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동 그리고 영화 비트의 바이크 변화 이유.
글/김헌식(평론가, 박사)
1997년 허영만 원작의 영화 비트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정우성이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두 손을 놓고 어둔 밤하늘로 고개를 들어올린다. 혼다 모터싸이클 CBR600F. 오토바이가 뜻하는 것은 자유와 해방이다. 중년 남성들이 선호하는 할리데이비슨이 의미하는 바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처럼 넓은 주차 공간이나 주행 도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면허를 얻기도 관리도 쉽다. 탑승하기도 쉽고 시원한바람 에 닿고 속도감을 체험하기도 쉽다. 그렇기 때문에 청춘들의 해방과 자유의지를 다룬 비트에 오토바이가 등장하는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 때는 헬멧조차 쓰지 않을 정도로 오토바이는 자동차에 비해 더 자유로움을 주었다. 오히려 그런모습이 청춘의 특권처럼 보였다.
2020년 청춘들은 헬맷을 반드시 써야 한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쓰는 것만이 아니라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보면 자유로움이 제한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움이 더 제한 된 것은 오토바이의 용도이다.
영화 ‘시동’에 등장하는 오토바이들은 혼다 모델 같은 큰 모델이 아니다. 스쿠터 종류가 압도적이다. 스쿠터는 자유로움을 위해 타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서 탄다. 청춘들은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노동이다. 오히려 비트의 정우성이 한량처럼보일지 모른다. 사치를 부리는 행동 쯤이다. 그들은 오토바이로 배달노동을 하지는 않는다. 조폭 세계의 일을 할 지언정말이다. 폼생폼사의 수단일 것이다.
영화 '시동'에서 주인공만이 아니라 또래들은 배달일을 한다. 멋져보이는 폼생폼사가 아니라 그것을 한쪽으로 배달 목록에서 조차 치워버렸다. 2020 원더 키드라는 만화영화에서 21세기는 우주 탐험과 여행이 일상으로 열리는 시대로 상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현실에 있다. 기껏 스마트폰이 기대 이상으로 발달하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보다 스마트 모바일이 우리 삶을 바꾼다. 손안에서 지시 선택 명령할 수 있는 여지가 높아졌다. 직접 밖으로 나가 물건과 서비스를 접하기 보다는 집으로 배달시킬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 앱의 등장은 전혀ㅜ예상하지 못하게 유통 수단을 활성화 시켰고 오토바이가 부활되었다. 모터 싸이클이 아니라 스쿠터 종류. 주로 청춘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운용할 수 있는 오토바이다. 배달 플랫폼의 등장은 새로운 노동의 형태로 경제 수익 모델을 만들어냈다. 비정규직의 껀당 인생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졌다. 오토바이를 통해서 그들은 남태평양의 무인도로 갈 꿈을 꾼다. 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되는 꿈을. 대학에서 전해 받지만 배달 노동자의 삶이 더 가깝다.
오토바이로 비상하는 꿈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조폭은 오히려 거리가 멀다. 새로운 가능성을 줄 수도 있다. 왜그럴까. 비정규직 프리터족들의 삶이 만연하고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비단 혼다 모터싸이클을 타지 않아도 된다. 비트의 주인공은
자유로움을 꿈꾸며 오토바이를 타지만 결국 그들은 오토바이로 자신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2020년 오토바이로 과연 현실의 질곡을 넘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걸 선택할 여지가 많을 지 모른다. 선택의 여자가 없이 열심히 주어진 기회를 열심히 해야할 뿐이다. 그것이 스쿠터이건 밧데리 바이크이던간에 말이다. 고성장기의 가오를 잡는 문화 아닌 문화가 이제 저성장기의 미시 생활로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혼다를 타고 다니는 청춘들은. 어색해졌다. 자동차도 분명 노동의 수단으로 삼는 자영업자가 많아졌다는 점을 볼 때 잘 살게 되었다는 판단 기준의 변동이더 다양하게. 보여질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토바이는 위험하다. 자유에는 언제나 위험이 숙명이다. 자유스러워 보일수록. 프리랜서의 속성도 그러하듯이. 배달 노동이 자유스러워도 위험이 항존한데 원래 그렇다고 그냥 손 놓을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4차산업혁명론이 미래를 말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그들이 말하는 장미빛이라고 해도 오토바이에서 얼마나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청춘의 미래가 그려질까 여전히 의문인 나날이다. 욜로하라! 오토바이로 욜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