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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아 정해인도 은둔형 외톨이 될 수 있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4. 8. 23. 11:58

 

-엄친아와 서울대 스티커 그리고 히키코모리

 

글/김헌식(중원대학교 특임 교수, 정보콘텐츠학 박사, 사회문화평론가)

 

로맨스 드라마라도 한국사회의 단면을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 엿보일 때가 있다. 로맨스 드라마로만 생각했던 드라마 엄마 친구 아들은 예전에 유행했던 엄친아와 사회적 부작용을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서울대 가족 스티커의 이면 그리고 은둔형 외톨이 문제도 떠올릴 수 있게 했다.

 

드라마에서 처음부터 동창생들은 아들과 딸 자랑에 여념이 없다. 남자 주인공 최승호(정해인 분)의 엄마는 아들이 한국대학교 수석 입학이라고 자랑하는데, 이는 서울대학교 수석 입학을 의미한다. 심지어 다재다능해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수영 선수 국가 대표 선수이기도 했다. 그가 차린 건축 사무소는 혜릉동 개업식을 여는 등 승승장구하며 내로라하는 사업을 수주한다. 여자 주인공 배석류(정소민 분)의 엄마 나미숙(박지영 분)은 해외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세계적 기업에 취직하는가 하면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도 앞두고 있었다. 엄마들은 서로 자랑질하기에 매일 바쁘다.

 

하지만 배석류는 회사에서 해고되고 결혼도 파혼으로 끝난다. 엄마 나미숙은 매우 실망하게 된다. 애초에 엄마에게 알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배석류는 엄마가 누구보다 실망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끝까지 숨기려고 하지만 우연히 승효와 집 앞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그 같은 사실이 마침 지나던 엄마 동창생 일행에게 들리게 된다. 동네 사람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석류의 엄마 미숙은 창피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딸은 아무 일을 하지 않고, 한국에 남아 무계획으로 살아가겠다고까지 말한다.

 

승효의 건축 사무실 개업식은 둘 사이 갈등의 정점을 찍는다. 개업식에 동창생들이 참여하는데 정작 석류가 오자 엄마는 난색을 보인다. 그러자 석류는 엄마는 내가 창피하냐고 말한다. 어느새 딸을 숨기고 싶어진 엄마인 것이다. 더구나 미숙은 동창생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자기 딸 석류가 이직 중이고, 미국에 갈 것이라고 없는 사실도 말하고 만다. 집에 돌아와서는 미숙과 석류는 폭발하고 만다. 항상 딸이 자부심이었는데, 이를 산산 조각낸 딸에게 엄마는 섭섭하고 화가 난 감정을 내쏟고야 만다. 심지어 자신에게 발등을 찍고 비수를 꽂았다며 딸 석류가 집에 있는 것 자체가 싫다고 말한다. 이러한 엄마의 태도에 대해 석류가 그냥 가만있지 않았다.

 

석류도 "나는 왜 항상 엄마의 자랑이어야 돼? 가끔은 흉이어도 흠이어도, 그냥 엄마 자식인 걸로는 안돼?"라고 한다. 아울러 다음과 같이 울먹인다. “엄마 나 힘들어서 왔어. 내 마음 알아주면 안 돼. 열심히 살아왔는데 좀 쉬라고 하면 안 돼?” 마지막 보루일 수 있는 엄마의 품마저 그녀를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부정하고 있으니 이런 말이 나올듯싶었다. 이대로라면 석류는 은둔형 외톨이로 처박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사례는 비단 드라마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 부모와 자녀가 이런 자랑거리 때문에 서로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자랑의 중심이었던 자녀가 잘되지 않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곧잘 있다. 동네 창피하다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 있다. 과거 일본의 사회 현상으로만 여겼던 은둔형 외톨이는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급기야 얼마 전 CNN은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자료를 인용해 2022년 기준 한국의 19~34세 인구 중 2.4%가 은둔형 외톨이인데 전국적으로 244000명이라고 추산했다.

 

그 원인으로 학업이나 경제적 성공에 대한 압박이 크고 이에 완벽주의가 강해져 이를 달성하지 못할 때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부모의 욕심이 작용하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서 미숙이 딸에 집착하는 것은 본인이 공부를 잘했어도 못 이룬 꿈을 딸이 이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욕망은 딸에 대한 비난으로 터져 나오니 급기야 석류는 왜 내가 엄마의 포장지가 되어야 하는데.”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말한 석류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승효에게 그 아픈 마음을 털어놓을 뿐이다.

 

사실 자랑이나 자부심은 다른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자녀가 있다면, 다른 이들은 이에 부합하지 못할수록 자랑의 가치가 된다. 하지만 이는 다른 누군가의 실패를 전제로 성립한다. 집단주의 문화의 폐해이다. 집단의 다른 구성원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찾을 수 있지만, 그 입지가 불안하면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서울대생 가족임을 증명하는 스티커가 사회적 논란이 되었고, 특히 인권위에 민원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민원 제기의 이유는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짓이라는 게 이유였는데, 적어도 누군가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위화감을 준다면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서울대 스티커 같은 사례들이 사회적으로 가중되어 은둔형 외톨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는 있다. 자부심에 가득해서 뽐내는 것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가 되고, 그 스스로가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다. 아무리 현재의 위치가 자랑할만해도 그 때문에 오히려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석류보다 상대적으로 잘 나가는 승효도 언제든지 거꾸러질 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