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추악함이 없는 '우아한 악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21:15

추악함이 없는 '우아한 악녀'


ⓒKBS제공

미디어 콘텐츠에서는 흔히 계모가 악녀 프레임에 갇힌다. 그 프레임에서는 계모의 뛰어난 능력이 무시된다. 그 능력은 바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우아한 존재(악녀)'로 둔갑하는 것. 계모의 위치를 차지하려는 그녀는 적어도 재력이 있는 집안을 겨냥하고, 재력을 지닌 가장과 자녀들은 접근해오는 여성들을 경계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경계를 뚫는 여성이라면 우아한 악당이 되어야 한다. 즉 추악함이 드러나지 않는 우아한 악녀여야 한다. 심 봉사는 뺑덕 어멈에게 속았다. 그녀는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고 착한 여성이었다. 뺑덕 어멈 탓만이랴. 심 봉사가 이미 스스로 눈을 잃었고 마음의 눈도 저버렸다. 우아한 악녀들은 타자들이 스스로 눈을 현혹되게 하는 데 탁월하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송강숙(이미숙ㆍ사진)은 동화 속 계모와 달리 날씬하고 청초하게 아름다우며 성격도 흠잡을 데 없다. 구대성(김갑수)의 아내이자 구효선(서우)의 어머니를 그대로 재현하며 단숨에 그들을 사로잡아버린다. 탁월한 연기자가 아닐 수 없다.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우아한 악당은 영화 <배트맨>에도 있다. 조커는 아예 항상 웃는 얼굴로 고정시키려다보니 화려한 화장술의 지나침이 그로테스크에 이른다. 조커는 언제나 예술과 음악을 사랑하며, 그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예술은 고등 사기다.' 따라서 예술적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울 게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본질을 가리는 수단이 된다. 

<선덕여왕>의 미실이야말로 우아한 악녀이다. 그녀는 음악과 미술을 사랑한다. 즉 예술은 유려한 가림막이 된다.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숨기는 일상의 모든 행태가 연기다. 그것들을 통해 백성에게 추앙받는 존재가 되고 보이지 않게 권력을 장악한다. 통치도 퍼포먼스다. 언제나 우아한 웃음을 잃지 않지만 그 안에는 분노와 격정, 욕망이 들끓는다. 위장의 우아함이 기괴함으로 치닫고, 이에 시청자는 자주 소름이 돋았다. 화려함을 유지하는 데는 추악한 손들이 필요하다. 드라마 <동이>에서 장옥정(이소연)의 친오라비 장희재(김유석)도 항상 우아한 웃음과 자태의 여유를 잃지 않는다. 그는 다만 스스로 자신의 누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더러운 손'이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갈파한다. 

현실에서 악당 혹은 악녀는 없다. 겉으로 그들은 모두 우아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추악한 손이 경제 효과에 가려 화려하게 존립하는 것같이. 보수의 살육적인 '좌빨' 논리가 유려한 문화 정치에 가리듯. 그들은 위장의 프로다. 

김헌식(대중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