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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지는 아빠들을 위한 '슈퍼 딸바보 영화' 왜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9. 8. 11:13

영화 ‘스킨트레드’에서는 인신매매범을 일망타진하는 격한 수사과정에서 딸을 납치당하는 아빠 형사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자신의 수사 때문에 아내를 잃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딸마저 납치가 되니 그렇게 좋은 아빠같지만 않은데, 결국 주인공 아빠는 악의 무리에게서 딸을 찾아온다.

영화 ‘테이큰’에서는 난데없이 파리로 여행을 떠난 딸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전직 요원 출신의 아빠가 딸을 구하는 과정이 리얼액션에 담겼다. 적어도 자신 때문에 딸이 남치된 것은 아니다. 그런 딸을 화려한 액션과 지능플레이로 멋지게 구하는 아빠는 분명 영웅이다. 평소에 딸에게 잘해 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영화 '앤트맨' 스틸컷.ⓒ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앤트맨' 스틸컷.ⓒ시네마틱 유니버스

마찬가지로 영화 ‘다이하드 4.0’에서 딸 앞에서는 아빠 매클레인 한없이 작아진다. 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때문인지 항상 처음에는 큰 소리를 치다가도 끝에는 딸의 말에 할말을 못하고 만다. 평소에 잘한 것이 없으니 새삼스럽게 아빠 노릇이란 자신이 생각해도 유구무언이다. 더구나 그가 전세계를 지배한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가운데 딸은 범죄조직에게 납치되고 만다.

물론 아빠는 어려움을 당해 고군분투하지만 멋지게 딸을 구한다. 이후 2013년 제작 된 영화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에서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아빠 매클레인은 원칙과 기본을 준수하지 않는 형사일뿐이다. 아들에게 이런 아빠는 무능력자에 구제불능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협력하여 사건을 모두 해결하기에 이른다. 다이하드 시리즈의 매클레인은 자신 때문에 아내가 납치당하는 일도 겪는다.

영화 ‘샌 안드레아스’에서는 아빠이자 남편으로 수사관이나 첩보요원이 아니라 소방구조대원을 등장시킨다. 그런데 항상 아내와 딸에게 못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일 때문에 수시로 집을 비우거나 그들의 옆에 있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이혼을 당하거나 아이들에게서 외면을 받기 일쑤이니 한없이 작아진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최악의 지진은 아빠의 역할이자 구조요원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런 영화들은 주로 남편, 아빠들이 한없이 가족앞에서 위축되는 모습을 전복 시키는 이야기 흐름을 지니고 있다.

최근 개봉 영화 ‘앤트맨’은 아예 아빠를 특수절도범으로 등장시킨다. 한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가족 옆에 있지 못한다. 아내는 심지어 형사와 재혼을 생각하고 동거 상태였다. 다만, 딸은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있었지만 아빠의 역할을 하기에 전과자의 삶은 쉽지 않다. 그는 결국 다시 재범에 노출되는 신세가 되고 다시 감옥에 들어가야 할 처지에 빠진다. 하지만, 우여곡절 절치부심, 아빠의 역할을 다하려 앤드맨이 되면서 세상을 위기에서 구하기도 하지만, 딸을 지켜낸다. 이로써 범죄자였던 아빠는 영웅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앤트맨은 다른 아빠들과 달리 상징적이다.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 아빠이자 남편인데 오히려 아예 작아졌기 때문에 자신의 입지를 세울 수 있었다. 작은 영웅인 셈이다. 거창한 것보다는 것을 더 소중하고 각별하게 여길 때 가족도 세상도 구할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지도 모른다. 대개 영웅들은 가족들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앤트맨에 잠깐 등장하는 ‘어벤져스’에서 가족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호크아이는 모킹버드와 임무를 수행하던 가운데 사랑을 키워 결혼을 한다. 하지만 아빠, 남편의 역할에 대한 결핍감과 갈등은 거의 없다. 특히 아빠 영웅의 본격적인 등장은 현재 아빠들의 등장은 그들의 사회적 가정적 위치와 입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고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 되고 싶어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유형의 영화를 보면 그런 아빠와 남편은 초인적인 능력이나 테크놀로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인 것일까 싶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