내 짐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닐 거예요. 어딘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돌아오지 않은 짐을 바라는 마음도 놓고 여유를 찾아 숲으로 가기로 한 마시코다.
핀란드는 끝없이 펼쳐지는 숲의 나라이다. 그 숲으로 인해 사람들은 한결 여유로운 것이다. 환경과 사람의 행태가 관계있다는 점은 문화를 이해 할 때 환경적 요건을 눈여겨보아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껏 여유를 즐긴 다음날 기분 좋게 식당에 간다. 더구나 짐도 찾았다.
어렵게 찾은 마사코의 슈트케이스 안에는 흡사 금괴와도 같이 빛나는 ‘살구버섯’(Chanterelle)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핀란드 숲에서 따던 것이다. 일본에서 가져온 어떤 사물이 귀중품이 아니라 핀란드에서 채취한 버섯이 소중한 무엇이었다. 그것은 삶의 휴식이자 여유다. 일본의 삶은 텅비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일본의 삶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기쁜 상황에서 마사코가 식당에서 주문한 것은 커피가 아니라 주먹밥이었다. 편안한 기분을 느끼니 친숙한 주먹밥을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럴듯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편히 원하는 것을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커피보다 익숙한 음식이라면 주먹밥이겠다.
그런데 주먹밥을 그녀가 받아들고 먹으려는 찰나 다른 식탁에서 부지런히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은 식사는 물론 일순간 수다마저 잊고는 미카오를 쳐다본다. 식당에서 일도하고 어느정도 식당 단골들에게 친숙해진 그가 주먹밥이라는 생소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매우 낯선 사람이었다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제 주먹밥은 한번쯤 먹어야할 대상이되는 순간이었다. 핀란드의 산림의 자연풍광에 한결 좋아진 미카오가 주먹밥을 먹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쌀밥을 연어요리와 즐기는 가운데 주먹밥이라고 도전 못할일이 아니다.
주먹밥이 그들에게 한결 익숙해지게 되는 에피소드는 하나 더 있다.
모처럼 식당을 휴업하고 야외 휴식을 취하던 그들이 식당에 돌아와 맞은 것은 열린 식당이었다. 도둑이 든 것이다. 놀랍게도 도둑은 일전에 커피맛있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손님이었다. 이제는 친구가 된 마을 여성은 그가 바로 전에 이집에서 장사를 하던 주인이라고 했다. 그는 커피 기계를 놓고가서 점포를 기웃거린 것이었다.
도둑이 된 남자 덕분에 맛있는 커피를 끓이게 된 사치에는 따로 할 말이 없다. 그 순간 그들은 주먹밥을 해먹기로 한다. 어떤 결정적인 해결이나 해소가 있을 때 그들은 주먹밥이 생각난다. 도둑이 된 전 주인 그리고 친구가 된 주민은 생전 처음 주먹밥을 먹게된다. 더구나 전주인의 배에서는 꼬로록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맛이 있게 먹은 그는 커피기계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의 옷에는 뭔가 하얀게 묻어 있다. 바로 밥알이다. 그는 그 밥알도 떼어 맛있게 먹는다.

이 영화에서 사치에는 자신의 음식, 즉 일본 음식을 고집하려 한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가 경계는 무너져 간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음식을 강요해서도 안되고 강요받아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처음에 상대의 음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친숙한 점이다. 토미는 일본대중문화에 익숙해서 식당에 들어온다. 하지만 커피를 시킬 뿐이다. 처음에는 일본 식사에는 관심이 없다. 좀 진전한게 롤이다. 공짜 커피만 마시고 돌아가서 미도리는 친구라도 데려오라고 하지만 사치에는 반대한다. 사치에는 첫손님의 커피는 계속 공짜라고 말한다. 결국 토미도 일본음식을 먹으려고 어머니를 데려온다.
같은 연어 요리라고 해도 일본식과 핀란드식은 다를 수 있다. 쌀밥이 곁들여진 연어요리는 핀란드 사람들에게 다가갈 여지가 더 있었다. 중간 매개 역할을 할수 있는 요리였다. 사치에는 주먹밥을 유지하고 연어요리를 공략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지켜낼수 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 되지는 않았다. 자신을 이해하고 힘이 되어준 미도리, 미카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그들이 일본인이라고 해도 완벽하게 같은 문화적 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건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예컨대, 미도리는 요가, 사치에는 합기도를 즐긴다. 마사코는 그런 것과는 관련이 없다. 아마 일본에 있더라면 그들은 어울릴 수 없어 버릴지 모른다. 사치에의 인사는 보기 아까울정도지만 미도리의 인사는 너무 거칠고, 마사코의 인사는 낮게 조아린다는 끝장면은 이를 암시한다. 오히려 일본에서 달랐을 그들이 머나먼 핀란드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문화적 동일성을 공유하게 된다.


tip

 합리성 그리고 음식의 세계화

조지 리처「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맥도날드 회사의 운영 원리를 효율성,계량 가능성,예측 가능성,통제의 증대로 정리하고 이를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라고 명명하는데,'맥도날드화'의 지나친 합리성 추구가 오히려 불합리한 상황에 고착


Q  주먹밥 하면 한국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