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에서 장태현 역을 맡은 이준혁. |
이혼한 아줌마들을 구원하는 존재들에게도 ‘공식’이 있을까?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KBS <결혼해주세요>, SBS <나는 전설이다> <여자를 몰라>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편의 외도와 이로 인한 갈등으로 이혼의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이 있고, 또 홀로서기에 나서는 이들을 곁에서 돕는 한 남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남자들은 작곡을 하거나 록밴드를 하는 ‘음악인’으로서 감수성 짙은 성격이지만, 콧수염을 길렀거나 터프해 보이는 외모의 ‘짐승남’이기도 하다.
KBS <결혼해주세요>에서 주인공 남정임(김지영)은 외모나 학벌, 집안 등 하나도 내세울 것 없이 평범한 인물이다. 하지만 대학교수인 남편 김태호(이종혁)가 여자 후배와 야릇한 관계라는 것을 알아채곤 이혼을 선언하고, 노래를 잘하는 재능을 살려 가수로서 성장해간다. 그런 정임의 뒤에는 최현욱(유태준)이라는 인물이 있다. 록가수 출신의 음악 프로듀서로, 음반기획사의 대표다. 콧수염에다 터프한 현욱의 외모는 언뜻 보기에도 영락없는 ‘짐승남’이다.
SBS <나는 전설이다>에서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는 주인공 전설희(김정은)의 조력자 역시 록가수인 장태현(이준혁)이다. 설희는 한국 최대 로펌의 변호사 차지욱(김승수)의 아내이지만, 시댁의 무시와 냉대를 견디다 못해 이혼을 결심하고 뛰쳐나와 여고시절 밴드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다시 시작한다. 태현은 무뚝뚝하고 고집이 세고 음악적 자존심도 센 남성적 인물이지만, 설희를 도와 홀로서기에 성공하게 한다. 재미있게도 태현 역시 콧수염을 기른 남성적인 외모를 가졌다.
SBS <여자를 몰라>에는 록밴드 활동을 했던 박무혁(고세원)이 등장한다. 의사 남편 강성찬(임호)의 외도로 이혼한 이민정(김지호)을 사랑하는 역할이다. 드라마 초기에는 록커 특유의 긴 머리에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기도 했다. SBS <이웃집 웬수>에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요리사 장건희(신성록)가 이혼녀 윤지영(유호정)을 사랑하는 연하남으로 등장한다. 진지한 사랑을 해본 적 없는 날라리지만 지영에게 진정한 남자로 다가서 여성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처럼 이혼녀의 홀로서기를 주제로 그려낸 드라마에는 공식과도 같이 유사한 남성 캐릭터가 새로운 사랑으로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고 말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헌식은 “예전엔 ‘사’자 돌림의 직업을 가진 남자가 결혼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기에 드라마에 반영되는 것”이라며 “여성의 결핍된 욕망을 예술가 등 감수성이 풍부하고 경제적으로도 무능하지 않은 남성으로 업그레이드시켜 표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는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박사는 “계산적이고 영악해진 현대 여성들이 잃어버린 감성을 채워줄 상대를 외부에서 찾는 심리를 반영한 것 같다”며 “스스로 치유하거나 고차원적이고 합리적 해결을 하기보다 퇴행하는 결과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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