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지금 ‘엄친아’ 세상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9:29

연예계는 지금 ‘엄친아’ 세상

광고
학벌좋고…잘생기고…매너좋고…효도하고…

딴따라 신분 선입관 벗고

최상위 사회계층 반열에

강동원.이서진.윤태영 등

실제 엄친아 스타의 상징

‘내여자’의 고주원.박솔미

드라마서도 잇따라 신드롬


퀴즈 하나. 세상에는 언제나 ‘나’보다 우월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는 최고 명문대에 다니며 잘생기고 부모님께 효도한다. 그런 ‘그’에게 취업난은 그냥 장난일 뿐. 이런 엄청난 포스를 발산하는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렇다. ‘엄친아’다. ‘엄친아’는 ‘엄마친구아들’의 줄임말로 미디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5년 12월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하는 박종원 씨의 웹툰 ‘골방환상곡’ 중 8화 ‘우월한 자’편에서였다. 부모가 어리거나 젊은 자식을 나무라거나 분발을 촉구할 때 흔히 ‘아는 집 아들 혹은 딸’이 비교대상으로 등장하는 세태를 반영한 유행어다. 부모의 말 속에 등장하는 ‘엄친아’는 대개 공부도 잘하고 잘생겼으며 모범적이며 효도에도 지극정성이다. 이후 드문드문 등장했던 이 말은 요즘 다시 인구에 회자되며 급속도로 유행을 타고 있다.

▶연예스타는 ‘엄친아’

기폭제가 된 것은 영화배우 강동원이었다. 최근 자신이 출연하지도 않은 드라마 때문에 때 아니게 ‘엄친아’로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조선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의 야망과 사랑을 다룬 MBC 드라마 ‘내여자’에 SSP라는 기업이 협찬을 하게 되면서였다. 강동원이 매일 아버지께 문안전화를 드린다는 내용이 포함된 부자 이야기가 사보에 실렸고, 이를 통해 회사의 부사장이 강동원의 부친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순식간에 강동원은 잘생긴 데다 학벌도 좋고 집안도 든든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엄친아’의 상징이 됐다.

강동원 말고도 선남선녀들이 즐비한 연예계에선 다양한 스타들이 ‘엄친아’ ‘엄친딸’(엄마친구 딸)로 입에 오르내렸다. 부모님이 유명 기업인이거나 금융인 혹은 명문가 자제인 윤태영, 이서진, 류시원, 명문대 출신 연예인인 김태희, 김정훈 등. 외국 유학파에 매너 좋고 인간성 바르기로 유명한 차인표는 ‘엄친아’에서 ‘아친남’(아내의 친구 남편)으로 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일반인들이 넘보기 어려운 고소득 직종으로 각광받고, ‘딴따라’라는 과거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최상위 사회계층’의 하나로 꼽히면서 학벌 좋고 집안 좋은 연예 지망생과 톱스타들이 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연예계는 숱한 ‘엄친아’와 ‘엄친딸’들의 산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TV는 ‘엄친아 월드’

연예스타들이 만들어내는 가상 세계인 TV는 더한 ‘엄친아 월드’다. 강동원에게 ‘엄친아’라는 칭호를 부여했던 바로 그 드라마 ‘내여자’를 보자. 극 중 능력이 좋아 회장의 총애를 받는 데다 잘생기고 건실하고 정의로우며 인간미까지 ‘끝내주는’ 고주원,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개 국어 능통자에 빼어난 미모를 소유한 재원 박솔미, 대기업 후계자로 멋지고 매너 좋고 카리스마 넘치는 박정철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다. ‘밤이면 밤마다’도 못지않다. 이동건이 연기하는 남자주인공은 고소득 전문직종인 고미술품 감정 및 복원에 종사하는 인물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뛰어난 실력에 출중한 외모, 매너를 갖췄을 뿐 아니라 개방적인 사고와 겸손함까지 겸비했다는 설정. 선망직종인 법조계를 배경으로 한 MBC의 ‘대한민국변호사’와 15일 전파를 타는 SBS ‘신의 저울’ 또한 전형적인 ‘엄친아’와 ‘엄친딸’들의 세계를 그린다.

▶‘엄친아’에 비친 대중들의 욕망

‘엄친아’ 신드롬에는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이르기 어려운 세계에 대한 선망과 부러움, 질투가 섞여 있다. 한편으로는 날로 격심해지는 사회적 경쟁과 경제.교육 등의 양극화 경향 속에서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스트레스, 박탈감도 반영됐다. ‘엄마 친구의 아들과 딸’은 ‘내가 학업, 취업, 결혼, 승진 전선에서 맞딱드려야 하는 경쟁자’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평판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나는 나일 뿐’이라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유행어”라면서 “자신에게 결핍된 요소를 가진 스타들을 친근하게 부르려는 대중들의 욕망과 선망, 부러움, 질투뿐 아니라 사회적 평판을 중시하는 문화가 복합된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고려대 현택수 교수(사회학)는 “매스컴이 애초부터 비교하거나 도달하기 어려운 세계를 중산층의 보편적인 모델처럼 오인하고 착각하게 만든 결과”라면서 “모두가 1등이 되어야 하고 완벽한 모델과 비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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