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형 윤여정 주연의 영화 '장수상회' 스틸. ⓒ CJ엔터테인먼트 |
최근 황혼 로맨스 혹은 그레이 로맨스 영화와 드라마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영화 '장수 상회'나 드라마 '전설의 마녀'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500만 가까이 관람한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도 황혼로맨스의 면모가 강했다. 노년층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어느날 갑자기 생긴 알은 아니다. 그 징조는 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노년기 두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강풀의 동명 원작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16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를 통해 강풀 만화의 징크스를 깨뜨렸다. 강풀 만화는 온라인 만화의 인기에 비해 영화흥행은 참패라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이 영화의 흥행으로 그 징크스는 무너졌다. 또한 노년층의 로맨스는 흥행이 안된다는 징크스도 깨졌다. 이 때 판단은 섰다. 노인들의 사랑 이야기도 대중적 흥행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실버 세대가 아니라 전세대가 볼 수 있는 가족형 로맨스의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이를 구현한 것이 2014년 '수상한 그녀'였다. 이 영화에는 젊음을 찾아 새로 시작하는 노인의 사랑이야기가 가슴 아리게 흐르고 있었고, 이에 호응한 900만에 가까운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만약 경쟁작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없었다면 천만관객을 훌쩍 뛰어넘었을 것이다. 가족애와 로맨스가 결합된 방식은 '장수 사회'에 이어지고 있다.
황혼 로맨스의 등장 이유에 대한 분석은 여러가지다. 일단 노년층의 사랑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어졌다는 반증인지 모른다. 예전에는 주로 조연으로 가부장적인 역할에 머물렀던 것과 많이 달라진 점이었다. 사랑은 보편적이다라는 말은 사랑이 세대와 나이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말한다. 100세 시대에 이제 70대 조차 젊은 나이에 속한다. 사랑의 욕망도 여전히 한참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맨스는 낯설지 않아 보인다. 욕망에 충실한 모습이 진실성을 더하기도 한다. 꼭 강한 성적인 욕구가 배경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다뤄질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영화와 드라마들은 젊은 시절 로맨스를 가로질러 세대의 폭을 넓혀 버렸다.
그러나 로맨스의 관점에서 노년층을 그리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우리나라 노년층은 복지의 사각 지대에 있다.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다. 빈곤율은 물론 고독사 비중도 높다. 영화 '장수 사회'에도 경제적인 문제나 노환, 질병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로맨스 영화로만 인식할 수 없는 반전의 결말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로맨스를 내세워 현실을 벗어나 판타지 같은 세계로 도피하지는 않았다.
영화 '약장수'에서도 노년기의 고독과 외로움의 현실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노인들이 건강보조식품이나 생활 용품 사기를 당하는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에서는 외롭고 고독하고 무기력해지기 쉬운 노인들이 외로움을 덜고 흥겨운 재미를 위해 정신없이 주어지는 상품 홍보에 넘어가고 만다. 우리 아들이 2~3시간 놀아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노인은 상품을 판매하는 이들을 동정하고 배려한다. 그것이 제품이 비싼데도 구입하는 행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역시 사회적 모순과 가족애가 결합하고 있다.
이미 노년기를 소재삼는 방송은 '꽃보다 할배'와 같이 리얼로드프로그램이라는 예능적인 방식으로 다루기도 하고, '황금연못'처럼 어르신 집단토크쇼라는 형식을 갖추기도 한다. 현실이거나 유희이거나. 드라마는 과거와 미래 사이이며, 적어도 영화는 더 이상 노년기를 낭만이나 로맨스의 시기로 그리거나 반대로 극단적인 현실주의에 침잠하지도 않는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교차하고 있다. 그 사이에 인생의 아이러니가 있기 때문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