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프로필은 진정한 자율의 산물인가.
20세기 몸에 관한 인식은 대중매체를 매개로 좌우되었다. 전반기는 신문과 잡지가 좌우했다면, 후반기는 영화와 TV가 좌우했다. 크게 사진에서 영상으로 그 주도권이 바뀌게 되었다. 19세기까지 회화 미술이 영향을 미쳤을 때만 해도 몸에 관한 인식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20세기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대량 생산된 획일적인 몸에 관한 이미지가 다르게 작동했다. 대중매체 이미지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자신의 몸을 조정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을 통해 대중매체가 만들어 내는 몸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에 부정적이었다. 부정적인 이유는 자기 몸에 관한 소외의식 발생 때문이었다. 현실의 자기 몸을 부정하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이른바 상업적 용도의 몸 이미지에 일상이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 속 상품화된 몸 이미지에 자신의 몸을 비교하거나 그것을 모델로 자기 몸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건강을 해치거나 정신적 위해를 입게 되었다. 대중 스타도 그런 운명에 스스로 처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이러한 몸에 대한 이미지의 형성과 작동은 달라지었다. 이를 바로 보여주는 것이 ‘바디 프로필’이었다. ‘바디 프로필(Body Profile)’은 멋진 몸 사진을 전문 모델이나 대중 스타처럼 만들고 이를 전문 스튜디오 사진으로 촬영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여기에서 멋진 몸은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뜻한다. ‘바디프로필(Body Profile)’ 현상에는 철학적 요인과 테크놀로지 관점의 변화가 작동하고 있다. 사실 정신을 중시하던 시대에는 동서양이 모두 몸을 낮게 평가했다. 조선에서도 정신노동을 하는 선비가 가장 우선시 되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고 고로 존재한다.’라며 존재의 현상에서 몸 자체를 부정해 버렸다. 개인을 중시하는 근대 철학의 시작도 몸의 부정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이러한 몸에 관한 인식은 이후 도전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도전이 메를로-퐁티(1908~1961)의 몸 철학이다. 그의 눈에 모든 존재 의미는 자신의 '지각적 토대'인 몸이 실존해 성립된다. 그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서 몸이 그 중심이라고 본다. 특히, 『지각의 현상학』에서 그는 몸을 가진 인간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실존하는 점을 중시해 본다. 『지각의 현상학』에서 고유한 몸을 통해 온전한 삶을 실현하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한다. 의식과 감각은 항상 몸이라는 한계 안에 있고, ‘몸'의 '체험'을 통해서만 진정한 의미의 지식을 얻는다고 봤다. 이른바 신체화된 의식이 가능해야 지식도 축적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치는 자신의 '지각적 토대'인 몸이 실존해야 가능하다. '몸'의 체험은 단순히 지각된 경험 이상의 '어떤 의미'다. 세상은 단순히 몸이 지각하는 대상이 아닌 몸과 세상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점차 넓혀진다. 몸은 세상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달라지는 자신만의 지각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타인의 바디 프로필 사진을 본 것과 이를 실제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은 분명하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 외에 보이지 않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바디 프로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짧게는 2개월 보통 6개월 이상의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강력한 운동과 엄정한 식단관리를 해야 한다. 단순히 몸매를 얇게 하거나 체중을 줄이는 다이어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매일 운동을 통해 몸을 다져 적절한 근육을 발달시켜 탄탄한 몸을 구성해야 한다. 이는 단지 몸을 아름답게만 보이려는 몸의 미학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심폐 기능이 좋아지고 몸이 안전사고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더구나 이러한 과정에서 집중력, 절제, 인내, 그리고 자부심이 생겨난다. 당연히 체계적인 계획과 사고는 이성의 발현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몸의 철학’도 전통적인 서구적 관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 그는 “신체화된 마음이라는 지각이나 운동과 같은 신체 능력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이성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성(reason)은 근본적으로 신체화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몸의 철학은 데카르트 철학보다 21세기 현대인들에게 강력하게 더 어필되고 있다. 지식인들은 21세기는 지식 정보화 시대라고 언급하면서 인공지능 그리고 빅데이터 담론까지 만들어 냈다. 모두 몸이 아닌 이성 중심의 사고방식을 뜻한다. 몸과 이성이 하나의 동일체라는 인식은 여전히 거의 없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몸과 이성을 하나로 인식하고 이를 자기 존재의 토대로 공유한다. 중요한 것은 혼자만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공유하는 점이다. 이러한 공유가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이 일반화되기 시작했지만, 데스크톱 중심의 디지털 문화였다. 2010년 즈음 스마트폰 모바일 문화가 확산하면서 몸에 관련한 콘텐츠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이제 디지털 콘텐츠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핵심 구성요소가 되었다. 20세기 대중매체의 시대처럼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이 자신을 생성시키는 주체가 되어갔다. SNS 네트워크 플랫폼이 스마트모바일과 결합하면서 자신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는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다. 전문 모델이나 스포츠 선수, 연예인이 아니라 누구나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능하게 했다.
몸을 위한 지식은 과학이다. 바디프로필을 위해 각종 트레이닝 방법을 익히고 이를 몸으로 실천해야 이미지가 창출된다. 예컨대, 부하를 이용해야 근육에 자극을 가해서 근육의 성장을 촉진하는 ‘근저항 트레이닝’이 그 예이다. 일반적 근력 향상은 1 RM(최대반복횟수 ) 85% 이상 무게로 6회 미만, 근비대 향상은 1 RM의 67~85% 무게로 6~12회, 근지구력 강화는 1 RM의 67% 이하 무게로 12회 이상 반복한다. 중량의 방향에 따라 어센딩 세트(Ascending Set), 디센딩 세트(Descending Set), 드롭 세트(Drop Set)있다. 심지어 휴식 시간도 30초냐, 120초냐에 따라 근육 형성이 달라진다. 식이 요법은 말할 것도 없으니 체중 1kg당 2g에서 3.5g 정도의 단백질을 섭취가 권고된다. 이렇게 바디 프로필을 만들기 위해 이성은 일정한 몸을 위한 도구적 이성이 된다. 그 도구적 이성은 본질적 이성과 분리되기 힘들다.
사실 이러한 몸 만드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 어려우므로 프로필 사진으로 SNS에서 자랑하고 과시할 만하다. 자신의 몸이 관여할수록 부여 효과(Endowment effect)가 발생해 애착이 강해진다. SNS 공유는 그런 의도적 의미다. 어떤 선망의 대상을 추종하고 소비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그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바디 프로필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통제하고 성취감을 느끼려는 것이다.
그런데 바디 프로필의 주인공은 정말 누구나 될 수 있나. 이러한 바디 프로필을 구가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경제력이 필요하다. 시간과 경제력 통제에서 어려운 일반 생활인들이 이를 실현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일정한 신체적 조건을 타고나야 한다. 특히 SNS 미학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아니라면 전문 스튜디오를 통해 이미지의 가공을 시도하게 된다. 이미지 보정 앱을 통해 이미지 가공을 당연시하는 디지털 미학 트렌드 속에서 이를 용인하는 것은 무감각하다. 결국, 일반 생활인들인 듯싶지만, 그들은 또 하나의 계층과 계급이 되며 다른 누군가를 자신의 몸에서 소외시키는 사회 경제적 기능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는 구조는 직접 몸으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바디 프로필은 또 하나의 획일적인 강박감이 될 수 있다. 바디 프로필을 만든 사람도 스스로 만들어진 자신이 몸 이미지가 스스로는 구획하게 된다. 언제까지나 그것을 유지해야 하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디 프로필의 몸이 정말 자신의 전형적인 몸 상태인가 자신 있게 언제나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전히 바디 프로필 열풍 속에서 몸의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경우 이를 넘어서기 때문에 파국을 맞기 쉽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몸의 자율을 허용 해야 한다. 특정 이미지를 목표 성취하기를 원하는 별도의 이성에 종속되지 않는 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글/김헌식(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