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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숙적인 악당은 미실이었고,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을 괴롭힌 악인은 금영을 조종하는 최상궁이었다. 드라마 <대조영>에서 대조영을 괴롭히는 존재는 이해고였으며, <태왕사신기>의 담덕에게는 연호개라는 악당이 있었다. 최근 방영되는 <동이>에서 동이(숙빈 최씨ㆍ한효주ㆍ사진 오른쪽)와 대적하는 악인은 어쨌든 장희빈(이소연ㆍ사진 왼쪽)이다.
이렇게 보면, 사극에서 여성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인은 여성이고, 남성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은 남성 악인이다. 작품 속 경쟁 구도는 선악을 낳는다.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악당이 규정된다. 무엇보다 약자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사극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 악당은 남녀에 따라 나름의 균등성을 가진다. 즉 남성이 여성을 적극 괴롭히는 악당 캐릭터로 등장하지 않거나, 여성이 남성을 파멸적으로 괴롭히는 존재로 분하지 않는다. 다만, 우회적으로 괴롭힌다. <대장금>에서 최판술이나 오겸호는 장금이의 시련을 강화했고, 드라마 <동이>에서 오태풍과 오호양은 동이의 여정을 괴롭게 만드는 악당일 뿐 치명적인 장애물은 아니다. 뒤에는 악녀들이 있었다.
통속극도 마찬가지다. <조강지처 클럽>이나 <아내의 유혹>과 같은 여성의 피해의식을 대변한 드라마에서 악당은 대개 남성이지만, 대개 그들은 지질하다. 오히려 지질한 악당을 후려잡고 있는 대단한 악녀가 중요하다. 정면승부는 그 악녀와의 싸움에서 비롯한다. <아내의 유혹>에서 교빈을 농락한 애리가 대표적이다.
요약하면, 애정 통속극에서는 연인 쟁취를 두고 현상적 악당과 본질적인 악녀가 등장한다. 성별분업 사회의 권력과 사회적 지위의 경쟁 영역에서는 여성의 악녀는 여성, 남성의 악당은 남성이다. 연적(戀敵)도 사회적 쟁취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인지 드라마 <아이리스>에서도 김현준을 연적으로 여긴 진사우는 악당이 되었다. <대장금>의 금영은 장금에게 민정호를 뺏기면서 악녀로 변했다.
경쟁의 구도는 상대적이고 급변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상대를 너무나 잘 아는 존재다. 자신에게 좋지 않은 루머는 가장 친했던 이에게서 비롯한다. 친구라도 경쟁에 내몰릴 때 악당이 된다. 1등 경쟁 사회는 악당을 만든다. 무엇보다 성취와 지위를 두고 남녀가 동등하게 경쟁하는 사회가 될수록 남성을 괴롭히는 여성 악인, 여성을 괴롭히는 남성 악인 캐릭터가 드라마와 영화에 대거 등장하겠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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