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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부산행 그리고 어디로 무엇을 위해 진화 하는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7. 22. 00:24



'부산행' 개봉 첫 날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 NEW
전설의 고향 세대에게 구미호는 익숙하지만 드라큘라가 친숙한 세대도 있었고 그 뒤에 중화권의 캐릭터로 강시 세대도 분명 있었다. 드라큘라는 흡혈귀로 불리었고 다만 멋진 옴므파탈의 특징이 있었는데 뱀파이어로 스핀 오프했다. 뱀파이어는 치명적인 매력과는 거리가 멀고 오로지 흡혈의 본능만 있는 존재지만 결국 드라큘라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톰 크루즈와 브레드 피트의 옴므파탈이 치명적이었던 ‘뱀파이어와 인터뷰’(1994)가 분수령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트와일라잇’(Twilight) 연작이 뱀파이어 시리즈의 계보를 이으며 젊은 세대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뱀파이어와 교차하면서 좀비캐릭터도 부상했다.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에 등장하는 좀비는 지금의 좀비와 달랐다. 최소한 1996년에 제작된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도 비슷했다. 이런 영화에서 좀비는 단지 자연의 어느 곳에 등장하는 이질적인 존재일뿐이었다. 우리의 현실과 분리되거나 초자연적인 원인에 따라 발생하였다. 어떤 관객에 따라서는 난데없는 환상적인 공간에 빠지기 때문에 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2002년에 선보인 ‘레지던트 이블’은 다른 맥락에서 좀비가 형성된다. 좀비가 인간의 바이오 과학과 결합한다. 연구소에 개발한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좀비가 되고 그 좀비에 맞서 주인공이 싸워나간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의 2004년 리메이크작도 좀비의 원인을 바이러스에 두었다. 

부두교의 좀비는 육체 감각의 마취와 연관이 있었던 것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2013년 ‘월드워 Z’에서도 좀비는 바이러스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레지던트 이블’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인류는 좀비와 세계 전쟁을 벌인다. 다만 그 원인이 특정 음모를 꾸미는 미국 안(특정지역)의 소수의 탓이 아니다. 

글로벌 세계화 시대에 맞게 공포의 진원지는 넓어졌다. 예전에는 좀비가 특정 공간에 있었지만, 이제 도시 공간 혹은 세계 공간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전세계가 좀비의 공포에 노출되는 일은 다반사이다. 인류 자체의 생존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다. 또한 좀비는 매우 빨라졌고, 능동적이 되어 더욱 공포감을 주었다.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좀비 게임에 연원한 영화들이 등장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점이기도 하다.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타격하고 공격하고 싶은 대상이 되어 버린 듯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게임이나 영화는 물론 드라마 그리고 웹툰과 소설에서 언제든지 마음대로 파괴해도 좋을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비 캐릭터는 왜 대중문화 속에서 급속히 확산된 것일까. 그것은 미래의 불안과 세계화의 확산 그리고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비정상적 결합에 있을 것이다. ‘트와일라잇’에서 뱀파이어가 욕망을 절제하는 캐릭터로 진화되었듯이 좀비는 통제감의 상실, 미래에 대한 불안성의 제거를 위해 진화되었다. 

좀비는 매력적인 존재와는 관련이 없다. 사람의 형상만 하고 있을뿐 움직이는 시체일 뿐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자율적인 사고와 이성은 마비되고 오로지 육체적인 본능만이 존재한다. 자신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정체성도 없기 때문에 가족이나 연인조차도 잊는다. 언제든지 사랑스럽고 돈독한 관계라 해도 좀비가 되어 오히려 해치고 물리쳐야 하는 대상적 관계가 되는 것은 비극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은 영화 ‘부산행’에서 잡아낸 포인트 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그러한 좀비 무리가 따로 별나라에 존재했다고 전제되었지만 지금은 일상 깊숙이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현대과학의 부작용이나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의 폐해로 일상적인 현상이 될 수 있음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특정 기업들이나 연구소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무리한 연구로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는 설정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또한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바이러스의 확산에 대한 공포감도 좀비영화에 개입하고 있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외진 곳에서 발생한다고 해도 급속하게 전파 확산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내재하고 있다. 조류독감이나 메르스와 같은 바이러스의 감염은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에 연상되고 있는 것이다. 

좀비가 갖고 있는 본래의 특성을 통해서 현대인들이 처한 상황과 공포감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좀비는 감각이 없는 시체 상태의 기계적인 움직임만을 보인다. 유연하게 살아있고 감성이 흐르는 인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자신의 본능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랑하는 존재도 못 알아보고 해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세계가 이런 존재가 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좀비 콘텐츠를 통해 알 수가 있는지 모른다.

좀비가 되기 싫고 그들을 타격하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모두 좀비가 되어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가는 것에 슬퍼하며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지만, 끝내 자신마저 좀비가 되어버리는 상황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혼자 게임을 하듯이 좀비를 처치하거나 혼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되지는 않는다. 결국에는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뿐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