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낵 컬쳐의 개념과 특징, 그리고 진화 원리
글/김헌식 칼럼니스트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한때 눈으로 마시는 광고가 세간에 크게 화제였다. 눈으로 보고만 있어도 맥주가 줄어들면서 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눈으로 마시고 먹고 하는 행위가 스낵 컬처에 가깝다. 스낵(Snack)은 본래 가볍게 심심풀이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말한다. 혀끝을 즐겁게 하거나 기분 전환을 위해 먹는 간소한 음식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 말로 하면 주전부리가 있다. 중세 네덜란드어인 Snacken(깨물다)에서 기원했다는 말도 전한다. 깨물다는 맥락에서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말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스낵 컬쳐와 밀접하다. 지루하거나 무기력해지는 시간에 안성맞춤으로 뭔가를 깨물어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깐 짬이 날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처럼 문화도 즐길 수 있다. 일하러 가는 길이나 학교에 가는 길에 잠시 거리 공연을 볼 수도 있고, 퇴근길에 버스킹을 즐길 수도 있다. 따로 공연장에 갈 필요 없이 시간을 일부러 고려하지 않고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문화공연이 스낵 컬처에 해당할 수 있다. 점심이나 쉬는 시간에 잠깐 작은 음악회를 즐기는 것도 이런 스낵 컬처에 해당할 수 있다. 찾아가는 문화공연이라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이런 스낵 컬처는 디지털 시대를 맞으면서 본격적으로 변화를 맞기 시작한다. 물리적 공간의 문화향유에서 시각적 미디어 콘텐츠로 영역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스낵 컬처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의미했다. 처음에는 인터넷을 통해 즐길 수 있는 짧은 콘텐츠를 의미했다. 이때만 해도 디지털 쿼터리즘(quarterism)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모든 내용물이 15분 안으로 제작 공유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스마트 모마일 시대가 되면서 양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이동 간에 디지털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콘텐츠의 전송 속도도 무척 빠르게 향상되었다. 영상은 더욱 짧아졌다. 한 손에 들고 한입에 넣어 씹어먹을 수 있는 콘텐츠 스낵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 콘텐츠의 공유가 매우 신속하고 편리해졌다. 이동 가운데 웹툰이나 웹 소설을 보는 것은 매우 일반화되었다. 기존 만화나 소설과 달리 디스플레이에 최적화되어 편리성을 구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짤’이나 ‘클립’ 형태의 콘텐츠도 매우 즐기는 유형이 되었다. 유튜브는 이제 완전히 세계적인 대세가 되었고 장노년층까지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다. 특히 클립 형태의 콘텐츠는 기존의 드라마와 예능, 영화를 압축해서 볼 수 있었다. 이는 전편을 다 보지 않고도 핵심을 파악하려고 하는 세대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실패와 후회의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의 작동이기도 했다.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 속에서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바쁜 현대인들에게 가볍게 파악할 수 있는 방식은 매우 간절하다. 또한, 바쁜 와중에 그때그때 휴식을 취하려는 욕구도 강해졌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주목을 받는 것이 스낵 컬처라고 할 수 있다. 가장할 일이 많은 세대이면서 가장 활발하게 정보를 탐색하는 시기를 겪고 있다. 스낵 컬처에는 핫하거나 힙한 시대적 현상들이 가장 먼저 반영되었다. 순발력과 재치를 요구하는 스낵 컬처는 감각적인 자극에 잘 맞았다. 또한, 자신에게 맞는 콘텐츠를 순식간에 흡수하고 이를 과시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SNS를 매개로 스낵 컬처는 혼자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소비를 통해서 집단적 정체성과 연대의식을 형성 공유한다. 진지하고 깊이 있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일반적인 집단적 공유보다는 오타쿠 문화에 더 근접한다. 특히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스낵 컬처에 매우 부합한다. 스낵 컬처는 유행과 트렌드의 상징이자 실체이다. 이것에 따라 인싸와 아싸가 나뉠 수 있다. 마치 어떤 스낵을 먹는가에 따라 최신 트렌드를 따라잡고 있는지 좌우되는 것과 같다. 어떻게 보면 아싸가 되지 않으려는 불안의식도 있지만, 자발적인 아싸를 통해 새로운 스낵 컬처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른바 백로 효과(snob effect)다. 남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스낵 컬처를 즐기려는 카운터 트렌드 흐름도 나타날 수 있다.
스낵 컬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너무 짧은 콘텐츠를 접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을 먹지 않고 간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영양 불균형을 이뤄 몸을 해칠 수 있는 것과 같아 보인다. 스낵은 달고 기름지고 고열량으로 순간적인 매혹을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스낵 컬처는 짧은 분량 속에서 강력한 흥미를 자극한다.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콘텐츠는 깊이 있는 진중한 콘텐츠에 대한 향유 능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라고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일 경우에는 연작 시리즈를 정주행해서 즐긴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이를 말해준다. 오히려 짧은 주전부리 콘텐츠를 많이 볼수록 그것에 대한 피로증으로 인해 반대로 깊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욕구도 자극되는 법이다. 문제는 그렇게 깊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우리 사회가 잘 마련하고 있는지 그 여부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스낵 컬처가 아무리 유행해도 주식(主食) 같은 컬쳐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스낵 컬처를 잘 활용한다면 오히려 고품격이나 의미와 가치가 충만한 작품으로 유입시킬 수 있는 계기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스낵 컬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장르다. 단순한 간식을 넘어 없어서는 안 될 지속해서 섭취하는 문화적 먹을거리다.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 아무리 맛있는 스낵 주전부리도 지나치면 해롭듯이 스낵 컬처도 그렇다는 점을 항상 유념할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