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꿈 꿀 수 있도록 차별, 기회 박탈 없어야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열린 평화 행진에서 마틴 루터 킹은 역사적인 연설을 남긴다. 그 연설의 핵심은 ‘나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는 말이었다. 그 꿈은 인종간의 차별이 없는 수평적인 평등의 사회였다.
이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덕만이 말한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희망이다. 희망과 꿈을 두고 한판 벌이는 미실과 덕만의 논쟁은 현대 사회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첨성대의 건립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미실은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통치의 포기이자 반칙이라고 한다. 논지 전개를 위해 미실과 덕만의 논쟁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덕만은 공주로 복귀하면서 월천대사를 통해 첨성대 건립 계획을 밝힌다. 그리고 상천관을 폐지하고 모든 천문기상관측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미실의 처지에서 이는 대대로 궁에서 지녀 온 신권을 통한 통치를 버리겠다고 말한 것과 같다. 미실은 그러한 행위를 비웃으며 충고하기 시작한다.
미실은 종(從)적인 측면과 횡(橫)적인 측면에서 구분하고 종적인 측면은 세 단계 이상의 계층이, 횡적인 측면에선 지배자(미실과 덕만)와 피지배자(백성)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신권을 통한 환상 만들기가 없으면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지배할 수 없으며, 덕만과 미실 자신은 지배자이기 때문에 백성들을 지배하려면 환상을 통해 그들을 통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미실은 덕만에게 '자신에게서 뺏은 신권을 백성에게 주는 것은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덕만은 신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실은 다시 한 번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환상이라고 말한다. 천문 관측 정보를 백성들에게 공개하면 환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어떻게 백성들을 통치할 것이며, 왕실의 위엄을 세우겠느냐고 말한다.
그러자 덕만은 환상이 아니라 진실을 가지고 통치할 것이며, 그들에게 환상이 아니라 희망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서 언제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거둘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그들은 배부르고 따뜻하게 멀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상보다는 희망을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미실은 백성들은 구체적인 어떻게 비가 오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며, 단순히 많은 양의 곡식을 얻기만 바란다고 했다. 미실은 구체적인 진실이나 정보, 지혜를 갖는 것은 괴로운 일이며, 중요한 것은 무지한 군중의 욕망이고 그것은 백성을 무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다시 한번 환상을 통해 그들의 욕망을 통제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환상을 주는 것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간교한 짓이라고 한다.
중고차 시장의 레몬 효과나 정보비대칭이론을 생각한다면 미실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책력이라는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많은 이득을 챙기기 때문이다. 명분은 백성이 환상을 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덕만은 그렇게 부당한 이득을 챙기려 하지는 않으며 그들을 속이려하지 않으려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사실상 신권과 왕권의 정면 대결을 다루고 있다. 미실은 왕권을 사실상 백성에게서 고립시키면서 막대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왕권이 사는 길을 백성과 소통하는 길이다. 그것은 정보비대칭과 왜곡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천문관측 정보를 가지고 이러한 왜곡과 비대칭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제도적 결함이나 복잡성에 따른 왕실과 백성의 단절도 있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민생이 안정되지 못하면 당장 지탄을 받는 것은 왕실이기 때문에 백성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신권이 이를 가로막고는 했다.
결국 왕실 혹은 최고 리더의 힘은 환상이라기보다는 정보와 정책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현실 적용력이 있는 정책들을 입안하고 결정, 집행하면서 평가할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다중지성이 힘은 커질 수밖에 없다. 덕만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적 대안의 수집과 실행을 통해 현실적인 꿈을 갖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덕만은 희망을 말하고, 미실은 환상을 말하는가. 덕만은 왕실공주였으며 성골이다. 성골은 희망의 존재다. 덕만이 현재 아무리 괴로워도 그것을 이겨나간다면 자신이 최고지도자가 될 희망은 있다. 하지만 미실은 진골이다. 진골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업적을 많이 세운다고 해도 최고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덕만은 미실에게 어디 무엄하게 성골의 몸에 손을 대느냐고 호통을 치기까지 한다. 비록 미실이 악인이기 때문에 그렇지 만약 덕만이 악인이었다면 최악의 상황이다.
진골인 미실에게 처음부터 희망은 없었다. 미실은 환상으로 도피했고, 환상의 여왕이 되었다. 환상을 팔고 그 수익은 자신이 챙겼다. 환상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생명력이 있지만, 대개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환상에 빠져 있는 사이 살 수 있는 사람도 죽는다. 정부가 있는 이유는 쉽게 빠져들 수 있는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환상은 더 쉽게 찾아든다. 희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환상은 의미가 없고, 미래를 위해 착실하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미실은 자신 자체가 환상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은 제일 위대하며, 하늘도 무섭지 않고,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모든 것은 환상이 좌우한다는 말을 주술처럼 외우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환상에 빠진 미실은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역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하며 기회의 평등을 누려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환상과 희망은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것을 구분해내는 것이 정책 역량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행이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할 때 희망과 환상은 달라질 것이다. 덕만방책이 환상이 아니라 희망이 되는 것은 구체적인 정책안이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현실정치나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담론은 환상이다. 그러나 현실 가능한 정책으로 어떻게 민생을 더 낫게 할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희망일 것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차별이 없어야 한다. 차별은 기회의 박탈이다. 기회의 박탈은 희망이 아니라 환상에 빠지게 한다. 그것이 마틴 루터 킹이 말한 꿈이었고, 지역과 학력, 학벌, 나이, 성별에 관계없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을 품지 않고 환상에 빠지며 힘과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미실과 같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파괴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