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선덕여왕으로 일컬어져왔다. 이때 이상득 의원을 미실로 본다. 한나라당 밖으로 나가면 유시민 전 의원이나 한명숙 총리를 선덕여왕으로 보고, 박근혜 전 대표를 미실로 보기도 한다. 진보 버전도 있다. 노회찬이나 심상정을 덕만공주나 천명공주로 본다. 이 경우에는 주로 선덕여왕을 선한 주인공으로, 미실을 악한 주인공으로 삼는 구도에 갇히게 된다. 오히려 미실이 주체적이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결국 좌절된 이상가를 대표할 수 있는데 단지 왕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폄훼하는 구도다. 무엇보다 이런 프레임에서 간과하는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은 신라라는 나라와 선덕여왕이라는 캐릭터가 과연 모범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들은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 선덕여왕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선덕여왕이 영토를 많이 넓힌 뒤에 김유신과 김춘추를 등용했기에 문무왕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들은 생존의 문제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다루려 한다고 했다. 즉 최소 약소국이 어떻게 기득권을 가진 백제와 고구려를 이기고 삼국통일을 이루었는지 보여주겠다며, 그 핵심 얼개에 선덕여왕을 둔 것이다.
그러나 내치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기득권 세력이라는 사고는 의아하다. 신라의 행보는 배신과 굴절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신라가 통일할 수 있었던 요인은 두 가지다. 대규모 물적·군사적인 자원의 취득에서 반칙을 했다. 즉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유역을 빼앗았으며,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통일도 불완전했다. 더욱이 한반도 문화 자체를 중화화하는 데 앞장섰다. 문무왕 비문을 통해 자신들이 한나라 제후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허풍을 떨기도 했다. 그러한 통일신라의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 선덕여왕이라면 그 실체는 말할 가치가 없다.
선덕여왕의 연호인, 태화위정(太和爲政 : 크게 화합함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다)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한나라당 당사에 걸려 있다는 이 말은 결국 배신과 변절을 통한 통일을 뜻한다. 생존을 넘어서서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는 천민자본주의 정신이 신라의 생존적 통일 전략에 닿아 있다. 민주화 세력이나 진보 세력을 신라와 선덕여왕에 비유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그냥 박근혜 전 대표에 비유하는 게 맞다. 어차피 미실이 누구냐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으로 한반도의 가치 모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헌식<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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