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잡스이즘

<인터뷰> 아이작슨 "잡스를 있게 한 이는 아내"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11. 9. 21:52

<인터뷰> 아이작슨 "잡스를 있게 한 이는 아내"


스티브 잡스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 인터뷰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지난달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의 공식전기를 집필한 전기작자 월터 아이작슨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 자신의 사무실에서 연합뉴스를 비롯,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1.11.9 sgh@yna.co.kr

스티브 잡스 공식 전기 작가 "그는 창의성ㆍ예술성을 기술과 결합한 천재"

"잡스 없는 애플, 5∼10년은 건재할 것"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오늘날의 스티브 잡스가 있기까지는 그의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하나로 묶어낸 아내 로런의 힘이 가장 컸습니다." 

지난달 5일 세상을 떠난 애플 공동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59) 씨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연합뉴스를 비롯한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18세기 미국의 정치인 겸 외교관, 문필가인 벤저민 프랭클린,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등의 전기 작가로도 유명한 아이작슨은 잡스가 자신에게 공식 전기 집필을 부탁하면서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각도 담아 객관적인 전기를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1984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자 시절부터 잡스를 알게 돼 전기를 쓰는 인연을 맺은 아이작슨은 타임 편집장을 거친 언론인 출신으로 CNN 최고 경영자를 거쳐 현재 아스펜 연구소 회장 겸 최고 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아이작슨은 2009년 전기 집필을 시작한 이후 잡스를 약 50차례 가까이 인터뷰를 했고, 100여명 이상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그의 전기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잡스 전기를 쓰게 된 과정과 그의 재능, 성격, 평가 등을 술회한 아이작슨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왜 이렇게 왜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기를 끈다고 생각하나.

▲잡스는 아주 감성적인(emotional) 사람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과 감성적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전 세계인들은 그가 만든 아이폰, 아이팟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그토록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제품들을 만들어낸 주인공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영국 팝 그룹 비틀스의 멤버 존 레넌(1940-1980)이 세상을 떠났을 때와 같은 분위기이다. 내가 존 레넌이 죽었을 때 정서적인 유대감을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잡스가 왜 당신을 자신의 전기 작가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내가 언론인이라는 점 때문에 부탁했다고 했다. 벤저민 프랭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헨리 키신저 등에 대한 전기를 쓴 적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또 그들로부터 얘기를 이끌어내는데 능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는 또 자신의 전기가 객관적인 책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는지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전기를 순수 역사학자에게 맡기지 않은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전기를 쓴 당신에게 전기를 써달라고 부탁한 게 자신을 그들과 같은 반열로 스스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2004년에 잡스가 나한테 처음 전기를 써 줄 것을 제안했을 때 반농담 식으로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때는 잡스는 훨씬 젊은데다 인생의 오르막내리막을 경험하는 시기였고 나는 그의 암 투병 사실을 몰랐다. 그때 나는 "당신의 전기를 쓰는데 관심이 많지만 지금은 아니다. 당신이 은퇴한 이후 20∼30년 뒤쯤에 생각해보자"며 거절했다.

그러다 2009년에 잡스의 아내인 로런 파월이 '스티브가 암과 싸우고 있다'며 그의 전기를 쓸 것을 다시 제안했다. 그때는 수락했다. 잡스는 프랭클린과 같이 아주 독창적이고 경이로운 인성을 소유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잡스가 자신의 전기에 대해 요구한 것은 없었는가.

스티브 잡스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 인터뷰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지난달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의 공식전기를 집필한 전기작자 월터 아이작슨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 자신의 사무실에서 연합뉴스를 비롯,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1.11.9 sgh@yna.co.kr

▲전혀 없었다. 어떤 내용은 들어가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쓰여야 한다든지 아무런 지침도 주지 않았다.

오로지 나에게 준 지침은 책의 겉표지이다. 한국어판 표지도 똑같은 것이다. 그 책 표지 디자인은 그가 직접 제시한 것이다. 책 표지가 사진이어야 하고 단순하게 가기를 원했다.

--잡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전기를 읽어보았는가.

▲그는 출판되기 전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다. 원고도 보지 않았다. 다만 내가 전기 집필이 끝날 무렵 그 내용을 말해줬을 때 아주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잡스는 중요한 순간에 자주 눈물을 흘린 것으로 나와 있는데 어떤 정서인가.

▲그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을 생각할 때 눈물을 흘리곤 했다. 때때로 얘기를 하던 중 그를 쳐다보면 뺨에 눈물을 흐르는 것을 보곤 했다.

--잡스 없는 애플이 존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잡스 체제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애플을 경영하면 향후 5~10년 동안은 애플이 존속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애플을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훌륭한 예술적 재능과 대단한 기술적 역량을 갖고 있다. 

--전기에서 잡스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돼 있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어떻게 애플이라는 조직의 리더, 경영자가 될 수 있었는가.

▲훌륭한 경영자가 되려면 괴팍한 성격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훌륭한 경영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예를 들면 잡스의 뒤를 이어 현재 애플의 최고경영자를 맡은 팀 쿡은 매우 침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전혀 괴팍하지 않다. 반면 잡스는 괴팍하면서도 매우 감성적이며 또 예술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훌륭한 경영자이다. 훌륭한 경영자가 되는데 하나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잡스의 성격 중 하나로 묘사된 반사회적(counter-culture)인 성향은 애플의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의 반사회적 성향은 잡스를 매우 흥미롭게 하는 한 요소이다. 잡스는 히피이기도 했다. 잡스는 1960년대 말의 반체제 운동, 히피 운동과 실리콘밸리의 공학, 기술 운동을 하나로 합치려 했고, 그것이 바로 애플 조직의 정수(essence)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삼성과 삼성의 기술에 대한 잡스의 생각은 어떠했나.

▲잡스는 삼성을 높이 평가했고, 삼성은 애플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반면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은 애플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했다.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남긴 말은 세 차례 반복한 '오 와우'(Oh Wow)라고 한다. 무슨 의미라고 추정하나.

▲그것의 의미는 누구도 추정할 수 없다. 잡스는 종종 '삶은 거대한 미스터리'라고 말하곤 했다. 잡스의 삶 중 일부도 거대한 미스터리이다.

--잡스는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학생으로서, 특히 조직의 보스으로서도 통상적인 모델은 아니다. 그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는 보스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모델은 아니다. 모든 이는 모든 다른 유형의 인간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잡스는 빌 게이츠를 평가절하하곤 했다는데 그에 대한 생각은.

스티브잡스 전기(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잡스와 게이츠는 아주 강한 친분 관계를 유지해왔다. 경쟁하는 사이인 동시에 존경하는 사이였다. 1970년대 중반에 만나 35년 이상 지속했다.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잡스가 죽기 2개월 전이다. 게이츠가 잡스를 찾았다.

잡스가 더욱 예술적이고 열정적이며 미학적 취향을 가졌다면, 게이츠는 비즈니스 지향적 인물이었다. 잡스는 게이츠를 존경했다.

--잡스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많은데 누가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나.

▲아내 로런 파월이다. 그녀는 잡스의 낭만적이고 반사회적이며, 감각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 비즈니스적 성향을 뒷받침했고,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내는 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적극적 성향의 로런은 잡스의 낭만적인 성향과 사업가적인 성향 양 측면의 성격을 통합시킨 사람이다.

--잡스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은 잡스를 모순 덩어리, 복잡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잡스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도 잡스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의 모든 것을 증오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잡스를 왜 천재로 규정하나.

▲천재는 창의적이어야 하며,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잡스는 창의성과 예술성을 기술과 결합한 인물이다.

천재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쳐야 하며, 또 자신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99%의 노력으로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천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잡스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후회하는 대목이 있다면.

▲그가 후회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젊은 시절 여자친구(크리스앤 브레넌)의 임신과 그녀게서 태어난 딸(리사)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정말 후회한다고 말했다.

sgh@yna.co.kr


"잡스, 투병 중에도 디자인에 집착"(종합2보)


베일 벗은 스티브 잡스 전기 (서울=연합뉴스)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 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2011.10.24 << 민음사 제공 >> photo@yna.co.kr

스티브 잡스 전기 24일 전세계 동시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40여 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이 전기는 잡스가 생전에 직접 아이작슨에게 의뢰해 집필된 것으로, 아이작슨은 집필을 위해 2009년부터 2년간 40여 차례에 걸쳐 잡스를 인터뷰하고, 그의 친구, 가족, 동료, 라이벌 등 100여 명의 주변 인물들을 만났다.

그가 만난 사람 중에는 잡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주 빌 게이츠,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니브, 애플 후계자 팀 쿡 등이 포함돼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잡스의 어린시절부터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잡스의 내밀한 개인사는 물론, 애플의 창업과 성장사,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의 탄생 비화, 절제와 완벽주의로 상징되는 그의 경영 비법 등 잡스와 애플의 모든 것이 담겼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추천사에서 "지금까지 잡스가 만든 제품과 애플의 경영 전략에 관심을 둔 책은 많았어도 그가 진정 어떤 인물이었는지 진지하게 접근한 책은 없었다"며 "이 책은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으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보여 주며, 그가 창조성의 아이콘이 된 원천을 밝혀낸다"고 소개했다.

◇잡스의 삶과 가치관.."양부모는 1000% 제 부모님" = 어린 시절 입양된 잡스는 자신을 키워준 부모를 누군가가 '양부모'라고 부르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들은 1000% 제 부모님"이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반면 생부모에 대해서는 "그들은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후에 잡스는 생모 조앤 심프슨에게 직접 전화를 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는데 "잘 지내고 계신지 확인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며 "낙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일이 고맙게 여겨졌다"고 전했다.

그가 선불교와 극단적인 채식주의에 빠지게 된 사연도 등장한다.

베일 벗은 스티브 잡스 전기 (서울=연합뉴스)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 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잡스의 어린시절. 2011.10.24 << 민음사 제공 >> photo@yna.co.kr

인도 순례 여행을 다녀온 후 잡스는 "서구 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다"며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선불교는 제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구술했다.

일례로 잡스는 컴퓨터 내부의 팬이 내는 소음은 정신 집중을 방해해 선불교의 정신과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팬이 필요 없는 전원 공급 장치를 원했다.

또 선불교의 영향으로 물질적 소유에도 무관심해 사는 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고 가구도 거의 없이 단출했다. 집이 너무 검소해서 방문했던 빌 게이츠가 당황하며 "가족 모두가 여기서 사는 거예요?"라고 물었을 정도란다.

이와 함께 잡스는 프랜시스 무어 라페의 '작은 지구를 위한 식습관'과 아르놀트 에렛의 '디톡스 식습관의 치유 체계' 등을 읽으면서 야채와 과일만 먹는 채식에 빠져들었고 아울러 장기 단식을 정기적으로 단행함으로써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일 위주의 채식주의 식습관이 해로운 점액뿐 아니라 체취도 막아준다고 믿어, 체취 제거제를 쓸 필요도, 정기적으로 샤워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학창시절 환각제의 일종인 LSD를 체험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였다"며 " LSD는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고 회상했다.

◇완벽주의와 미니멀리즘..병상서 "디자인 마음에 안들어 마스크 5개 가져오라" = 책 속에는 특히 완벽주의자로서의 잡스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가 다수 소개된다.

제품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을 쓰는 잡스 특유의 완벽주의는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장롱이나 울타리 같은 것을 만들 때는 안 보이는 뒤쪽까지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철학의 가장 극단적이고 두드러진 실천 사례는 잡스가 칩과 다른 부품들을 부착하고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회로 기판을 철저하게 검사한 경우였다. 어떠한 소비자도 그걸 볼 일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인쇄회로 기판에 대해 "저 부분 정말 예쁘네. 하지만 메모리칩들을 좀 봐. 너무 추하잖아. 선들이 너무 달라붙었어"라는 식으로 심미학적인 비평을 하기도 했다.

잡스는 심지어 투병 중에도 디자인에 집착했다.

"한번은 잡스가 매우 안정적인 상태일 때 폐 전문의가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했다. 그러나 잡스는 그것을 벗겨 내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그러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겠다고 지시했다." 

또 애플의 제품 디자인에서 드러나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은 그가 일하던 비디오 게임 제조회사 아타리 게임의 단순함과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클러 주택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베일 벗은 스티브 잡스 전기 (서울=연합뉴스)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 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1996년 잡스 모습. 2011.10.24 << 민음사 제공 >> photo@yna.co.kr

◇아이패드에 삼성 칩 쓰게된 사연.."인텔은 너무 느려" = 책에는 애플이 아이패드에 삼성의 칩을 사용하게 된 사연도 나온다.

잡스는 당초 아이패드에 인텔이 개발 중인 낮은 전압의 아톰 칩을 사용하려 했는데, 아이팟 부분 수석 부사장이었던 토니 파델은 보다 단순하고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ARM 아키텍처 기반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잡스는 손을 들었다. '알겠네. 최고의 부하들을 거스를 순 없지.' 그러고는 아예 반대 방향의 극단으로 내달렸다. 애플은 ARM 아키텍처의 라이선스를 얻는 한편, 팰러앨토에 있는 사원 150명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회사 P.A. 세미를 인수하고 그들에게 A4라는 맞춤형 SoC를 개발하게 했다. A4는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국의 삼성에서 제조되었다."

그는 인텔을 택하지 않은 이유로 "그들이 정말 느리다는 것"과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싶진 않다는 점"을 꼽아 삼성이 상대적인 속도 경쟁력을 갖췄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밖에 아이맥 제작 과정에서는 "아이브의 팀은 한국 제조 업체와 협력해 케이스 생산 공정에 완벽을 기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944쪽. 2만5천원.

mihye@yna.co.kr

내가 만난 스티브 잡스…그는 마니아에게 神이었다

◆ IT전설 잡스 잠들다 ◆

그가 연단에서 내려왔을 때 수천 명의 청중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의 옷깃만 스쳐도 병이 나을 것 같이 느끼는 병자들처럼, 사람들은 앞다퉈 그의 몸에 손을 갖다댔다. 마치 성경 속 예수를 만지려는 유대와 사마리아의 백성들처럼. 스티브 잡스! 그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에게 그는 신과 다름없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애플 맥월드에선 해마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된다.

기자가 2008년 1월 맥월드 취재를 갔을 때도, 스티브 잡스가 기조연설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청중은 순식간에 그를 에워싸고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기자도 그의 등에 손을 갖다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스티브 잡스의 옆에는 그의 절친, 래리 페이지(구글 창업자)가 자리했다.

"당신의 스피치는 들을 때마다 감동 그 자체야." 래리 페이지의 말에 스티브 잡스는 "스피치도 중요하지만 제품으로 감동을 줬으면 좋겠어"라고 답했다.

둘 사이의 짧은 대화에 청중은 또 한 번 눈시울을 적셨다.

당시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아이폰 열풍이 확산일로에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인상적인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즉석에서 아이폰으로 해당 노래를 검색하고 다운받는 장면이 일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낯설기만 했던 그 광경이 기자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면에서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혁신 제품을 내놓고 많이 팔기만 하는 장사꾼이 아니었다. 사람들 감성과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그들의 행동양식을 바꿔놓는 '라이프 스타일 창조자'였던 것이다.

2007년 10월, 기자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당시 전무)을 만났을 때 이 사장은 스티브 잡스를 "천재"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삼성이 주요 공장에 '캠퍼스'란 명칭을 달았던 것도 어찌 보면 애플의 창조적 공간을 본받기 위한 시도 중 하나였다.

세월이 흘러 삼성과 애플이 '특허전쟁'을 펼치고 있는 현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삼성이 유럽의 심장부(파리ㆍ밀라노)에서 애플을 상대로 사상 최대 규모 '특허전쟁'을 선포한 직후, 스티브 잡스가 숨을 거뒀다는 뉴스가 발표됐다. 두 회사의 명운을 건 '전쟁'을 뒤로하고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 철학자이기도 했다.

"매일을 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란 믿음을 갖자."

현재에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과 진실된 생각, 인간관계는 미래 어느 시점에 반드시 빛을 보게 될 것이란 믿음.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우리가 매일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영원한 자양분으로 남았다.

[남기현 증권부 기자]

[우리들의 생각] IT천재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②

▶ 이정현 객원기자(경기 오마중 3년)

10월 5일. 'IT 천재'의 죽음에 전 세계가 슬픔에 잠겼다. 개인용 컴퓨터(PC) 시대의 서막을 열었고 세계 최초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1'의 출시 이후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매번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는 혁신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얼마나 더 기발한 아이디어로 우리들에게 환희를 안겨줄까 기대했던 필자로선 조금은 이른 그의 작고(作故)가 안타깝기만 한다.

'Apple'을 연상하면 단순, 세련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애플社의 제품들에 담겨 있는 '절제된 아름다움.' 그 디자인의 원천이 스티브 잡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는 다분히 엔지니어라는 명칭보다는 예술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예술과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잡스의 철학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우리에게 누구보다도 먼저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 주었다.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만일 그가 없었더라면, 아마 사람들은 아직 '감성'과 '기술'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분야라고 생각하며 삭막함 속에서 기기들을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세계의 판도를 바꾼 3개의 사과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이브의 사과'. 두 번째는 '뉴턴의 사과', 세 번째는 바로 위대한 IT 거인 '스티브 잡스의 사과'다. 지금의 명품 '사과'에 이르기까지 굴곡 많은 인생을 펼쳐왔던 잡스. 그의 혁신을 기리며 우리 모두 Stay hungry. Stay foolish(갈망하고 우직하게 일하라).

▶ 류승언 객원기자 (보성고 2년)

애플 CEO인 스티브 잡스의 죽음은 전 세계에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가 말했듯이 '죽음은 인생의 최고 발명품'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일생 동안 남겼던 것은 무엇일까? 대개 사람들은 그가 그저 IT의 혁신을 가져온 CEO라고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에 불과할 뿐 그가 지금처럼 IT의 거장이 될 수 있었던 삶의 진리에 대해서는 얘기해주지 못한다. 그는 어느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되기 이전에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친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입양되어 파란만장한 '경영'이 시작되었다. 바로 '인생'이란 기업을 차려서. 그는 CEO로서 그저 단순한 이윤추구에 머무르지 않고 위험을 즐기는 새로운 도전과 혁신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인생 자체가 줄타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위태로우면 위태로울수록 더욱더 새로운 것을 갈망했다.

우리도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는 험난한 세상에서 배수진을 치며 하루빨리 위기를 기회를 바꾸는 혁신적인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다지며 그의 죽음을 기려야 할 것이다.

▶ 박준형 객원기자(한영외고 2년)

난 천재들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만큼은 정말 존경한다. 왜냐하면 모든 분야에서 그가 살았던 시대와는 다른 차원을 산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빈치라는 사람은 천재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하다. 그 이유를 '천재를 이긴 천재들'이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스티브 잡스라는 걸출한 경영인이 세상을 등져 안타까움과 더불어 그의 업적을 평가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나 또한 그의 경영관과 뛰어난 창의력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천재 다빈치와 비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선 분야가 다르고, 삶이 다르고, 이룬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빈치는 예술과 자연과학에 업적을 남긴 반면 잡스는 워즈니악과 같은 뛰어난 기술자 동료와 협력하며 자신은 경영에 힘썼고, 다빈치는 어렸을 적부터 천재로 불리며 고고한 삶을 살았지만 잡스는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 또 췌장암이라는 가혹한 병에 걸리는 등 수많은 시련과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았다. 사실 이 두 천재들을 비교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을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각각의 시대에 맞게, 또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는 업적을 쌓았으니까. 다만 그 둘의 남다른 창의력만큼은 닮지 않았나 생각한다.


[해외논단] 국가운영 잡스를 배워라

[세계일보]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번영의 엔진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처럼 자본주의 역시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자유시장은 가난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한 자유시장은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가장 윤리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밀턴 R 울프 美 칼럼니스트
자유시장은 자유인들에 의해 구성된다. 위협에서 해방된 자유인들이 이익을 목표로 아이디어와 노력 및 재산을 자발적으로 교환하는 것이 자유시장이다. 다만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그런 교환이 이뤄져야 한다. 

개인의 합리적인 이기심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봉사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유시장에서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즉 자신의 바람과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윤리적 기반을 이룬다. 

자본주의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거인인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같은 영웅을 생략하고 할리웃이 만든 가공의 인물인 고든 게코를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간주한다. 영화 “월스트리트”의 주인공인 게코는 탐욕을 합리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탐욕이 옳고 좋은 것이며 효과를 발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탐욕은 좋은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탐욕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장기적으로 볼 때 그렇다. 탐욕은 자본주의가 아니고 비합리적인 이기심이다. 탐욕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비해 합리적 이기심은 남에게 먼저 봉사한다. 자신의 이익은 나중에 돌아오는 결과다. 

탐욕은 일시적 성공을 거둘 뿐이다. 고든 게코가 그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투자 전문가 버니 메이도프와 엔론의 켄 레이처럼 탐욕 때문에 범법행위를 일삼는 사람들 역시 탐욕의 말로를 상기시킨다.

자유시장에서 영속적인 성공을 거두는 데는 타인에 대한 봉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혼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즉 잡스가 아무런 이기적인 이유 없이 아이폰과 아이포드를 사람들에게 공급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풍부한 보상이 동기로 작용했다. 

그는 희생자들을 농락해서 억만장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수억 명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켰다. 그것이 열쇠다. 잡스 표 봉사는 자본주의의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우리의 생활을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시킨 사례를 보자. 빌 게이츠는 PC를 개발하여 우리가 더 큰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다. 샘 월튼은 과거 부유층만 소비했던 고급제품을 일반인들에게 공급하는 길을 열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었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재산을 모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런 부자들은 정부의 구제금융이나 보조금 혹은 대출 보증을 받지 않고 그런 일을 해냈다. 공공분야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오바마의 경기부양 정책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이런 자유시장의 여러 원칙이, 보잘것없는 식민지였던 미국을 번영하는 강대국으로 발전시켰다. 지난 세기에 중국의 공산주의 정권조차도 자유시장 원칙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여 수억 명의 사람을 가난에서 구제하여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빈곤퇴치에 성공했다. 

또한 다음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도록 돕는 것이 잡스의 꿈이었다. 그가 만든 아이폰은 세계에서 수억 대가 팔렸지만 2개가 동일한 사례는 없다. 아이폰의 세상에서는 개인이 주인이다. 경이적인 디지털 기술 덕분에 사람들은 주류 언론매체의 정보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지 않아도 원하는 음악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잡스는 이처럼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여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도왔으나 자유의 땅인 미국에서는 정부가 상명하복식의 일률적인 복종을 시민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비극적인 역설이다. 

밀턴 R 울프 美 칼럼니스트

워싱턴 타임스·정리=오성환 외신전문위원

Steve Jobs, billionaire capitalist 
By Dr. Milton R. Wolf

Capitalism is the most powerful engine for prosperity in the history of humankind. Though imperfect, as are all human constructs, the free market is still the most effective antidote to poverty and, what's more, it's the most moral method for allocating scarce resources. As we were reminded by the late Steve Jobs, co-founder of Apple, titan of industry and unapologetic capitalist, it's pretty darn cool, too.

The free market is really nothing more than free people - consenting adults - who, unleashed from coercion, are allowed to voluntarily exchange their ideas, efforts and property when it benefits them to do so, assuming it harms no one else in the process. Each person's rational self-interest ultimately serves not just the individual, but society as a whole because to achieve sustainable success in the free market - in other words, to satisfy your own wants and needs - you must first satisfy someone else's. This forms the moral basis of capitalism, and Jobs did this amazingly well.

Detractors (and misguided proponents) of capitalism skip over real heroes like Jobs and resort to a decades-old fictitious Hollywood character as their personification of capitalism: Gordon Gekko from the 1987 movie "Wall Street." Clad with preppy suspenders and a $6,000, 12-pound brick of a cellphone - available only to the richest few despite its notable absence of email, music playlists and Angry Birds - Gekko is most famous for his greed-is-good speech. "Greed - for lack of a better word," Gekko rationalized, "is good. Greed is right. Greed works."

No. Greed is not good. Greed is not right. And greed most certainly does not work, at least not for long. Greed is not capitalism; it is irrational selfishness. Greed seeks to serve oneself at the expense of others, whereas rational self-interest, the basis of capitalism, seeks to serve others first in order to serve oneself only later as a consequence. Greed, at best, succeeds only temporarily, as we're reminded by Gordon Gekko himself or other all-too-real perpetrators of greed like investor Bernie Madoff or Enron's Ken Lay.

Lasting success in the free market requires service to others, but don't be confused. Jobs did not provide us with his amazing iPhones, iPads and iPods for purely selfless reasons. In fact, it would be outright selfish of us to have expected him to do so. Instead, he was motivated, at least in part, by rich rewards. He became a billionaire not by fooling victims, but instead by making hundreds of millions of lives better. That's the key.

Jobs' brand of serving others is the rule of capitalism, not the exception. Look at how the wealthiest Americans throughout history each made our lives immeasurably better: Bill Gates unlocked the personal computer and empowered us all. Sam Walton provided affordable consumer goods that previously were available only to the better off. Along the way, those men created hundreds of thousands of jobs and empowered millions more to create their own wealth. What's more, they did so without federal bailouts, subsidies, loan guarantees or even President Obama's shovel-ready stimulus slush fund.

Rational self-interest is nothing new, of course. Adam Smith (the father of capitalism) described it more than two centuries ago: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self-interest. We address ourselves, not to their humanity but to their self-love, and never talk to them of our own necessities but of their advantages."

These free-market principles unleashed America's meteoric rise from a small band of Colonies to the most prosperous and powerful nation ever. In the last century, even the unlikely communist regime in China began adopting some free-market principles and lifted hundreds of millions of poor souls out of poverty, the most ever in world history.

History continues to be made. Jobs' amazing smartphones, personal music players and individualized computers were themselves never his goal but were merely the means to his greater vision of personal empowerment: a world of information, connectivity and even entertainment right at your fingertips, and for good reason. "Steve was very fast thinking and wanted to do things; I wanted to build things," explained an early partner.

Jobs' dream was to empower you to personalize or even create your own world. Consider this: A hundred million iPhones have been sold worldwide so far and, like snowflakes, no two are alike. Individuality rules. With his digital marvels, you are no longer limited only to the mainstream information that some newscaster feels you need. You don't even have to accept the song choices of some radio station. Meanwhile, the tragic irony is that while Jobs empowered individuality and dared each of us to be the captains of our own destinies, America, land of the free, is beset with a government that demands our submission to its top-down, one-size-fits-all rules from banking to health care and everything in between.

Apple exploded onto the national scene in the fateful year of 1984 with the iconic Superbowl halftime commercial featuring a young, rebellious woman demolishing the dystopia created by Big Brother, the personification of an overbearing government in George Orwell's novel. It may as well have been Jobs himself who hurled that hammer into the video screen and freed us all. Apple co-founder Steve Wozniak later spoke of another dystopian novel, this one by Ayn Rand that, like Orwell's, warned that powerful governments smother individual freedom. Wozniak said of his friend: "I think 'Atlas Shrugged' was one of his guides in life."

Godspeed, Steve Jobs, modern face of individuality, of capitalism. You made our world immeasurably better by reminding us that free minds and free markets are effective, moral and downright cool. iThank you.

<아이작슨 `잡스는 설득력있는 이야기꾼'>
(뉴욕 AP=연합뉴스)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은 26일(현지시간) 잡스의 전기를 쓰려고 그를 인터뷰할 때 "나는 듣지만 했다"고 밝혔다.

   아이작슨은 이날 인터뷰에서 40번 이상 대화를 나눈 잡스가 아주 설득력 있는 이야기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아이작슨은 잡스의 부인 로렌 파월로부터 지난 2009년 "스티브에 관한 책을 여전히 쓸 생각이 있다면 지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전기 작업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잡스의 부인 파월이 전기 집필을 권한 시점은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잡스가 그해 1월 병가를 내고 간 이식 수술을 받은 후 6월에 회사로 복귀한 직후였다.

   아이작슨은 잡스의 전기를 집필하는 과정 대부분에 "그(잡스)는 아프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잡스의 가정적인 면을 다시 한번 소개했다. 아이작슨은 "그(잡스)는 매일 저녁 아내 및 아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았고, 사람을 사귀는 모임이나 공식 만찬 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하는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여행도 많이 하지 않았고, 업무에 열중했지만 저녁식사는 항상 집에서 했다"고 덧붙였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없는 애플이 계속 잘 나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잡스)의 위대한 발명품이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창의성을 훌륭한 공학에 연결하게 하는 한 회사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애플이 적어도 잡스 밑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bondong@yna.co.kr

 
<아이작슨 `잡스는 설득력있는 이야기꾼'>
(뉴욕 AP=연합뉴스)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은 26일(현지시간) 잡스의 전기를 쓰려고 그를 인터뷰할 때 "나는 듣지만 했다"고 밝혔다.

   아이작슨은 이날 인터뷰에서 40번 이상 대화를 나눈 잡스가 아주 설득력 있는 이야기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아이작슨은 잡스의 부인 로렌 파월로부터 지난 2009년 "스티브에 관한 책을 여전히 쓸 생각이 있다면 지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전기 작업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잡스의 부인 파월이 전기 집필을 권한 시점은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잡스가 그해 1월 병가를 내고 간 이식 수술을 받은 후 6월에 회사로 복귀한 직후였다.

   아이작슨은 잡스의 전기를 집필하는 과정 대부분에 "그(잡스)는 아프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잡스의 가정적인 면을 다시 한번 소개했다. 아이작슨은 "그(잡스)는 매일 저녁 아내 및 아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았고, 사람을 사귀는 모임이나 공식 만찬 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하는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여행도 많이 하지 않았고, 업무에 열중했지만 저녁식사는 항상 집에서 했다"고 덧붙였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없는 애플이 계속 잘 나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잡스)의 위대한 발명품이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창의성을 훌륭한 공학에 연결하게 하는 한 회사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애플이 적어도 잡스 밑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bondong@yna.co.kr

 
"잡스, 투병 중에도 디자인에 집착"(종합2보)
베일 벗은 스티브 잡스 전기
(서울=연합뉴스)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 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2011.10.24 << 민음사 제공 >> photo@yna.co.kr

스티브 잡스 전기 24일 전세계 동시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40여 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이 전기는 잡스가 생전에 직접 아이작슨에게 의뢰해 집필된 것으로, 아이작슨은 집필을 위해 2009년부터 2년간 40여 차례에 걸쳐 잡스를 인터뷰하고, 그의 친구, 가족, 동료, 라이벌 등 100여 명의 주변 인물들을 만났다.

   그가 만난 사람 중에는 잡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주 빌 게이츠,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니브, 애플 후계자 팀 쿡 등이 포함돼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잡스의 어린시절부터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잡스의 내밀한 개인사는 물론, 애플의 창업과 성장사,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의 탄생 비화, 절제와 완벽주의로 상징되는 그의 경영 비법 등 잡스와 애플의 모든 것이 담겼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추천사에서 "지금까지 잡스가 만든 제품과 애플의 경영 전략에 관심을 둔 책은 많았어도 그가 진정 어떤 인물이었는지 진지하게 접근한 책은 없었다"며 "이 책은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으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보여 주며, 그가 창조성의 아이콘이 된 원천을 밝혀낸다"고 소개했다.

   ◇잡스의 삶과 가치관.."양부모는 1000% 제 부모님" = 어린 시절 입양된 잡스는 자신을 키워준 부모를 누군가가 '양부모'라고 부르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들은 1000% 제 부모님"이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반면 생부모에 대해서는 "그들은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후에 잡스는 생모 조앤 심프슨에게 직접 전화를 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는데 "잘 지내고 계신지 확인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며 "낙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일이 고맙게 여겨졌다"고 전했다.

   그가 선불교와 극단적인 채식주의에 빠지게 된 사연도 등장한다.

   인도 순례 여행을 다녀온 후 잡스는 "서구 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다"며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선불교는 제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구술했다.

   일례로 잡스는 컴퓨터 내부의 팬이 내는 소음은 정신 집중을 방해해 선불교의 정신과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팬이 필요 없는 전원 공급 장치를 원했다.

   또 선불교의 영향으로 물질적 소유에도 무관심해 사는 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고 가구도 거의 없이 단출했다. 집이 너무 검소해서 방문했던 빌 게이츠가 당황하며 "가족 모두가 여기서 사는 거예요?"라고 물었을 정도란다.

   이와 함께 잡스는 프랜시스 무어 라페의 '작은 지구를 위한 식습관'과 아르놀트 에렛의 '디톡스 식습관의 치유 체계' 등을 읽으면서 야채와 과일만 먹는 채식에 빠져들었고 아울러 장기 단식을 정기적으로 단행함으로써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일 위주의 채식주의 식습관이 해로운 점액뿐 아니라 체취도 막아준다고 믿어, 체취 제거제를 쓸 필요도, 정기적으로 샤워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학창시절 환각제의 일종인 LSD를 체험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였다"며 " LSD는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고 회상했다.

   ◇완벽주의와 미니멀리즘..병상서 "디자인 마음에 안들어 마스크 5개 가져오라" = 책 속에는 특히 완벽주의자로서의 잡스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가 다수 소개된다.

   제품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을 쓰는 잡스 특유의 완벽주의는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장롱이나 울타리 같은 것을 만들 때는 안 보이는 뒤쪽까지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철학의 가장 극단적이고 두드러진 실천 사례는 잡스가 칩과 다른 부품들을 부착하고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회로 기판을 철저하게 검사한 경우였다. 어떠한 소비자도 그걸 볼 일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인쇄회로 기판에 대해 "저 부분 정말 예쁘네. 하지만 메모리칩들을 좀 봐. 너무 추하잖아. 선들이 너무 달라붙었어"라는 식으로 심미학적인 비평을 하기도 했다.

   잡스는 심지어 투병 중에도 디자인에 집착했다.

   "한번은 잡스가 매우 안정적인 상태일 때 폐 전문의가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했다. 그러나 잡스는 그것을 벗겨 내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그러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겠다고 지시했다." 
또 애플의 제품 디자인에서 드러나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은 그가 일하던 비디오 게임 제조회사 아타리 게임의 단순함과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클러 주택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아이패드에 삼성 칩 쓰게된 사연.."인텔은 너무 느려" = 책에는 애플이 아이패드에 삼성의 칩을 사용하게 된 사연도 나온다.

   잡스는 당초 아이패드에 인텔이 개발 중인 낮은 전압의 아톰 칩을 사용하려 했는데, 아이팟 부분 수석 부사장이었던 토니 파델은 보다 단순하고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ARM 아키텍처 기반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잡스는 손을 들었다. '알겠네. 최고의 부하들을 거스를 순 없지.' 그러고는 아예 반대 방향의 극단으로 내달렸다. 애플은 ARM 아키텍처의 라이선스를 얻는 한편, 팰러앨토에 있는 사원 150명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회사 P.A. 세미를 인수하고 그들에게 A4라는 맞춤형 SoC를 개발하게 했다. A4는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국의 삼성에서 제조되었다."
그는 인텔을 택하지 않은 이유로 "그들이 정말 느리다는 것"과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싶진 않다는 점"을 꼽아 삼성이 상대적인 속도 경쟁력을 갖췄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밖에 아이맥 제작 과정에서는 "아이브의 팀은 한국 제조 업체와 협력해 케이스 생산 공정에 완벽을 기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944쪽. 2만5천원.

   mihye@yna.co.kr
스티브 잡스 전기 24일 전세계 동시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40여 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이 전기는 잡스가 생전에 직접 아이작슨에게 의뢰해 집필된 것으로, 아이작슨은 집필을 위해 2009년부터 2년간 40여 차례에 걸쳐 잡스를 인터뷰하고, 그의 친구, 가족, 동료, 라이벌 등 100여 명의 주변 인물들을 만났다.

   그가 만난 사람 중에는 잡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주 빌 게이츠,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니브, 애플 후계자 팀 쿡 등이 포함돼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잡스의 어린시절부터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잡스의 내밀한 개인사는 물론, 애플의 창업과 성장사,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의 탄생 비화, 절제와 완벽주의로 상징되는 그의 경영 비법 등 잡스와 애플의 모든 것이 담겼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추천사에서 "지금까지 잡스가 만든 제품과 애플의 경영 전략에 관심을 둔 책은 많았어도 그가 진정 어떤 인물이었는지 진지하게 접근한 책은 없었다"며 "이 책은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으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보여 주며, 그가 창조성의 아이콘이 된 원천을 밝혀낸다"고 소개했다.

   ◇잡스의 삶과 가치관.."양부모는 1000% 제 부모님" = 어린 시절 입양된 잡스는 자신을 키워준 부모를 누군가가 '양부모'라고 부르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들은 1000% 제 부모님"이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반면 생부모에 대해서는 "그들은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베일 벗은 스티브 잡스 전기
(서울=연합뉴스)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 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잡스의 어린시절. 2011.10.24 << 민음사 제공 >> photo@yna.co.kr

   후에 잡스는 생모 조앤 심프슨에게 직접 전화를 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는데 "잘 지내고 계신지 확인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며 "낙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일이 고맙게 여겨졌다"고 전했다.

   그가 선불교와 극단적인 채식주의에 빠지게 된 사연도 등장한다.

   인도 순례 여행을 다녀온 후 잡스는 "서구 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다"며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선불교는 제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구술했다.

   일례로 잡스는 컴퓨터 내부의 팬이 내는 소음은 정신 집중을 방해해 선불교의 정신과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팬이 필요 없는 전원 공급 장치를 원했다.

   또 선불교의 영향으로 물질적 소유에도 무관심해 사는 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고 가구도 거의 없이 단출했다. 집이 너무 검소해서 방문했던 빌 게이츠가 당황하며 "가족 모두가 여기서 사는 거예요?"라고 물었을 정도란다.

   이와 함께 잡스는 프랜시스 무어 라페의 '작은 지구를 위한 식습관'과 아르놀트 에렛의 '디톡스 식습관의 치유 체계' 등을 읽으면서 야채와 과일만 먹는 채식에 빠져들었고 아울러 장기 단식을 정기적으로 단행함으로써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일 위주의 채식주의 식습관이 해로운 점액뿐 아니라 체취도 막아준다고 믿어, 체취 제거제를 쓸 필요도, 정기적으로 샤워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학창시절 환각제의 일종인 LSD를 체험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였다"며 " LSD는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고 회상했다.

   ◇완벽주의와 미니멀리즘..병상서 "디자인 마음에 안들어 마스크 5개 가져오라" = 책 속에는 특히 완벽주의자로서의 잡스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가 다수 소개된다.

베일 벗은 스티브 잡스 전기
(서울=연합뉴스)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24일 오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20여개 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전문 번역가 안진환 씨가 번역해 총 944쪽 분량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1996년 잡스 모습. 2011.10.24 << 민음사 제공 >> photo@yna.co.kr

   제품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을 쓰는 잡스 특유의 완벽주의는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장롱이나 울타리 같은 것을 만들 때는 안 보이는 뒤쪽까지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철학의 가장 극단적이고 두드러진 실천 사례는 잡스가 칩과 다른 부품들을 부착하고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회로 기판을 철저하게 검사한 경우였다. 어떠한 소비자도 그걸 볼 일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인쇄회로 기판에 대해 "저 부분 정말 예쁘네. 하지만 메모리칩들을 좀 봐. 너무 추하잖아. 선들이 너무 달라붙었어"라는 식으로 심미학적인 비평을 하기도 했다.

   잡스는 심지어 투병 중에도 디자인에 집착했다.

   "한번은 잡스가 매우 안정적인 상태일 때 폐 전문의가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했다. 그러나 잡스는 그것을 벗겨 내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그러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겠다고 지시했다." 
또 애플의 제품 디자인에서 드러나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은 그가 일하던 비디오 게임 제조회사 아타리 게임의 단순함과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클러 주택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아이패드에 삼성 칩 쓰게된 사연.."인텔은 너무 느려" = 책에는 애플이 아이패드에 삼성의 칩을 사용하게 된 사연도 나온다.

   잡스는 당초 아이패드에 인텔이 개발 중인 낮은 전압의 아톰 칩을 사용하려 했는데, 아이팟 부분 수석 부사장이었던 토니 파델은 보다 단순하고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ARM 아키텍처 기반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잡스는 손을 들었다. '알겠네. 최고의 부하들을 거스를 순 없지.' 그러고는 아예 반대 방향의 극단으로 내달렸다. 애플은 ARM 아키텍처의 라이선스를 얻는 한편, 팰러앨토에 있는 사원 150명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회사 P.A. 세미를 인수하고 그들에게 A4라는 맞춤형 SoC를 개발하게 했다. A4는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국의 삼성에서 제조되었다."
그는 인텔을 택하지 않은 이유로 "그들이 정말 느리다는 것"과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싶진 않다는 점"을 꼽아 삼성이 상대적인 속도 경쟁력을 갖췄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밖에 아이맥 제작 과정에서는 "아이브의 팀은 한국 제조 업체와 협력해 케이스 생산 공정에 완벽을 기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944쪽. 2만5천원.

   mihye@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10/24 20:4

 

[스티브 잡스 전기]두 가지 유산은 혁신 선도 제품과 영속적인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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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 많은 사람들 역시 인류에게 무언가 기여하기를, 그러한 흐름에 무언가 추가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준 원동력이다.”

전기의 마지막 장에는 ‘무엇이 자신의 유산이 되길 바라는지’에 대해 스티브 잡스가 직접 쓴 글이 실려 있다.

잡스는 두 가지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다. 

혁신을 선도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과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다.

“동기가 충만한 사람들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에 내 열정을 쏟아왔다.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2순위였다. 물론 이윤을 내는 것도 좋았다. 그래야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 동기 부여였다.”

잡스는 “스컬리(잡스가 영입했던 전 애플 CEO)는 이러한 우선순위를 뒤집어 돈 버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비난했다. 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역시 ‘사업에서 승리하는 것을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시했다’”고 평했다.

잡스는 그의 유산에 대해 말하며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도 언급했다. “폴라로이드의 에드윈 랜드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대해 애기했다. 나는 그 교차점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마법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 (중략) 애플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의 혁신에 깊은 인간애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잡스는 책의 말미에서 월터 아이작슨과 죽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잡스는 꿈의 인터뷰 상대이자, 프리마돈나였다"



'포춘' 기자 슐렌더가 공개한 '절친 잡스와 나'

기사를 쓸때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상상속 경이로운 제품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였다

그는 마치 록스타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가능한 한 많은 청중에게 들려지기를 원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담당기자였던 브렌트 슐렌더(포춘 기고가)는 잡스가 마치 '록스타'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가능한 한 많은, 가능한 한 최고의 청중들에게 들려지기를 원했다고 전했다.

슐렌더는 20년 넘게 취재한 잡스의 삶과 개인 소장 사진 일부를 포춘최신호에 공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포춘코리아 11월호에 따르면 슐렌더는 잡스의 화려한 경력에 대한 심층 기사를 썼던 기자들 중 대부분은 '우리가 하나의 현대적 신화를 만드는 일에 공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포춘에 기고한 글에서 "잡스가 클루니처럼 카리스마 넘치고 마키아벨리처럼 교활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잡스가 만든 전설은 그의 자아를 부풀리는 것외에 많은 목적에 이용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잡스를 '자신의 상상 속에서 넘쳐나는 경이로운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서는, 그 세대를 지배하는 디지털 혁명의 조종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그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볼 수 없는 큰 그림을 그려낸 가장 세밀한 관리자였다'고 평했다.

잡스는 그러나 정말 좋아했던 멋진 걸프스트림 제트기 외에는 어떤 것에도 결코 만족한 적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었을 때야말로 여러 모로 완전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잡스는 가끔씩 다른 사람들을 아주 냉혹하게 착취했다.

슐렌더는 포춘에 기고한 글에서 잡스와 알고 지낸 지난 25년을 이렇게 회상했다.

잡스의 전설은 지난 몇 년간 너무나 판에 박힌 뻔한 이야기 같을 때가 많았다. 또 많은 면에서 잡스는 그런 식을 좋아했다.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기사를 쓸 때 가장 큰 문제는 그가 기사로 알리기로 선택한 것이 무엇이든, 컴퓨터 마우스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든, 픽사 영화든, 그것에 대한 열망을 펼쳐 보이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묘사할 수 있는, 적절하고 독창적인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었다. 

컴퓨터업계 '수석 미학의 책임자'

잡스가 싫어했던 말은 '걸으면서 말하는 현실 왜곡의 장 reality distortion field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믿게 만드는 잡스의 능력을 일컫는 말)'이라는 표현이다. '뻔뻔하다' '변덕스럽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까다로운 성격을 묘사할 때 매우 자주 사용했다. 그의 재능과 괴팍함은 아주 다양하고, 상호 보완적이어서 그의 천재성을 묘사할 때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사용됐다. 

슐렌더는 포춘 커버스토리에서 애플의 잡스를 컴퓨터 업계의 '수석 미학 담당 책임자', 픽사의 잡스를 '가상 현실의 독창적 기획자'라고 표현했다. 또 애플 성장에 터보 엔진 역할을 한 아이팟을 공개하기 전인 2000년대 초반, 힘들었던 그 시기에 잡스를 '찌그러져 가는 왕국의 늙어가는 왕자'라고 놀렸다. 그 기사를 본 '뻔뻔하고 변덕스러운' 잡스는 곧바로 슐렌더에게 전화를 걸어 '그걸 보고 얼마나 유쾌하게 웃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포춘코리아에 따르면 슐렌더가 잡스를 처음 만난 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시절인 1987년 2월이다.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애플 동료들과 함께 새 컴퓨터 회사 '넥스트'를 창업했고, 1986년에는 나중에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될 디지털 애니메이션 전문 회사를 조지 루카스에게서 1,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잡스는 넥스트와 픽사를 홍보하고, 비즈니스 및 기술 석학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남기기 위해 월스트리트저널의 애플 담당기자인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슐렌더는 술회했다.


답변은 늘 직설적지만 날카로워

그는 1989년 포춘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월스트리트저널에 넥스트와 픽사에 대한 장편 기사를 여러번 썼는데, 그때 잡스와 개인적으로 잘 맞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이도 같고,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책, 영화, 음악에 대한 취향도 놀라울 정도로 두 사람이 비슷했다. 만난 지 몇 년 후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 슐렌더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잡스의 여동생인 소설가 모나 심슨과 거의 결혼할 뻔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슐렌더는 항상 기자였고 잡스는 취재대상이었다. 잡스는 마치 '록스타'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가능한 한 많은, 가능한 한 최고의 청중들에게 들려지기를 원했다.

슐렌더는 "나는 잡스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더 큰 것을 향해 가고, 그리고 맨 앞자리를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우리의 사회적 개인적 관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언론적인 거래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모든 거래가 잡스를 만족시킨 것은 아니었다. 기자 슐렌더의 목표는 잡스를 만나면 비즈니스나 기술, 예술, 정치 및 시사, 심지어 그의 개인사에 대해서까지 즉흥적으로 묻고 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를 종합하면 잡스의 답변과 분석은 늘 직설적이었지만, 그만큼 날카로웠다. 잡스의 통찰력과 지성의 진정한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적에 대한 그의 집착이, 뛰어난 그의 머리를 돋보이지 않게 하는 위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포춘 본사의 간부들도 잡스를 만나기 위해 슐렌더(기자)를 활용하기도했다. 슐렌더는 "나의 상사들이 잡스 인터뷰 장소에 함께 가기 위해 출장을 올 정도였다"며 "타임의 편집장인 존 휴이는 2003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에서 나와 함께 잡스를 만난 적이 있었다"고 적었다.

휴이 편집장은 당시 잡스와 만나 포춘의 모기업인 AOL 타임 워너의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을 요청했다. 잡스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휴이 편집장을 쳐다보고는 '백미러로 사물을 보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인지에 대해 중얼거렸다. 그러곤 20분 동안 전화접속 인터넷 서비스인 AOL의 비즈니스 모델이 왜 부적당하며, 훨씬 더 전망 있는 광대역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을 둔화시킬 수밖에 없는지를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 또 온라인 콘텐츠를 우편엽서 만들듯이 하는 AOL의 행태가 얼마나 가망 없는 지난 세기의 방식인지 신랄하게 비판했다.

슐렌더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휴이 편집장이 잡스의 조언을 들은 뒤 "그 말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로 들리는데"라고 하자, 잡스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다만 관심이 없을 뿐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화이트보드로 걸어가서 15분 동안 AOL을 미디어 회사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그렸다. 실제로 잡스가 그린 전략은 수년 후 타임 워너에서 분사한 AOL이—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긴 했지만—결국 따르게 된 과정이었다.

1995년 애플 인수 암시 받아

슐렌더는 잡스와의 만남은 항상 재미있지만은 않았다고 회상했다.

1995년 크리스마스 다음 일요일이었다. 잡스가 자기 집으로 불렀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나 필립스 NV가 어려움에 처한 애플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리던 때였다. 잡스는 가장 친한 친구인 오라클의 설립자 겸 CEO 래리 엘리슨과 함께 애플을 인수할지 심사숙고 중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그건 이상한 전략 같았다. 나는 그에게 문제를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잡스는 그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에게 비밀유지 맹세를 하게 한 후 밖으로 나와 내 차까지 배웅해 주었다. 커브에 주차된 낡은 1976 도요타 셀리카를 본 그가 갑자기 말했다. '아이들을 저 차에 태우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농담 아니다. 그 차는 에어백도 없다. 폐차시켜버려라'고.

1년 후인 1996년 말, 잡스는 엘리슨과 함께 애플을 인수하는 대신, 애플 CEO 길 아멜리오를 설득해 4억 달러에 넥스트를 인수하게 하고 자신은 특별 고문에 앉았다. 그리고 잡스가 쿠데타를 기획하고, 자신의 넥스트팀을 경영진에 앉히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7개월이 소요됐다. 소위 '방황의 시기'가 끝나고 스티브 잡스 신화의 속편이 시작되고 있었다.

포춘코리아판에 따르면 슐렌더(기자)는 그 후 7년간 잡스의 변혁적인 리더십에 대한 커버스토리를 4편이나 썼고, 다른 기사들도 내보냈다. 잡스는 포춘에 맥 OS X운영체제를 최초로 볼 수 있는 독점 권한을 주었다. 또한 2001년 아이팟이 공개되기 수주일 전에 첫 아이팟을 보여주었다. 이유는 그의 제품 소개 발표에 대한 평가를 듣기 위해서였다. 잡스는 또 1년 후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 온라인 출범 전에 포춘에 이 사실을 처음 알려주었다.

포춘코리아는 잡스가 포춘의 몇 기사에서는 심각하게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럴 때마다 그 불만을 맨 처음 듣는 사람은 슐렌더(기자)였다. 포춘이 2001년 6월 '위대한 CEO, 연봉 절도의 내막 Inside the Great CEO Pay Heist'이라는 커버스토리의 이미지로 그를 사용했을 때, 잡스는 포춘에 애플 광고를 영원히 싣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슐렌더는 잡스에게 포춘 편집장에게 편지를 써 문제의 기사가 자신을 부당하게 폄하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라고 했다.

슐렌더가 잡스에게 어느 유명인보다 더 강한 애착을 느낀 것은 동병상련 때문이다. 15년 전 첫 심장마비를 겪었을 때 잡스는 병실에 전화를 걸어와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그를 호되게 나무랐다. 6년 전에 인공심장판막에 생긴 염증이 뇌척수막염으로 발전하면서, 슐렌더는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다. 이로 인해 청력을 상당부분 잃었다. 그때 5주 동안 병원에 있었는데, 잡스는 두 번이나 병문안을 왔고,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 주었다.

2008년 우연한 기회에 병 알게돼

슐렌더(기자)가 잡스의 병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서 퇴원한 슐렌더는 '어떤 기업가들은 자신들이 세운 기업보다 더 빠르게 비즈니스 리더로서 성공하는가'라는 주제로 책'파운더스 키퍼스 Founders Keepers'을 기획했다. 그때 잡스는 빌 게이츠, 마이클 델, 앤디 그로브와 함께 그 책의 주요 취재 대상이 되기로 했다.

2008년 11월말 실리콘 밸리에서 취재대상들을 모두 함께 만나 원탁 토론을 하기로 했는데, 회의 1주일 전, 잡스가 전화를 걸어 "이러고 싶진 않지만, 그 회의에서 빠져야겠어"라고 통고했다. 청각 상실로 끼게 된 보청기 때문에 그렇게 들렸는지 모르지만, 잡스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잠겨 있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회의를 취소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을 거라고 믿네. 나는 내 건강 문제의 진짜 원인을 알아내야 해. 지금 누굴 만날 상태가 아니야. 추수감사절 후에 장기 병가를 낼 거야." 

3주 후 잡스는 간 이식수술을 받았다. 그 후 두 사람은 진지한 이야기를 몇 번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고 포춘코리아판은 전했다

그리고 3년 후 잡스는 세상을 떠났다. 슐렌더는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스티브 잡스는 분명 기자들에게 꿈의 인터뷰 상대이자 살아 있는 전설, 프리마돈나였다. 그는 자신이 원할 때는 은근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기도 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심통 난 불평꾼이 되기도 했다. 잡스는 가족을 사랑했다. 그렇다. 그는 실제 삶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삶이 그를 저버렸다. 바꿔 말하면 그 역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던 셈이다.'

'토이 스토리' 첫 관객은 슐렌더 딸


슐렌더기자는 픽사를 세상에 알린 영화 '토이 스토리'에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1995년 5월 어느 토요일 아침, 잡스는 전화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데리고 팔로알토에 있는 그의 집으로 당장 와달라고 말했다. 잡스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멋진 것이 있다"는 말만 했다. 잡스의 집에 도착하자, 아이들에게 튀긴 팝콘과 주스를 준 뒤 지하로 데리고 가 비디오 테이프를 틀었다. 음악소리가 커지면서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 opening credit 같은, 읽기 어려운, 연필로 그린 스토리보드 (영화 등의 줄거리를 보여주는 일련의 그림이나 사진)가 연이어 스크린에 등장했다. 그리고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컬러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다. 그 영화는 겨우 절반 정도 완성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영화에 빠져들었다. 사운드트랙은 완벽했지만, 그때까진 전체 장면들은 부분적으로만 애니메이션이었고, 여전히 스토리 보드 형태였다. 바로 6개월 뒤 개봉한 영화 '토이 스토리'의 초기 장면이었다.

이것이 잡스 스타일의 시장조사 방식이었다. 잡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생각해? 포카 혼타스 만큼 좋니?"라고 물었다. 아이들인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라이온킹 만큼 좋니?" 아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토이 스토리를 5~6번 더 보기 전까지는 대답할 수 없어요"라고 했다. 토이 스토리의 성공은 이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